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장 6-10절『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은(아르귀리온)과 금(크리쉬온)은 세상의 물질을 의미하며, 그에 대조되는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다고 했다. 아르귀리온은 드라크마나 세겔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7장 27절에서『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스타테라)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헬라어 스타테라는 개역개정은 한 세겔이라고 번역했지만, 영어는 a piece of money(kjv), a four-drachma coin(niv)로 번역되었다. 이 말은 카우케시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자랑하다, 영광을 돌리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로마서 3장 27절에서『그런즉 자랑할(카우케시스)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은은 세상의 물질을 자랑하는 자라는 것이다.
크리쉬온은 성소의 금을 의미한다. 성소의 금은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의미하며,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상징한다. 베드로는 율법주의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율법 위에 있게 됨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사렛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옛사람인 예수를 상징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역시 이와 같이 예수와 함께 육체로는 죽임을 당했고, 영으로는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앞의 죽임을 당한 예수는 육적 몸을 의미하고, 뒤의 살리심을 받는 예수는 영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어나 걸으라 하고』[ἔγειρε καὶ] περιπάτει.(에게이레 카이 페리파테이) 어떤 성경은 에게이레 카이라는 부분이 없는 것도 있어서 괄호로 했다. 에게이레는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표현으로서 페리파테이는 ~으로 살아가다 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12장 1절『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에게이렌)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따라서 일으나 걸으라는 말은 부활생명을 얻어서 영적으로 하늘에 앉힌 바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헬라어 성경을 보면 카이 피아사스 아우토 테스 덱시아스(καὶ πιάσας αὐτὸν τῆς δεξιᾶς)로 되어있다. 다시 번역하면,『오른 손으로 그를 일으키매』라는 것이다. 테스는 영어의 with에 해당된다. 오른 손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이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엑살로메노스) 서서(에스테) 걸으며(페리에파텔)』요한복음 13장 5절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다. 발은 가룻유다를 상징하고 그래서 가룻유다는 죽고, 다른 자(맛디아)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명이 된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는 것은 부활생명을 얻게되는 것이다.
엑살로메노스는 앉아있다가 갑자기 튀어 오르고, 그래서 서게되었고, 걷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튀어오르며, 서게 되었으며, 걷기 시작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밖 문 앞에서 구걸했는데, 드디어 베드로와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부활생명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었던 영이 일어나고, 부활생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모든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신봉하는 자들이다. 오직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율법이 아니라, 부활생명으로 영적으로 죽은 자가 일어나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놀라운 것이다. 성전 밖의 문에서 앉아 구걸하던 자가 드디어 성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성전 안의 백성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 11-15절에서 성전 밖에 구걸하던 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했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증거한다. 이는 육체 가운데 갇혀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부활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의 영이었지만,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여 그의 옷을 벗기고, 육체 속에 가두므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다시 하나님 나라로 부활시켜 주시는 것이다.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