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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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변성, 상호의존성을 중심으로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분석
1. 서론 - 시의 문으로 들어가기 전 전제 사항
1. 존재의 원리(불교적, 실존주의적, 양자역학적 원리)
1) 존재의 가변성(무자성,하이데거 존재론, 들뢰즈 배치이론) -모든 존재는 고정된 본질(자성)이 없으며, 관계 속에서만 일시적으로 형성됨. "나"라는 개념도 다른 요소들과의 연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
2) 존재의 동화원리(피셔의 감정이입원리, 일즉다 다즉일 상즉상입원리)-내가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나무와 연결되고 나무가 된다.
3) 존재의 상호 의존성-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유전연기).인과론,인드라망으로 얽혀있다.
4) 동등원리 및 무분별성 원리- 우주의 입장(제일의제)에서는 모든 것이 동일하다. 선악과 미추, 구정(垢淨)은 인간이 만든 상대적 가치일 뿐, 우주 자체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모든 것은 차별 없이 그대로 존재하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눈 개념(선/악, 미/추)은 상대적인 것이다.선악과 미추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불교 무분별성, 노자의 天地不仁론,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철학(가치상대주의, 관점주의, 실용주의, 현상학적 관점)
2. (시창작 원리) 술이부작 원리 - 저자가 임의대로 말을 만들지말고, 사물에서 정확하게 개연성 있게 이치나 원리를 발견하여 있는 그대로 기술.이 원리는 작은 사물에서 발견해도 우주 전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여서 시의 승화, 확장으로 이어짐.시에서는 남이 보지 새로운 관점과 원리여야 함.
2. 제목의 의미
1)「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은
‘보이는 것’과 ‘실제 존재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제목이다.
단순히 시각적 거리보다 존재론적, 관계론적 가까움을 내포하고 있다.
"토마토인 내가 엄마가 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 엄마와 자식의 관계에서 물리적 거리보다 본질적 연계를 강조.
2) 존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가변적으로 존재한다.
3. 주제
1) 존재의 가변성과 의존성
토마토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마른 화분과 실외기 물방울처럼, 필연적·우연적 관계 속에서 존재가 지속된다.
2) 돌봄과 성장의 원리
엄마의 행위(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둠)는 곧 존재를 받쳐주는 행위다.
그러나 성장한 존재는 결국 독립해야 하며, 떨어짐(이별) 또한 존재의 원리다.
3) 운명적 성장과 독립
토마토는 스스로 땅에 떨어져 새로운 싹을 틔운다.
모든 존재는 의존하며 자라지만, 결국 혼자가 된다.
3. 상징 분석
1) 에어컨 실외기
억압적이고 소음이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소음)이 결국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물이 토마토 화분을 적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2) 물이 뚝뚝 떨어진다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이며,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실외기의 물이 원래의 목적(더위를 식히는 것)과 다르게 토마토에게 도움을 주듯, 존재의 의미는 관계 속에서 변화할 수 있다.
의미의 불확정성과 존재의 가변성을 보여준다.
3) 마른 토마토 화분
의존성을 필요로 하는 존재, 스스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실외기의 물이 필요하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엄마)가 밀어줘야 한다.
존재는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유지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4) 엄마
존재를 받쳐주는 근원적인 힘이며, 성장의 배경이 되는 존재이다.
단순한 가족적 의미를 넘어, 존재론적 보호자, 생명의 기반을 의미한다.
그러나 ‘엄마 없는 엄마’처럼, 절대적인 보호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5) 새순과 큰 줄기
새순은 아직 연약한 존재이며, 큰 줄기는 새순을 지지해주는 존재이다.
모든 생명은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쳐주는 존재(줄기)가 필요하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 환경, 사회적 구조가 큰 줄기의 역할을 한다.
4. 문장 단위 분석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파트 윗층에서 오늘 별로 덥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에어콘을 트는구나. 불편을 간접 암시한다.
평범한 일상적 사실처럼 보이지만, 곧 존재의 연관성과 의존성을 암시한다.
인간이 에어컨을 가동해야 할 정도로 더운 환경 → 실외기의 물방울 생성 → 토마토 화분에 영향.
한 존재의 행동이 다른 존재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실외기 물은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엄마는 이를 ‘생명을 살리는 요소’로 변환한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소음)이 결국 생명 유지의 중요한 역할로 존재가 바뀐다. 존재의 가변성을 상징한다.
존재의 본질은 무이다. 모든 사물은 자성, 독립성이 없다. 모두 관계론적으로 얽혀있다. 연기에 따라 존재가 수시로 바뀐다. 친구 옆에서는 친구, 대나무 밑에 가면 대나무가 되듯이 화자는 토마토가 되고 엄마는 물쪽으로 밀어두어 화자를 받쳐주는 존재가 된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새순이 자라기 위해서는 줄기가 필요하다.
모든 존재는 받쳐주는 존재 없이 성장할 수 없다. 받쳐주는 존재가 물에서 엄마로 줄기, 양수로 변주된다.
손끝이 새파랗다
손끝은 새파랗다는 것은 부족하고 미숙함을 의미.
즉,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존재의 안타까움을 드러냄.
존재는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늘 미완성 상태에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부모 세대(줄기)는 새순을 충분히 밀어올리지 못해 늘 미안함을 느낀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성장 과정에서 느끼는 엄마의 연민과 안쓰러움.
일반 상식과는 다른 높은 시야를 가진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즉 존재는 형이상학적인 방향이나 목적이 없다. 우연적이고 우연의 필연성이며, 가변적 상호의존적인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다.자연에는 안쓰러움이나 선악, 미추 등의 가치판단이 없다. 자연은 불평을 안 한다. 물이 없으면 말라죽고 물이 있으면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다.이것이 천리, 우주원리다. 인간만이 계획하고 계산하고 바꾸고 배반하고 거짓말하고 욕심을 부리는 존재다. 이것은 천리에 맞지는 않는 것이다.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토마토가 그렇듯 화자도 성숙과 독립의 과정을 자연 법칙으로 받아들임. 존재는 자립을 위해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장은 결국 이별을 포함한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 성숙한 존재는 자연스럽게 겸손해지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음.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 독립은 필연적이며, 누구도 영원히 붙잡혀 있을 수 없음. "떨어짐"은 단절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예: 땅에 떨어진 열매가 다시 씨앗이 됨).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존재의 근원(땅)에서 태어났지만, 현실보다 이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속성을 의미. 그러나 하늘은 실체가 없고, 결국 땅에 뿌리를 내려야만 생존할 수 있음.
죽음(소멸)을 두려워하는 존재의 본질적 속성. 그러나 모든 존재는 결국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연 법칙을 거스를 수 없음.
성장과 독립을 원하면서도, 결국에는 소멸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순을 보여줌.
"엄마 없는 엄마" 누군가를 돌봐야 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봐줄 존재(엄마)는 부재.‘엄마 없는 엄마’처럼, 절대적인 보호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
"엄마밖에 없는 딸" 엄마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존재, 독립하지 못한 채 보호받아야만 하는 상태.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힘을 드러냄.
인간 존재의 회복력과 끈질긴 삶의 지속 가능성을 은유.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과육(살점)에서 싹이 돋는다는 것은 죽음과 소멸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함을 의미. 생명의 순환과 연속성을 강조. 자기 자신을 디디고 성장하는 것은, 의존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과정의 상징. 자기 자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는 자기 생명력의 확장.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양수(羊水): 생명의 근원, 태아를 보호하는 원천적인 물.
해묵은 양수 → 과거의 흔적, 오래된 기억이나 유전된 생명의 기원이나 본질적인 조건을 의미
생명은 이전 세대의 흔적을 흡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자라난다.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홀로 성장하고 독립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독하다.인간의 시선에서 보면, 독립과 생존은 외로운 과정이다. 인간이 자신의 외로움을 힘겨워하는 것과 달리, 자연은 묵묵히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고독과 운명을 거부하지만, 자연은 아무 말 없이 주어진 길을 따른다.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의 법칙을 따른다.
성장과 독립은 고독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할 필연적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내포.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전체라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는 자연은 외로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나와 너를 나누어 개별화, 파편화하여 나는 너를 짓밟고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