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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돌보도록 부탁받은 성도들(히브리서 10:19~25)
2024년 11월 17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19~25)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인도하시는 가운데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과 그분의 제자의 모습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잘 이해해야 되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목적을 알아야 되고, 어디있는지 알아야 방향이 생기고, 목적의 성격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잘못 이해하면 교회는 쇠퇴하고, 썩고, 분리가 되고, 망하는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임금과 백성의 사이도 멀지만,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는 그 간격이 무한한 그렇게 먼 관계입니다. 우리는 사실 지으신 분이 “아이고, 잘못 지었네! 아이고! 미안해.” 하고 벌레를 손으로 짓눌러 죽이듯이, 누르며 그렇게 끝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 안에 당신의 속성을 넣으시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그와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 우리는 막 버려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는 인간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1등만 취하고 그 나머지는 버리는 식으로 무자비하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소중한 열매를 맺기 위한 간절한 하나님의 소망이 담긴 존재입니다.
사실 구약때까지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임금과 백성의 관계로 표현돼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냐? 무조건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임금의 말은 법입니다. “저걸 저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 임금의 말이 법이 되는 것은 TV에서 사극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의 말은 곧 법입니다.
또한 임금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임금을 모신 이스라엘은 주님을 영접하는 데 실패했고, 1400년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왕이신 분을 영접한 자들은 불과 한줌의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 그 나타나신 분은 임의로 명령하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물론 그가 신분적으로는 맞습니다. 신분적으로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도 아버지와 함께 창조주이신데, 이 창조주가 구약에서는 임금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셔서 임금 정도로 자기를 낮추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오신 다음에는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는 제자들을 3년 동안 그토록 사랑하고 가르쳤습니다. 다 녹아내릴 것 같은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전에 근엄한 것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던, 세상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바라던, 그런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임금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주님의 신분은 임금보다도 더 높습니다. 창조주이시지만, 그는 제자를 사랑해서 그들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동역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 주시며 ‘네가 나를 능가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나 정도는 되라.’ 하는 식으로 엄청 격려해주어서 제자들은 그의 옆에서 나란히 사진도 찍고 같이 밥도 먹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변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사연은 오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 그림이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주님을 섬길 때 임금을 섬기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게 주를 섬깁니다. 그는 임금인데도 불구하고,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낮추시고 나를 제자 삼아 주셨을 때, 나는 ‘아, 임금보다 더 쉽게 대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임금이신 주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그를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는 나를 높이셔서 ‘넌 내 제자라.’ 하셨습니다. 나를 이렇게 높여주신 그분은 완벽하시고 완전한 의이십니다. 그가 나를 이렇게 올려서 살리시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오늘 제자 삼으시고,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온기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기념할 만한 우리의 ‘제자상(Discipleship)’입니다. 우리는 너무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들 서로 경쟁해서 1등만 내 앞에 나와라. 5등까지만 뽑을게.” 하는 식으로 경쟁을 시켜서 뛰어난 자만 선발하여 데려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시기 전 세배대의 어머니가 그에게 와서 “우리 아들은 좌의정 또 우의정 시켜 주십시오.”라고 하며 ‘인척이니까 높은 데 세워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잘못 이해하고 있구나. 여기서는 섬겨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는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섬기는 ‘잡(job)이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들, 섬겨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알아야 할 것은, ‘집사’라는 말이 ‘섬긴다’는 말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집사, 안수집사, 장로, 권사는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높다면 더 잘 섬겨야 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좀 잘못된 길을 밟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주의 교회는 피라미드 같은 제도로 서로를 짓누르고, 기합 주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압박해서 권위를 주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청지기인데, 우리는 신앙이 알아서 예수 믿고 열심히 믿는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잘 받아들여지고, 대충하고 땡땡이 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잘리거나, 아슬아슬하게 천국에 겨우 진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는 임금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주님은 우리 스승님, 우리 선생님입니다. 그가 우리의 주 되시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섬기는 듯해야 합니다. 그분이 가르친 대로 행해야 합니다. 가까이에서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임금은 권위만 있을 뿐,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알고, 주님 생각을 알고, 주님의 뜻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알아서 내 주님 돕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그림자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자기에게 예수 이름이 있다고 해서 “오! 예수의 권세!” 하면서 권세를 부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예수 이름 있으니, 이제 내게서 능력이 팍팍 나오겠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을 소유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보자면, 그의 명예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내게 있다.” 하는 말을 들을 때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게! 나는 전능한 능력으로 너를 도울게! 나는 천국에 너를 끌어 올릴게! 난 너를 절대 버리지 않을게!’ 하는 생각을 하십니다. ‘내 하나님인 나의 명예로.’ 우리가 예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난 저분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 난 저분을 위해서 죽는다! 저분을 위해 싸운다! 난 저분의 권세로 너에게 말하노니, 너희도 다 회개하라!’ 이처럼 그분의 명예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이 명예를 내게 줬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싸워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도 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의 명예를 책임지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제자입니다. 내 선생님의 이름으로. 청지기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데, 그것을 마치 ‘그래 어디 보자. 잘 되나 안 되나, 신자로서의 너희의 가치를 평가하겠다.’ 하는 식으로 보면, 신앙생활이 전부 잘못되게 됩니다. 우리 각각이 다 청지기입니다. 주님이 므나를 맡겼을 때 열매를 남겨오는 자, 달란트를 주었을 때 열매를 남겨오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매 맞으시고, 골고다에서 피 흘리시고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너희도 제자 삼아 나와 똑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면 그분과 입장이 똑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가르쳤듯이, 이제 나도 주님의 입장이 된다.’ 으시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일을 돕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여기 와서 신앙생활에 잘 적응하면 성공한 것이고, 아니면 ‘세상에 돌아갈까, 말까.’ 고민해야 될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들의 창조주 되시지만 각인에게는 영원히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토록 기다리고 있다가 오늘 불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인생에 불러주셔서 눈을 뜨고 내 인생을 돌아보니,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살기조차 어렵습니다. ‘나 어떻게 먹고살지? 능력도 없고, 직장 구하기도 어렵고, 가난하고, 잘 생기지도 않고, 키도 작고. 이런데 하나님, 나는 무슨 희망을 갖습니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당신을 그가 구했잖아요! 천국 갈 때까지만 참으면 됩니다. 그 시간은 눈 한번 깜빡할 동안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내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여러분이 다 그의 제자입니다. 전부 청지기로서 각각 담당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맡기고 승천하셨습니다. 수백 명이 주님이 승천하시는 그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승천하신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용기를 가졌고, 그때부터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받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초대 교회 때에 계시가 나오고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아무도 없으면 내 주님을 내가 가서 모셔야 합니다. 나도 바빠 죽겠어도 주님이 강도 맞아 길에 쓰러지시면 그분을 내가 치료하고, 그분을 내가 모시고, 그분이 완쾌될 때까지 내가 도와야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고,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갈 때 소망을 끊임없이 부어주었고, 그는 우리를 배신한 것이 하나도 없고, 그는 신실한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자들이 처음에 열두 사도 플러스 한 100명 있었다고 가정할 때, 성령이 임하신 다음부터는 그 수가 엄청 늘어났습니다. 그들이 다 예수 제자들입니다. 신약교회는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성경에 신약시대에 갑자기 주님과 우리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진리로 너희를 인도한다.” 우리는 그에게 배우는 입장입니다. 엄하게 알지도 못하는 것을 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도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합니다. 나는 내 중심으로 죽을 때까지 나만 쳐다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평소에 우리가 누리던 것을 50퍼센트는 포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 앞선 세대들도 조금 있다가 그들이 중심세력이 되었다가 또 금방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 그래도 한 40년은 누려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한 10년 하면 조금씩 밀려가야 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교회에서 평소에 당연하게 누렸던 혜택들을 다음 세대에게 내주어야 합니다. 오래 가질 않습니다. 얼른, 얼른, 5년, 10년 조금씩 물러가 줘야 합니다. 계속 머물러 있어서 교회가 늙어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 있지만, 나 누릴 수 있지만, 쓸 수 있지마는,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지마는 다음 세대들을 위해 우리 것은 50프로만 누리고 나머지는 전부 그들을 위해 포기를 해줘야 합니다. 자꾸 나와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들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가 된 것을 마치 다 마스터한 것처럼 생각하는지 힘을 주고 그러는데,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우리 목사님들이 기능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 벌써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집니다. 목사님들, 언제 그렇게 마스터했나요? 내가 보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데요? 성도의 도리도 안 하는데? 힘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원수가 유혹하면 금방 넘어가는데? 언제 그렇게 마스터가 됐습니까? 힘주지 마세요. 내가 보기엔 너무너무 한심한데도, 힘만 주고 하는 것, 그런 것이 통할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세력이 자꾸 교회를 치고 들어옵니다. 앞으로 교회는 위험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확실히 핍박받을 때가 오히려 나은지도 모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교회 전체를 신뢰를 안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지금 여기가 갈림길입니다. 이 이야기를 잊지 마세요. 우리 교회는 심각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누룩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사를 치는, 자기 교회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누룩이 들어왔습니다. 이 성향이 교회에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이전의 교육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주님이 듣고 계시고, 주님의 판단 레이더 망 안에 있습니다. 말 한번 잘못하면 즉사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 잘했다.” 으시대고 가는데 가다가 차 사고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즉사해버리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난 무서운 이 역사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많고 목사 많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될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짜들 하고는 상대를 안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모시는 교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더러운 누룩이 있으니, 우리 교회가 또 다른 환란을 맞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감독을 치고 내가 감독해도 되겠네? 감독되면 돈이 여기저기 들어오겠네? 교회가 무너지면? 그 일에 함께하면 예배당 하나 나도 받고, 그러면 예배당의 수입은 다 내 것이 되겠네? 예배당의 권리가 내게 오면, 내가 다 팔아먹어도 되겠네?’ 이런 식으로 사태가 시작됐지 않습니까? ‘예배당, 이건 내꺼다.’ 목사들이 그랬습니다. 이 누룩이 우리 교회에서 사라지게 우리는 심각하게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는 하나님만이 계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성소보다 더 거룩한 곳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기 나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데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주님의 제자로 세워주셨고, 나는 신분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분의 제자로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그를 위해 나의 인생을 바치고, 나의 삶을 바치고, 나의 정성을 바쳐 그분을 모실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더라도. 이것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오해하고, 날 이해하지 못하는 인생을 벗어나려면 몇 십 년 기다려야 되겠지만, 어떤 분한테는 10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차피 일주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주님.
저는 사태 때 사람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목회실을 때려 부수는 영상을 봤습니다. 저는 지금 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직원들에게 “우리가 너희들 월급 주고 있는 거 알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헌금을 그렇게 했습니까? 교회에 월급 주는 것입니까? 이렇게 말하기도 정말 구질구질한데, 여러분의 아주 조금의 그것으로 지옥에 갈 수 있는 여러분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직원들 월급을 줬어요? 자기를 지옥에서 구해내 주신 하나님은 없습니까?
지옥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이 나의 오늘의 삶, 나의 오늘 일주일간의 삶, 나의 오늘 한 달간의 삶, 나의 오늘 1년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턴 주님이 날 간수해 주셔야 합니다. 육체 같은 것은 깨지면 그만이지만,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주님 믿는 신앙, 주님을 만나는 시간의 공간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구약교회에서부터 하나님께 그 성전에서 엄청난 경비를 들였습니다. 무지무지한 그 제사를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 드리며 한 해의 용서를 받고 넘어갔습니다. 엄청나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이 부족해도 뭣도 모르고 그냥 드리는 그것 때문에 지금 저렇게 부강해서 아무도 이스라엘 깨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헌신하는 것, 헌금하는 것은 교회에 월급 주는 것도, 교회에 보태주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월급이나 쓰라고 기부한 사람이 있습니까? 망언을 해도 보통 망언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오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치고 들어왔겠죠. 나 같으면 몽둥이 들고 오더라도 “하나님, 죄송해요, 저 잠깐만 있다 갈게요.” 하고서는 꽃병만 살짝 ‘틱’ 떨어뜨리고 갈 것 같습니다. 큰 걸 부딪쳤다가 그대로 벼락 맞을까 봐. 정말 살아있는 하나님 믿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주님의 제자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토록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청소년부는 주일에 대예배를 함께 드리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고 오해할까 봐 이런 얘기를 하는 데, 나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하나님 심정을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가 어떤 얘기를 해도 속지 마세요.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인인 걸 알 거다. 나와 관련돼 있는 걸 알 거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서로 도와 사랑과 선행을 행하며 마지막 시간까지 이렇게 해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짐짓죄다(히 10:25~26).’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는 ‘너희는 하나님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식구라[1].’ 했고, 에베소서 1장 11절에 보면, ‘모든 일을 그 안에서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엡 1:11)[2].’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 일일이 과제가 있습니다. 영원토록 준비되어있는 과제가 있습니다[3]. 태어났으면, 내게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되는 대로 니가 알아서 감당해 봐.’ 하지 않으십니다. 정해져 있습니다.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500억 년 후에 몇 월 며칠 지구에 있는 한국의 어디의 사람에게 이 동안 이걸 맡길 터인데, 이 영혼은 나를 거절할 거다.’ 알고 계십니다. 혹은 ‘나를 사랑하여 받을 것이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그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은 ‘우리가 다 사랑해야 된다. 그가 갚으시리라. 오늘은 사랑해라[4].’ 했고, 4절은 ‘너희가 사랑하고 있으니 잘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참아야 된다. 핍박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오늘 우리 같은 때.[5]’라고 했고, 또 ‘그 나라를 위해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는 오늘 근거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께 ‘합당하다, 아니다’로 오늘 이것 때문에 고난을 받는 거다. 우리는 환란을 받지만, 우리를 환란하게 하는 자는 결국 기어코 환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주께서 나타나실 때 다 갚아주시리라,[6]’ 했습니다.
시편 35편은 ‘하나님, 적이 나를 계속 치려고 하고 나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나를 계속 ‘저는 나쁘다 뭐하다’고 거짓을 말하며 나를 죽이려고 이렇게 하는데 제발 도와주십시오.[7]’ 하는 내용인데, 시편에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원수가 나를 계속 핍박하고 거짓말로 나를 몰아붙이고, 그렇게 해서 나를 멸하게 하나이다. 난 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날 살려주십시오.’ 내가 약간 주책스럽고 부끄러워서 얘기는 안 했는데, 우리 교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로 내 이야기입니다. 남의 얘기는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19절이라는 찬양을 우리도 한번 합시다. 누가 랩 잘하는 사람 있으면 그것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은혜가 됩니다. 무슨 뜻이냐?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길 원하노라!’ 하는 가사입니다. 그 다음 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단을 너의 발 앞에서 상하게 하시리라.[8]’ 합니다. 속이 시원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교회를 잘 돌보아주라는 것입니다. 너 잘되게 하지 말고, 너에게 맡긴 교회 잘 돌아주라 하는 얘기입니다. 교회 잘 돌봐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우리 성락교회를 사랑으로 잘 도와주길 바라겠습니다. 강도에게 두들겨 맞고 완전히 발기발기 찢어져 희망도 없는데 ‘아, 나 교회 떠난다.’ 하고 버리지 말고, 다시 없는 한 번의 주님께서 주신 이 환란, 이때 정말로 주의 교회를 잘 돌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은 모두가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영원토록 주님이 기념할 것입니다. 그 영혼을 또 되새기시고, 또 되새기시고, 그 영혼을 하늘의 큰 영광 속에 품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귀한 영혼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은 우리 스승, 우리 선생님, 또 우리의 임금이시고 우리의 창조주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제자로서 우리의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남일처럼 여기지 아니하고, 어려운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고, 안타까운 교회를 살리고 내 정성으로 싸매고 기름을 붓고 상처를 낫도록 돕고 역사할 것입니다. 우리를 받아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들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담당자가 알아서 하겠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원토록 한 번 있는 우리가 사랑할 기회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여 섬기길 원합니다. 세상은 자기들의 뜻대로 가고 여러 가지 다른 이해대로, 이해를 따라 다른 어떤 철학을 따라가지만,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살려주시고, 원수에게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정말 우리 교회, 악한 원수의 뿌리가 박혀 있지 않는 정말 깨끗한 교회로, 안전한 교회로 영구히 바꿔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2]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3]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8)
[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살후 1:3)
[5]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살후 1:4)
[6]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5~10)
[7]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시 35:1~10)
[8]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롬 16:20)
[출처] 20241117 교회를 돌보도록 부탁받은 성도들(히브리서 10:19~25)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