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아렌달 펭셀 호텔 외 4편
아렌달 펭셀 호텔 외 4편
아렌달에선 바람이 비뚤게 불어대는 통에 새들이 일요일을 지나치거나, 치과에서 막 나오는 사람의 이빨이 빠지는 건 흔한 일이죠. 어제는 코를 너무 많이 고는 강아지 때문에 감옥에 갔다 왔다는 안네의 이야기를 들었고, 트롬소*에 뜬 해가 도저히 지지 않아 눈꺼풀이 고장 났다는 오딘은 저번 주부터 수감되었죠.
웰컴 투 아렌달 펭셀 호텔*!
이 도시에선 아름답거나 슬픈 죄를 잊기 위해 백 년 된 교회 옆 감옥 호텔에 가죠. 운명적인 숫자의 방에 수감되기 위해선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렇다고 성경책을 든 은행강도나 사기꾼이 될 필요는 없어요. 우린 충분히 더럽고 많이 울었잖아요. 그거 아세요. 아렌달의 모든 약국은 이방인에게만 바람이 40mg 포함된 약을 팔아요. 저는 알레르기가 있다고 아무리 화를 내어도 소용이 없구요, 바람 소리를 잘 소화 시키지 못한 날에는 펭셀 호텔에 숨어 귓속 바람을 빼내곤 하죠. 감옥 호텔이라뇨! 너무 안성맞춤이지 않나요?
침대에 누워 목을 맬 밧줄을 방 안 어디다 거는 게 안전할지 생각합니다. 돈 가방이 2개나 되는 간수는 천 크로네 지폐를 세며 천장의 못 자국을 숨깁니다. 5년 전 보냈던 엽서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해변이 방안을 훔쳐보고 있구요, 침대에 쏟아진 바람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처리할 예정입니다.
호텔 투숙객들은 도시의 탈옥수이자 알레르기 환자입니다. 파닥파닥 돋아난 바람들은 수탉 털마냥 시끄럽게 뽑혀 이불속으로 숨어요. 옆방에서 들려오는 모하메드의 기도 소리는 라마단에 먹지 못한 음식 이름입니다. 부인에게 얻어맞고도 벌금을 물었던 베트남 요리사 라이라이는 그날의 별자리를 조사 중입니다. 몽골서온 점쟁이 졸라는 유골 지문이 찍힌 갑옷을 입고 보드카를 던지며 칭기스칸과 밤새 얘기를 하고요, 더러운 손으로 입에 음식을 넣어 주었다고 5살짜리 딸을 뺏긴 라훌은 바람을 너무 먹어 공중 부양을 할지도 모른다더군요. 인도식 공중 부양은 금지라구요? 펭쉘 호텔에서는 금지한다는 말을 금지합니다. 아렌달 펭쉘 호텔에선 모두가 평등한 이방인입니다. 철창 안에서 저녁 식사 후에도 간수의 이름 따윈 기억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 날에도 집에 가지 않기 위해 밤새 엽서를 쓰거나, 지은 죄를 기꺼이 생각합니다.
*아렌달 펭셀 호텔 : 노르웨이 아렌달에 위치한 감옥 호텔 이름 *트롬소 : 노르웨이 북쪽 도시
타로를 보는 여인
머릿속의 모든 것이 자살했어요. 프라나 카페에서 타로를 보는 그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허공에서 목소리를 꺼냈다.
더듬거리는 벚꽃이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독신자로 태어난 달은 밤마다 번식을 하네. 식물은 낮의 길이로 계절을 알아보지만 나의 눈을 알아보지 못하네. 마음의 껍질들이 만든 정원에서 길을 흘리면 너의 발자국으로 옷을 해 입네, 밤을 달래네. 벼랑 위를 날다 떨어져 죽은 독수리는 자유로운가. 낙타의 몸에서 사자가 태어난다면 배신의 증표인가. 별의 꼬리 끝에 벌거벗고 앉아 점을 치는 여인아, 해를 보다가 눈이 먼 사람은 달을 보며 눈이 먼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네.
커피가 식기도 전에 기차는 문 앞에 당도하고 너의 얼굴을 차표로 내미는 일은 이 시대에는 괜찮은가. 웃는 구렁이를 본 적이 있다는 부처의 배를 갈라 그의 부처를 꺼내는 일은 한 손에 꽃을 들고 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면 꽃으로 피어오르는 건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가. 그 밑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에게 바닷소리는 꽃이다. 마음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앉은 돌부처와 입을 벌리고 또아리 튼 뱀의 경계에서 헤매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상처 때문에 길가에 선혈처럼 쏟아진 꽃들도 경계에서 흔들린다.
아틀란틱 로드*
아틀란틱 로드 다리를 건너면 당도하는 그곳에서 왔다는 그 사람이 나를 지나칠 때, 다리를 건너 내가 온 곳으로 간다는 그 사람의 그림자를 밟았고
다리에 끼인 파도가 휘청거렸다 긴 다리 사이에 끼어 있는 섬들이 쏟아졌다
끊어지려는 다리가 나에게 걸쳐지고 다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 다리가 잊혀졌다 다리를 건너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다리였는지 다리보다 중요한 것이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는지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섬이 이어지고 그 위에 새로운 다리가 놓인다
나는 너를 건너고 너는 나를 건넌다
우리의 목적지는 다리였을까
*아틀란틱 로드 : 12개 섬으로 이어진 죽음의 다리라고 불리는 노르웨이 명소
루루의 아랍식 소파
루루의 베개식 팔걸이가 있는 아랍식 소파는 카불리 팔라우를 먹기에 참 좋지. 루루의 새 소파는 웃기에도 좋아서 구멍 난 양말 따위는 기억할 필요도 없어. 매일 노래를 불러 주거나 뺨을 부비기도 하는 사랑스런 갈색 소파는 그녀의 심장이라서 아무도 질투할 수 없다네. 어느 날 루루의 아이가 반짝거리는 성냥을 떨어트려 소파에 쥐눈만 한 구멍을 냈을 때 그녀는 성냥을 판 사람을 저주하는 주문을 만들었대. 매일 소파에 난 구멍에 대고 주문을 불어넣으면 추운 소녀 하나가 걸어 나와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세지. 영원히 잠이 들고팠던 소녀는 뜨거운 성냥이 너무 화가 나서 루루를 자꾸 때리고, 몸에 난 매 자국들은 아빠의 얼굴을 싹둑 잘라 버렸대. 아 불쌍한 루루! 그녀는 더 이상 소파를 사랑할 수 없구나. 구멍 난 소파 위에선 바람이 너무 불어서 무지갯빛 드레스가 자꾸 기침을 해. 엄마, 너무 추워요. 머리 위 매 한 마리가 내 눈알을 먹고 싶어 하나요. 사나운 낙타들이 또 저를 밟고 지나갈까 봐 무서워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잠을 자고 싶어요. 소파는 완벽해야 해요, 소파가 다치는 걸 보긴 싫어요. 그런데 엄마는 어디 있었나요. 회초리를 든 낙타가 웃어요. 내가 소파 뒤에 숨어 있는 동안 아무도 성냥을 켜지 마세요.
이상한 나라의 모하메드
엄마는 늘 휘파람을 불었어요. 무슨 소리냐고 히드득 물으면 까만 히잡 사이에서 아무도 몰래 키운 작은 새가 소리를 내는 거라고 했어요.
어느 날부터 밖에서 쿠쿠쿵 소리가 고장 난 천둥처럼 매일 들리기 시작했죠. 짖던 개들도 침대 밑으로 숨어들고 검은 연기들이 마을을 유령처럼 떠돌자 엄마는 휘파람을 부르지 않았어요. 문밖 친구들의 집들은 흙더미처럼 무너져 내렸어요. 내 동생 사헬은 책상 밑에 숨어 작은 심장이 쏟아질까 웅크리고 있었죠.
그럴 땐 엄마는 히잡 속의 작은 새를 꺼냈고 우리는 쉬이 쉬 벙어리 놀이를 했죠. 그런 날 저녁엔 아빠는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왔고 우리는 촛불 속에서 따듯한 캅사*를 먹었어요. 아빠는 꽃도 피고 눈도 오는 나라로 내일모레 떠나자고 했어요.
엄마는 우리 손을 잡고 알레포*에 하나 남은 슈퍼로 데리고 갔을 때 쿵쿵거리는 거인의 발자국은 우릴 삼킬 듯 쫓아왔죠.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을까요? 엄마는 모하메드 모하메드 내 이름을 숨차게 불렀어요.
그때 나는 보았어요. 엄마의 눈 안에서 푸드득 검게 날아오르던 수많은 작은 새들 공중에서 터지던 빨간 풍선 같던 엄마
나는 울면서 휘파람을 불었어요. 엄마는 작은 새를 키워요.
*캅사 : 시리아의 전통 음식 *알레포: 시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
수상소감
나는 명탐정 홈즈를 좋아한다. 고전적인 꼰대인데도 사건을 대하는 관점이 신선하다. 홈즈처럼 호기심이 많던 나는 어쩌다 보니 한국의 반대편인 이곳 노르웨이에 온 뒤로 언제부턴가 그 홈즈를 잊고 살았다. 모든 게 느린 노르웨이에 살다 보니 삶에 대한 열정도 늘어진 걸까. 기대 없는 연애처럼 환상 없는 여행처럼 느림의 유배지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운명의 이유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상투적인 호수를 쳐다보며 생각한 건 재작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등단을 했단 소식을 전했다. 그때 내가 미뤄두었던 숙제처럼 딩동, 가슴에 불이 켜졌다. 갑자기 노르웨이에서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가슴이 뛰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썼다. 아니 최소한 쓰려고 했다. 홈즈처럼 신선한 눈으로 둘러보니 여기서의 모든 삶, 풍경이 시였다. 내가 겪은 수많은 일들은 시를 위한 소재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처럼 한인 시 동호회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서 오로라와 편 먹고 시 공부를 할 수도 없고, 우편으로 응모하는 공모작일 경우는 날짜조차 맞추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와 같이 이 길을 걸어 주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더더욱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우선 멀리서 제가 가는 길 등대처럼 방향 잡아주시고, 게으른 저를 이끌어주신 전기철 시인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먼저 등단해 내 귀에 종소리 울린 친구 문진희, 이번에 시집 출간해 두 번째 종 울려준 조반느 시인, 엉뚱한 끼로 늘 나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평론가 조정문, 모두 고마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삼총사인, 동생이지만 언니 같은 여유로운 영수야, 늘 고맙고 사랑해. 울면서 잘 웃던 우리 근희, 가던 길 뛰어와서 또 언제 보노 내 손 잡고 울었는데 그 온기 아직도 남아 따뜻하다. 근희야, 멀리 살아 미안해. 이곳에서 늘 친언니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속 깊은 영란 언니, 이모뻘이지만 세대 차를 뛰어넘는 소녀 감성 익분 언니, 언니들 없는 이곳 생활은 온돌 없는 안방일 듯해요. 감사드려요. 늘 한국 갈 때마다 어제 본 듯한 가족들 고맙습니다. 우리 캐빈에게 천사로 불리는 오빠 박민규, 올케 김정순,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조카 홍준이, 하은이. 세상의 모든 방향을 보며 자식들을 위한 절 매일 하시는 이름만으로도 눈물 나는 우리 엄마 안상희 여사, 그리고 내 쌍둥이 언니 박성은! 같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게 무엇이든 고맙고, 네가 너라서 사랑해.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 캐빈 박, 한글 배워서 엄마의 수상소감 읽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장석주, 나희덕, 이병률 심사위원님 만장일치로 제 시를 뽑아주셨다니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늘 신선한 시선으로 성실한 시인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약력 코샤박(본명 박상은)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노르웨이 거주 제4회 동주해외신인상 수상
이메일 happykosha@hotmail.co.kr
심사평
제4회를 맞이한 동주해외신인상에 세계 각지의 신인들 30여 명이 옹모를 하였다. 해외 등단 5년 이내(2017년 이후) 시인이나 신인들에게 응모 자격이 주어진다.
기 동주해외신인상 수상자들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아래와 같이 다섯 분의 응모작이었다.
최재준(시애틀) 「올랭피아」 외 9편 코샤박(노르웨이) 「아렌달 펭셀 호텔」 외 9편 김유리(말레이시아) 「가로등 아래에서」 외 9편 서미라(독일) 「지구 여행사」 외 9편 강영희(일본) 「페달을 밟으며」 외 9편
「아렌달 펭셀 호텔」 외 여러 작품을 노르웨이에서 보내온 시인은 일상의 밋밋함과 지루함을 깨고 나아가는 활달하고 기이한 상상의 부력을 보여준다. 타 응모자들과 다른 차원의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박에 심사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갖가지 죄명으로 수감된 사람들의 사정이 펼쳐지고, 북유럽 국가 어딘가에 있는 ‘감옥 호텔’이 시의 배경이다. 호텔 투숙객들은 도시의 탈옥수이자 알레르기 환자이고, 그들 곁에는 이슬람교도, 몽골에서 온 점쟁이, 베트남에서 온 요리사 등이다. 시인은 이국적 풍물과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곳에서는 “금지한다는 말을 금지한다”. 현실의 규범과 금지를 넘어서서 절대 자유를 희구하는 마음이 슬쩍 드러나는 대목이다. 각각의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한 공간에서 벌이는 퍼포먼스의 목적을 “이 도시에선 아름답거나 슬픈 죄를 잊기 위해 백 년 된 교회 옆 감옥 호텔로 가죠”라는 구절이 암시한다. 「타로를 보는 여인」이란 작품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말 더듬는 벚꽃들, 독신자로 태어난 달, 낮의 길이로 계절을 알아보는 식물들, 껍질들이 만든 정원, 별의 꼬리에 앉아 점을 치는 여인 따위의 이미지들로 촘촘하다. 상상력의 비약이 눈부시다. 반면에 아쉬운 점은 사유의 깊이가 상상력의 기발함을 충분히 떠받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만의 언어로 독창적인 상상력을 펼치는 신인의 탄생을 반가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새로움이 충분한 정제된 사유와 논리에 기초하는가,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테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새로운 이미지들로 가득한 시를 보여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장석주(시인. 글) 나희덕(시인) 이병률(시인)
예심위원 : 김소희 유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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