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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코끼리
이 홍사
지난주에는 큼직한 청동 코끼리 한 마리를 몰고 들어왔다.
골동품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었다.
경매라고 하지만 서울의 큰 경매장과는 달리 열댓 명이 부상고개 부근의 골동품 가게에서 오붓하게 경매를 진행한다. 몇 번을 다녀본 결과, 골동품 장사치들이 와서 물건을 바꿔서 가고 일반인은 늘 오는 사람만 알고 오는 곳이다. 몇백 년이 된 진귀한 보물은 나오지 않고 집에서 소장하던 옛날 물건이 고작인데 반은 수집을 직접하는 장사치들이다.
청동 코끼리는 경매에 오르기 전부터, 전부가 줄지어 진열된 물건을 보고 눈독을 들이던 물건인데 내가 경매장에 온 사람들의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을 받은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물건인데 질리도록 두고 보아도 좋을 일이라 큰마음을 먹고 호가를 제시한 것이다.
낙찰을 받고 보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탐이 나는지 코끼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들어서 무게를 가늠하며 관심을 보였다. 크기가 한 자는 족히 넘을 물건이고 청동을 소재로 해서 묵직했다. 골동품 경매에서는 청동 제품이 인기다. 그건 소장하며 보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가지고 나가도 본전치기는 수월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가장 인기가 없고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게 수석이다.
수석이 왜 골동품 경매에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수석에는 관심이 없다. 수석을 경매할 적에는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다. 경매사는 수석의 모양과 석질에 대해서 장점만을 얘기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경매를 받을 때는 그 물건의 단점이나 결함을 모른다. 그런 걸 볼 겨를이 없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돌아와서 생각하면 꼭 낙찰을 받았어야 했을 물건이었는데, 쓴 입맛을 다시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그 물건이 눈에 삼삼하게 밟혀서 밤잠을 설친다.
지난주에는 사단으로 된 원목 장식장이 경매에 나왔는데, 얼른 보아도 오십 년은 족히 넘었을 듯했는데 저걸 사무실이나 서재, 어느 구석에 놓을까? 생각하는 사이 다른 이에게 낙찰이 되었다. 사무실 소파 옆 구석에 놓고 도자기를 진열하면 좋았을 물건인데 그게 눈에 삼삼했었다.
그 옛날, 아마도 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심심하면 김천의 남면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 경매를 보러 갔었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갔더니 그게 없어지고 빈 가게였다. 꼭 필요한 게 없어도 그곳에 가면 진귀한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장사가 시원찮아서 없어졌구나,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돌아왔다. 그 날은 꼭 골동품 경매장을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 직지사 입구에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것인데 헛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류남이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부상고개의 옛날 새마을 금고를 하던 자리를 공매로 낙찰을 받아서 그곳에 커피전문점을 차린 것이다. 부상고개는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성주와 칠곡, 김천, 구미의 꼭짓점이 되는 곳이며 행정구역상 경계가 되는 곳인데 그 동네의 주민 수가 줄어서 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새마을 금고의 건물과 부지가 공매로 나온 것을 인터넷을 뒤지다가 용케 발견하고 싼값에 낙찰받았다.
류남은 시를 쓰는 후배인데, 시인치고는 이문에 약삭빠른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후배라곤 하지만 그를 만나면 생각지도 못한 언어가 떠올라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쓰던 글이 막히면 그를 찾아가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보면 문맥이 풀리고 기가 막힌 글감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휴일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나들이 삼아서 부상고개의 새마을 금고, 아니 류남의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언제든지 가면 류남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류남의 직장은 따로 있다.
직급이 상당히 높은 시설 관리공단 직원이다.
공무원이라 평일에는 그의 아내, 한때 문학소녀였던 시인의 아내가 있고 휴일에만 류남이 그 커피집을 지킨다. 완전히 부업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부상고개는 지역에서 먹거리로 유명한 고갯마루에 있는 동네다.
김천 사람들과 구미 사람, 그리고 성주나 왜관 사람들이 입맛이 없으면 칼국수를 먹으러 찾는 곳이다. 그곳에 커피집을 차린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상고개에는 열댓 집이 사는데 전부가 식당이다. 칼국숫집이 서넛이고 양푼이 짬뽕만 전문으로 하는 집도 있고 꼬마 김밥과 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다.
그 식당들 중간에 있던 새마을 금고 자리에 류남이 커피집을 차린 것이다. 새마을 금고 하던 실내에 화장실만 넣고, 시멘트 벽돌로 만든 대형 금고는 그대로 살려서 금고 안에 테이블을 넣어 격실을 만들고 새마을 금고의 분위기가 나게, 일종의 금고 커피집을 차린 것이다. 류남의 아이디어로 새마을 금고처럼 통장을 만들어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어 열 번을 마시면 한번은 공으로 대접하는, 단골에게는 이자를 붙여주는 게 커피집의 특색인데 언제 배웠는지 커피 맛이 일품이다. 더욱이 류남과 시에 대해서 노닥거리며 마시는 커피는 마시는 시간이 달콤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으니 내가 자주 찾는 건 당연한 이치.
평일에는 가지 않고 휴일이면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류남과 노닥거리다가 오곤 했다. 내가 가면 항상 카푸치노다. 류남의 커피를 많이 마셔보았지만,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푸치노가 부담이 없고 입맛에 맞았다.
집에서 부상고개를 가려면 금오산 자락의 수점마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그 지름길은 이제야 포장이 다 되어서 질러서 가면 십오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고개를 넘어서는 신도로보다 구도로를 달리면 빠르다. 구도로가 한산해서 오토바이 나들이 코스로는 그만이다. 임도 보고 뽕을 딴다는 말은 완전히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이다.
그런데 두어 달 전에 가니 구도로에 수도관로 공사를 한다고 작업복을 입고 차량을 통제하던 공사장 인부가 신도로를 타고 둘러가라고 했다. 신도로를 타고 조금 가니 쉼터가 있고 바로 옆에 골동품 경매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은,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다.
웬 경매?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
거기에 오토바이를 바로 세웠다. 마당과 정원에 어지럽게 놓인 석탑과 불상들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들어가서 둘러보니 진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소유욕이 유독 강한 나는 그런 곳은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고약한 성격이다. 진귀한 물건은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어디를 가던 길인지도 잊은 채, 그 집 주인과 거의 한 시간을 노닥거렸다. 마당에서 얼쩡거리던 그 집 주인장은 멀리서 보아도 안면이 있었다. 그 옛날 남면에서 골동품상을 하면서 경매를 하던 손 사장이었다. 그를 만나고 나니 비로소 성 씨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도 나를 알아보았다. 그날은 그 집 창고까지 구경하고 커피를 한잔 얻어먹고 경매를 무슨 요일에 하는지 알고 돌아왔다. 경매는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한단다.
아마도 경매장을 발견한 그 날이 일요일이었지 싶다.
경매가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진행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류남의 커피집으로 갔으나 그날은 류남이 부하직원의 결혼식에 가고 시인의 아내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도 있어서 시인의 아내와는 노닥거릴 수가 없었다. 그냥 오토바이를 타고 간 나들이 손님에 불과했으니 혼자서 커피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수요일을 기다렸다.
요즘은 어떤 진귀한 물건이 나오나 생각하며 집에서, 너무 오래 보아서 싫증이 난 도자기 두 점과 액자 두 점을 차에 실었다. 도자기 한 점은 내 방에 있던 것이고 한 점은 거실 신발장 위에 있던 것이었다. 싫증이 나던 차에 경매로 처분할 생각이었다. 수요일이 되어 오토바이가 아닌 차를 가지고 나섰다. 도자기와 액자를 오토바이에 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른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출발했다.
도착하니 장사치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여섯이 커피전문점에서 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셨군요! 손 사장이 관심을 보이며 점심은 먹었느냐고 인사를 했다. 간단하게 먹었다고 했더니 김밥을 한 줄 먹으라고 했다. 경매장에는 점심대용으로 김밥으로 준비해놓고 있었다. 멀리서 오는 장사치들을 위해서 김밥을 배달시켜 놓은 것이다. 나도 장사치들 틈에 끼어 김밥을 한 줄 먹었다. 김밥은 그냥 주는데 커피값은 받는 것이었다.
김밥을 먹으며 싫증이 난 물건을 팔려고 가지고 왔다고 했더니 잘 했다면서 위탁으로 경매로 날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낙찰받으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장사치들의 차가 경매장 입구에 줄지어 있는데 차량에 실린 물건과 내려놓고 줄을 지은 물건을 살폈다. 시간이 되자 경매가 시작되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전부가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아, 알고 오는 사람들만 오는 모양이구나.
경매가 시작되자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앉았다. 위탁 물건부터 경매를 시작하는 바람에 내가 가지고 간 물건들이 속속 낙찰되었다. 싫증이 나서 버릴까 하던 물건들에 값이 매겨지는 게 신기했다.
경매란 언제 보아도 거래가 참으로 깔끔하다. 참외를 보고 보리를 내미는 이치다. 정확히 관심사에 의한 가격으로 매겨지는 것이다. 에누리도 없고 덤도 없고, 외상도 없으며, 흠도 잡지 않고 깔끔하다. 세상의 모든 거래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그날은 도자기 두 점을 팔고 싫증이 나서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탁본 액자 두 점을 팔고 다른 도자기 두 점과 청동으로 된 앙증맞은 주전자와 조선 후기에 제작된 듯한 호리병을 샀다. 주전자는 장식용으로 어디에 두어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사무실에 있는 대형 책장의 앞에 얹어두니 참 잘 어울렸다. 책상 앞에 앉으면 눈길이 거기로 갔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엄청 높은 장식용 소품이었다.
사흘이 지나서 또 경매하는 날 차를 끌고 갔다. 집과 사무실, 서재를 뒤져서 싫증이 나서 팔아도 좋을 잡동사니 몇 점을 싣고 갔다. 그림과 연필꽂이로 쓰던 청동 향로 등이었다. 청동 향료는 미얀마 보족시장 골동품점에서 예뻐서 사 온 것인데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되었다. 내가 산 가격의 거의 두 배였다.
이거 횡재했군!
그렇게 팔리면 현금으로 받아오지 않는다. 다른 물건을 사서, 아니 낙찰받아서 오는 것이다. 집안에서 쓸 물건이 아니라 장식할 소품을 사 오는 것인데, 열댓 번 다녔더니 없는 물건이 없다. 엿장수 가위부터 시작해서 구리로 만든 모형오토바이, 청동 두꺼비, 꽹과리로 만든 시계까지 진기한 물건이 사무실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 골동품 경매가 중독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기에 오는 사람들 말을 들으니 중독성이 있어서 경매하는 날짜만 기다려지고 주머니에 푼돈이 남아날 날이 없다고 했다.
적확한 이야기다.
다른 약속이 잡히면 혹시나 경매하는 날짜와 겹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부터 먼저 살핀다. 나는 무엇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깔끔하고 자유로운 경매를 접했으니 오죽했으랴. 중독성이 심하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유독 충동구매에 취약한 편이다.
언젠가 고속도로 군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갔다가 앞에 보이는 가판대의 신발이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것이 엄청 편하게 보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예상보다 싼 가격이었다. 충동구매에 취약한 내가 그냥 나올 리 만무다. 한 켤레를 사서 신어보았는데 그다음부터는 구두도 운동화도 신지 못하겠더라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신발을 살 일이 있으면 다른 볼일이 없어도 고속도로를 타고 의성까지 가서 차를 돌려 군위 하행선 휴게소 그 신발가게를 찾게 되는데, 남들이 이 사실을 알면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가볍고, 질기고, 발이 편하고, 디자인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정장에도 어울리고, 청바지에도 어울리고, 그럼 됐지. 그곳까지 갔다가 오는 게 뭐 대수랴? 고속도로 통행료와 기름값을 합쳐서 계산해도 시내에서 사는 신발값 반에도 못 미치는데.
바지를 사는 곳이 따로 있다. 꼭 그 가게에서만 산다. 윗도리 점퍼를 사는 가게도 따로 있고 티셔츠를 사는 가게도 따로 있다. 물론 모두 다 단골집이다.
바지는 시장통의 상설 할인매장에서 사는데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 다른 가게에서는 바지의 미지가 짧아서 골반바지가 되는 형국인데 그 가게의 바지는 미지가 길다. 학창시절부터 당꼬바지라고 불리는 탱고를 출 적에 입는 바지를 입을 버릇을 해서 허리가 적어도 배꼽까지는 올라와야 편한데 그 가게에는 바지가 그런 종류라 입어볼 필요도 없이 허리 치수만 보고 고른다. 그리고 더 좋은 점은 바지를 사면 바로 옆의 수선집에서 기장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그 가게에서 사는 손님에게는 수선가격을 절반만 받는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 가게의 사장은 물론이고 점원들이 다 알아보고 인사를 할 정도로 들락거린다. 나는 바지를 아껴서 입는 편이 아니다. 조금만 낡고 헤지거나 기름이 묻으면 미련 없이 찢어서 중기를 닦는 걸레로 쓴다. 가격이 싸서 걸레를 만들어도 아까운 마음이 없다.
점퍼를 사는 곳은 전문 옷가게가 아니다. 건설 안전용품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작업복으로 파는 점퍼가 있다. 안전용품점에서 옷을 산다? 몰라서 그렇지 디자인도 다양하고 재질이 좋으며 가격이 싸다. 나는 지갑을 반지갑을 쓰는 게 아니라 장지갑을 쓰는 관계로 속주머니가 있어야 편하다. 그 가게에서 사는 점퍼는 모두가 속주머니가 있고 볼펜을 꽂는 주머니도 따로 있다. 옛날의 단순한 작업복이 있는 게 아니다. 작업복이 아니라 외출복으로 입어도 좋을 점퍼가 늘려있다. 더 좋은 점은 그곳에서 사는 옷은 작업 도구로 분류되어 카드를 사용하면 부가세는 환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 할은 더 싸게 산다는 남이 모르는 속사정이 있다. 여름옷이든 겨울옷이든 그곳에서 산 점퍼를 입고 나가면 친구들이 디자인이 깔끔하다고,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백화점에서 샀다고 한다. 실상 백화점 물건보다 어느 면에서나 빠지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점퍼 하나를 사는 가격이면 그 집에서는 다섯 개를 살 수가 있을 정도로 싸다. 거듭하는 말이지만 백화점 물건보다 질이 떨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상한 인간이다. 옷은 싸야 부담이 없고, 음식도 싸야 맛이 있다. 비싼 음식은 왠지 부담이 생겨 맛을 모른다.
그러나 비싸게 주고 사는 물건도 있다.
그건 바로 티셔츠다. 그건, 싼 것은 쉽게 늘어지고 몸에 칭칭 감기는 게 단박에 표시가 난다. 싸고 품질이 좋은 집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메이커가 유명한 티셔츠를 입어야만 살짝 나온 아랫배를 감출 수가 있고 모양새가 난다.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처음 입어도 오래된 것처럼 편하고, 오래 입어도 새것처럼 티가 나는, 그런 티셔츠가 무난한데 시장에서는 그런 옷을 찾기가 어렵다.
남들은 아내가 사다 주는 옷을 입는다고 하는데 나는 성질이 고약해서 아내가 사다 주는 옷이 몸에 칭칭 감기는 기분이 들어 입는 게 고역이다. 내 스타일을 아내는 모른다. 아내가 사다 주는 옷은 입지도 않고 옷장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걸레로 변하니 아내는 이제는 내 옷에 대해서는 포기를 했다. 알아서 사 입으라는 투다. 관심이 없다. 관심이라면 다림질이 잘 되는 재질인가 아닌가를 따질 뿐이다. 아내가 사다 주는 것은 속옷뿐이다. 까탈스러운 옷차림의 내 취향에 아내는 손을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옷 이야기가 장황하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청동 코끼리를 몰고 들어온 얘기를 하다가 말았지. 충동구매가 강한 내가 눈독을 들이던 청동 코끼리를 몰고 들어왔는데 누구네 집, 창고에서 천대를 받으면서 갇혀 있었는지 녹과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목욕시키는 방법을 나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쇠로 된 수세미를 사용하여 닦으면 되는 것이다. 빨랫비누를 묻히면 녹이 쉽게 벗겨진다. 너무 세게 문지르면 청동 표면에 흠집이 생긴다. 살살 여유를 가지고 문질러 본래의 자연스러운 빛깔을 살려야 하는 일이다.
그건 아내에게 배운 방법이다.
집안에서 놋그릇을 사용하는 까닭으로 아내는 많이 닦아 보았는지 좀 닦아 달라고 했더니 팔이 아프다며 닦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절대로 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고 주의 주었다. 그런 물건들을 사 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만무다. 화장실에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거의 한 시간에 걸쳐 문질러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사무실 구석에 장식했다.
그런데 그게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비싸게 낙찰을 받았는데 귀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균형미가 적절하게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코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저돌적이고 반항의 빛이 역력한 공격형 태도를 표현한 거였다. 초식동물은 온순한 게 미덕인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귀는 아무리 보아도 제 귀가 아니라 가분수다.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 마리를 만들면서 더 큰 코끼리의 귀를 그대로 용접으로 붙인 것 같았다. 귀는 엄청 크고 배는 홀쭉하다. 어딘가 모르게 균형미가 없고 배가 고파서 저돌적으로 성격이 변한 것 같았다. 포악한 초식동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저걸 다시 내다 팔까?
파는 건 어렵지 않다.
경매장에 다시 가져가서 위탁 물건으로 올리면 간단한 거다.
며칠을 두고 보면 눈에 익겠지.
갈등하면서도 그대로 장식장에 두었다. 그런데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가며 신경이 쓰였다. 엊그제 토요일 경매에 내다 팔려고 했는데 그날은 모임이 있었다.
그날은 문인들을 만났다.
반가운 사람들인데 연락이 되어 오붓하게 만났다.
옛날의 문학청년들이 아니라 이젠 문우다. 모두가 집필하는 사람들이다. 아니다. 집필과 문학창작은 다르다. 집필은 참고문헌이 있고 창작은 머리로만 쓰는 글이다. 어쩌다 자료를 찾는 게 고작인 머리를 쓰는 작업이다. 가끔 바람을 쐬어야 하는 작업인지라 만났다. 옛날 습작 친구인데 인터넷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한동안 소식이 뜸했고 연락이 되는 지인들만 만났다. 모두 등단을 했고 책도 여러 권을 냈으며 유명 문학상들을 받은 문우도 있었다.
팔공산 자락의 어느 오리구이 집에서 만났는데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내 소유의 오토바이는 그냥 중국집 배달용 오토바이가 아니다. 웬만한 승용차와 가격이 맞먹는 대형오토바이다. 어디를 가도 눈길을 끄는 오토바이다.
그날 약속을 하면서 그곳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게 편하겠다고 했더니 모두 오토바이는 위험하고 술을 못 마신다면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리면 마중을 나오겠노라고 했다. 나는 지름길로 가겠다고 했다. 울산에서, 김해에서, 대구에서, 구미에서 만나는 무리인데, 구미에서 팔공산이 엄청 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늘 나들이 삼아서 다니는 길이라고 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가끔 나들이 삼아서 다니던 길이라 그 식당은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으로 가면서도 오늘이 골동품 경매일인데 어떤 진귀한 물건이 나올까? 그곳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워하며 중독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식당 앞에 도착하고 보니 약속이 한 시간이나 넘게 남아있었다. 그 식당에서 마냥 기다릴 내가 아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팔공산의 한티재까지 올라갔다. 한티재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고개를 오르는 기분은 보통이 아니다. 휴게소까지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를 타고 온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만나면 단박에 가까워진다. 오토바이가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오토바이에 대해서 노닥거리다가 시간이 되어 내려가니 모두 도착해 있었고 바로 음식이 나왔다. 오리 백숙이었다.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이다. 반가운 사람들과 먹으니 맛이 더했다. 자신의 근황과 문단이 돌아가는 얘기를 하며 맛있게 먹고, 부근의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겨서 노닥거리며, 노닥거려도 전혀 불편한 대상들이 아니었다. 속에 든 것을 토해내는 행위가 오히려 즐거운 상대들이었다. 왠지 그렇게 느껴지고 푸근한 사람들이다. 아무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노닥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인근의 송림사로 가자는데 뜻을 모았다. 흡연공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문학청년으로 만났는데 모두가 문단의 원로가 되어 있었다. 생각하니 환갑을 갓 넘긴 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송림사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절에 관해서, 전탑에 대해서, 아는 대로 얽어서 설명하며 경내를 한 바퀴 돌고 경내의 잔디밭 그늘에 둘러앉았다. 인간이란 원래 오랜만에 만나면 인사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법인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에게 문학과 문단의 근황이라는 공통 화제가 매개체 역할을 해서 대화의 연결고리가 걸려 있었다. 어느 문학단체의 누가 어떻고, 지금은 문단이 어떻게 변했으며 자신은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를 해가 설핏할 때까지 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서 글감을 만드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건 직감으로 알 수가 있다. 해가 설핏해지자 모두 문학적 포만감에 젖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빨리 돌아와 무엇이든 쓰고 싶은 마음이 일었고 같이 더 노닥거리고 싶은 갈등에 젖었다.
지리를 모르니 모두 내가 돌아갈 길이 가장 멀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실상은 오토바이에 올라앉아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구미인데 그것을 모르고 내가 돌아갈 길을 걱정했다. 오토바이는 믿는데 나를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그 팀과 만나면 언제나 헤어지는 게 숙제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내가 먼저 자리를 터는 게 순서인 듯했다. 오토바이라는 이동수단이 그들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감을 잡고 오토바이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었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했던가?
감정은 이성의 전범이라고 했던가?
이성적이나 감정적으로 면밀하게 짚어보니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골동품 경매장을 갔다가 오는 것보다 기분이 산뜻했고 신선한 충격을 잔뜩 받은 날이었다.
어떤 문학상이든 닥치는 대로 응모를 해야겠다고 마음의 칼날을 세웠다.
만난 팀들은 나를 평가하기를 끈질기다고 했다. 나는 끝을 보는 성격이다. 다들 알아주는 문학상을 받았는데 나는 변변한 문학상 하나를 받지 못했다. 문운이 없는 것인지 상복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날도 내가 최종심에 열여섯 번 오르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일이 화제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독한, 이라고 수식을 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니 사유를 깊게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적당히 긴장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석양의 햇빛을 등지고 달리니 내 그림자가 길게 아스팔트에 드리워졌다. 무릇 인간은 제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든가? 내 그림자를 밟고 다부동 재를 넘었다. 그 날은 내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산뜻한 기분이었다.
고개를 넘어서서 주유소를 찾았다. 오토바이 계기판에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떴기 때문이다. 고개를 내려서자 마치 오아시스처럼 여겨지는 주유소가 있었다.
연료를 넣으면서 보니 주유소 바로 옆에 골동품 경매라고 현수막이 붙은 것이 보였다. 이런 곳에 골동품 경매라? 낮은 담을 넘어다보니 석등과 석불 등이 마당에 늘려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그냥 지나치다니, 그건 지극히 나답지 못한 일이다. 기름을 넣고 경매장 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골동품 가게 문은 열려 있었고 젊은 주인장이 있었다. 경매는 토요일 오후에 하는데 조금 전에 끝이 났다는 설명이었다.
구경하는 데는 공짜지요?
내 물음에 주인장은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경매가 방금 끝이 나서인지 골동품이 어지럽게 늘려있었다. 물건을 걷어차지 않게 조심조심 돌아다니며 살폈다. 그런데 진열대 위에 있는 청동 코끼리가 눈길을 잡았다. 코끼리는 내 눈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다. 코를 늘어뜨리고 양순하게 생겨 먹은 것이 등에 십장생도를 양각해놓은 것이었다. 어느 부잣집 안방에 있다가 나온 것이 틀림이 없다. 길이는 한 자쯤 되어 보이는데 사무실에 이미 사다 놓은 코끼리와 비교했다. 그건 저돌적인데, 반해 대비되는 온순한 표정이었다. 청동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정감 어린 물건인데 가져다 놓으면 편안한 눈으로 감상을 할 수가 있겠다 싶었다. 일단 탐이 났다.
저 정도면 대충 얼마쯤 부를 거야.
경매장에 좀 다녀봐서 물건을 보면 값이 대충 감이 잡힌다. 그 정도만 해도 큰 수확이다. 경매사는 가격만 제시하는 게 아니다. 가끔은 물건에 관해 설명을 잠깐씩 하는데 그걸 들으면 물건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그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주인장은 다른 물건을 정리하면서, 커피를 한 잔 드릴까? 하고 물었다.
주인장이 주는 종이컵 커피를 들고 다니며 가게 안의 물건을 샅샅이 훑어보고 내가 골라놓은 청동 코끼리의 가격을 물었다.
주인장은 가격을 모른다고 했다.
뭐가 이래?
주인장의 부인이 경매로 받아 놓은 물건이라 가격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아마도 그 양반의 부인인 모양이었다. 말로 설명을 하다가 안 되겠는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이쪽 방에 있는 물건은 아내 담당이고 저쪽 방의 물건은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아마도 부인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가게인 모양이다. 경매를 시작하면 아내가 총무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보지 않아도 그렇게 형성된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가 있었다.
조금 있으니 가격이 나왔다. 그의 부인이 전화한 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가격이 적중했다. 경매에서 그 가격에 낙찰받았다고 했으니 에누리도 덤도 없는 가격이다. 그렇다면 내 물건이다. 고객 확보 차원에서 그 가격에 넘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양반의 걱정을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그 물건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걱정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형성된 가격을 지급하고 오토바이 옆구리에 붙은 가죽 가방을 열어 그곳에 넣으니 딱 맞았다.
다음 주 경매에 꼭 참석하겠다고 하고는 코끼리 한 마리를, 통째로 오토바이에 싣고 집으로 날아왔다.
사무실에 와서 청동 코끼리 두 마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결과는 먼저 낙찰받은 것은 다음 주에 날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놈은 재물을 몰고 오는 것이 아니라 화를 몰고 오는 놈이 분명했다. 새로 사 온 코끼리를 닦으면서 보니 이마에 재물을 뜻하는 상평통보가 양각되어 있었다.
코끼리 한 마리에 옛사람들은 많은 뜻을 담았군. 그 문우들을 만난 기념으로 생각하면 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 사 온 코끼리를 보면 송림사에서 노닥거리던 그 문우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예감이었다. 코끼리를 깨끗이 닦아 먼저 낙찰받은 성난 코끼리 자리에 놓고 저돌적인 코끼리를 탁자 밑, 발치에 내려두고 한쪽 발로 등을 밟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음 주에 이 코끼리를 부상고개 경매장에 내다 팔까, 아니면 새로 발견한 경매장에 가서 팔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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