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애지문학상
백비탕 / 엄재국
누가 불 지폈을까?
부글부글 살구꽃 한 세상이 담장을 넘쳐 흐른다
건더기 없으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봄
사람들은 봄빛에 지쳐 쓰러지는데
약 없는 세상
누가 저 담장너머
지독한 봄을 여태 끓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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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국의 「백비탕」은 시의 소재나 시상 전개에서 일반적인 시 문법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살구꽃”이 피어나는 봄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시는 기본적으로 역설적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꽃의 계절인 봄날에 오히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문제 삼고 있다. “부글부글 살구꽃”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문제의식과 관계 깊다. “살구꽃”의 개화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미지로 표현하여, 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안정과 평화를 상실했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건더기가 없으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봄”에 암시되어 있다. 세상은 “건더기”로 상징되는 인간 사악한 욕망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아름다운 “살구꽃”이 피어도 “지독한 봄”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는 엘리어트의 유명한 시구 “사월은 잔인한 달”(「황무지」)을 생각나게 하지만, 인간 성찰과 문명 비판을 “백비탕”이라는 특이한 음식 이미지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 백비탕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맹탕으로 끓인 물을 뜻하는 용어임.
곽란(霍亂)을 치료하는 처방임
* 곽란(霍亂)
네 글자로 토사곽란(吐瀉癨亂)이라고도 한다. 흔히 토사광란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나 이는 잘못된 용어다.[1] 비슷한 용어로 위경련이 있으나 위경련 역시 정확한 의학 용어가 아니므로[2] 급성위장염이 의학 용어로는 가장 비슷한 용어다.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는, 고통스러운 증세를 보인다.
한의학에서는 토하고 설사하고 복통이 오는 대부분의 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