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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영원할 것 같은 화두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게 저주스러울 거의 유일한 순간이 있다. 집 떠나와, 기차타고 훈련소로 떠나는 시간. 꽃다운 나이에 시커먼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때 아닌 ‘집단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 2년여의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20세 이상의 신체 건강한 남자는 모조리(단 장애가 있거나, 집에 돈이 많으면 제외) ‘군대’를 가야하는 징병제 사회. 70만 정도의 상비군과, 300만 정도의 예비군과, 500만의 정도의 민방위가 존재하는 사회. 한번의 식민통치와 두 번의 군부독재를 겪은 사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오빠들이 ‘군대 꿈’을 꾸며 비명 속에 잠을 깨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군대는 평생 동안 따라붙는 화두다. 어릴 때에는 행동이 느릿하거나, 밥이라도 천천히 먹을라치면, ‘나중에 군대가서 어쩌려고 그래!’라는 꾸중을 들어야 하며, 20대가 되서는 ‘군대 언제 가냐?’라는 말을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 까지 들어야하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는 ‘군대 어디 갔다 오셨어요?’라는 말에 자신의 병력사항을 줄줄이 나열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군대와 관련된 담화들은 특히 예비역들의 ‘군대예기’에서 그 꽃을 피운다. 포크레인으로 반나절이면 할 일을 500명 투입해서 3일 동안 해내는 식의 얘기를 비롯해서, 그 유명한 ‘군대스리가’(군대축구) 이야기, 내무반 이야기, 행군 이야기 등등 특유의 과장된 화법과 더불어서 쏟아지는 그 이야기들은 전래동화라도 되는 양 세대를 넘어서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군대이야기가 범람하는 것이 단순히 한국이 징병제사회이기 때문일까?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자들의 한평생을, 그것도 전쟁이나 군사적 분쟁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병영생활의 경험만으로도 휘어잡고 있다는 것. 깔끔하게 잠시 동안 나라 지키고 오는 것과는 확실한 거리가 있다는 증거다.
삽질의 추억
군대의 경험은 무엇보다도 ‘고생’의 경험이다. 그것도 사서하는 고생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하는 고생이다. 만약 그 고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고생이라면 비록 시켜서 하는 것 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군대에 대한 예비역들의 성토를 들어보면 그 고생이라는 것이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오늘은 여기를 파서 저기를 메우고, 내일은 저기를 파서 여기를 메우는 식의 단순노동의 반복. 하는 사람도 시키는 사람도 왜 하는지 잘 모르는 이른바 ‘삽질’들의 향연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병력자원이 넘쳐나는 관계로, 고졸자 이하는 현역입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덕분에 병력의 대부분이 대학생인 유례없는 ‘고학력부대’가 되어버린 것이 국군의 현실이다. 한국의 군대는 이 고학력자들을 뭔 일이라도 난 것 마냥 황급히 불러들여놓고, 어리둥절해 하는 그들의 손에 삽 하나를 덥석 쥐여주고 있다. 과거 구소련에서는 지식인들을 상대로 ‘단순노동을 반복하게 하는 고문’을 행했었다고 한다. 지식인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교육의 세례를 한 몸에 받고 온 이들에게 이런 식의 노동을 강요하는 것 역시 고문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대한민국은 마초들의 천국?)
삽질의 추억
한편, 간부들이 사병들을 제집 종놈 부리듯이 부리는 것 역시 공공연한 일이다. 운전병은 어느덧 ‘개인 운전수’가 되고, 이사 등 각종 경조사에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하는 것까지 사병들을 부려먹는다. 과거 그 어떤 제후나 귀족도 부리지 못했을 만큼의 노예가 군의 고위 간부에게 존재한다는 것. 분명히 나라 지키려 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간부아들 과외를 시켜주고 있더라는 식의 황당한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력의 남용, 유출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을 야기한다. 가장 빤짝거릴 나이에 군에 묶여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이뤄낼 수 있는 가상의 기회비용을 사회가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거기다 얹어서 이런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노동에 그들이 공공연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 이래 놓고 국가 경쟁력이 어쩌구를 논하는 것은 청소년들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놓고 창의력을 말하는 ‘교육자들’만큼이나 모순적이다.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도, 이러한 삽질의 추억은 군대에 묶여있는 개개인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다. 복학한 예비역들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은 대학가의 고질적인 문제 거리 중 하나다. 더불어서 심리적인 차원에서도 불합리한 노동에 동원된 것은 커다란 자괴감으로 나타난다.
불합리한 노동의 내용은 고사하더라도, ‘보상’이라도 잘 해주면 그나마 나을 터인데, 대한민국 사병의 봉급수준은 국가의 경제력 수준에 비추어 볼 때 끔찍하다. 경제규모를 봐도 선진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대만의 사병봉급은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과거 자유당시절의 사병봉급은 대장과 비교했을 때 30:1정도의 비율이었다.(지금은 수백배에 달한다.) 그런데 지금은? 97년 IMF당시 한달에 2만 여원을 받던 한국의 장병들은 무려 월급의 10%(!)를 삭감(당)해 위기에 보탰다. 에라! 벼룩의 간을 내서 회쳐먹고 매운탕까지 끓여먹을 놈들아!
오래서 왔고, 따로 돈을 벌 길도 없으니,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는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올랐다고 오른 사병의 봉급은 휴가는 고사하고 부대 안에서 생활하기도 빠듯하다. 군대에 가있는 것도 모자라서, 집에다가 손까지 벌려야 하는 이들의 처지. 자유와 신체를 국가에 차압당해 놓고서도, ‘거지’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병들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것이 없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나왔더니, ‘남은 건 광속의 삽질실력뿐’이라면 누가 그것을 신성하다 말 할 수 있겠는가?
집단 수용소 - 인권의 사각지대
한편,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군대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든 것이 오픈 된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항상 누군가의 시야에 들어와 있으며, 개인공간은 고사하고 지위가 낮을 때에는 내부적 관행에 의해 편하게 앉아있을 수도 없는 이런 구조는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할 20대 초반의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없어졌다, 없어졌다 해도 끊이지 않는 구타와 가혹행위, 성추행 등도 역시 마찬가지다. 내부적인 폭력행위를 근절하려면, 적어도 내부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를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와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군대는 이러한 폭력을 일정부분 용인하고, 심지어는 부추기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국방부는 항상 근절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은폐와 축소를 위해 힘쓰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1980년부터 95년 말까지 15년 5개월간 군대에서 죽어나간 사람의 수가 8951명이다. 1996년부터 2002년 7월까지 사망자수는 1538명에 이른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매년 몇 백 명의 귀한 목숨이 죽어나간다. 국방부는 사고사를 제외한 사망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 이유에 의한 자살’로 몰아붙이는 것이 관행이 되어있다. 과학수사는 고사하고, 주변 장병들의 진술이 다르다며 윽박질러 입을 맞추게 하는 것이 이른바 국방부의 ‘수사’다. 나라를 지키러 가는 것이 아무리 의무라고 해도,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권리이다. 국가가 자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존재의미마저 망각해 버린 것이다. 그럴 때의 국가는 손에 폭탄을 들고 날뛰는 미치광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미친 짓들이 멈추려면 무엇보다도, 국방의 의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들은 군인이기에 앞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온 ‘시민’이다.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군인에게도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 귀한 손님 모시듯 대해도 모자를 판에 진시황도 아닌 것이, 파라오도 아닌 것이, 불러다 놓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막 대하는 것은 이 무슨 시대를 역행하는 착각이란 말인가?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참으로 자주,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러나 군인은 범죄자도 아니고, 나라에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아니다.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죄수취급 당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지 않은가?
귀한 젊은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_ _)
‘국민’생산 공장 - 인간의 파괴
이처럼 상식선에서만 봐도 현재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아주 당연한 듯이 용인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군대에 대한 이의제기가 나올 때 마다 군대와 국방부를 적극 방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예비역’들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예비역들 중 그 누구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녕 그들에게 집단적인 스톡홀롬 신드롬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현재 군대가 한국사회에서 국토방위 외에 수행하고 있는 주요한 임무는 ‘국민’만들기 이다. 박정희가 유신과 더불어서 ‘급조한’ 한국의 전통인 충효사상을 가장 강하게 받아들인 곳이 학교와 군대다. 이 두 곳은 엄청나게 달라야 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거의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도덕교과서의 마지막 단원. ‘국가 없는 국민 없고 안보 없는 평화 없다’라는 서슬 퍼런 구호가 굵은 고딕체로 버티고 앉았다. 12년의 공교육과정이 보여주는 국가관이란 결국 저 표어의 되풀이이다.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반발은 ‘입시’라는 것을 인질로 삼아 가볍게 기각된다. 한편 군대에서는 이러한 과정의 연장선상에서의 ‘교육’이 2년여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정훈교육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상교육’은 신체적 구속과 물리력의 행사를 통해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헌법에 명시된 자유인 ‘사상의 자유’를 국가가 나서서 위배하는 것이다. 헌법이란 어느 때에는 지켜지고 어느 때에는 안 지켜도 되는 고무줄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신념을 가질 자유이다. 그러나 군대는 이러한 것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닥치고 받아들일’것을 요구한다.
결국 군대가 만들어내는 ‘군인’은 잡음을 내지 않으면서,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 같은 인간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개인의 사상, 가치, 존엄은 끊임없는 회유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이러한 비인간적 관행들은 45년 광복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이 박혀있다. ‘군대는 다 그래, 어쩔 수 없어’라는 자조적인 한마디는, 개인의 존엄과 맹종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 수많은 고뇌들이 ‘거대한 냉소’로 변해버렸음을 말한다.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소처럼 퍼져있다.
결국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맹종에 길들여진 냉소적 사회’가 등장한다. 남들보다 한 뼘 정도 위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조롱과 야유만을 보내는 사회. ‘니가 날뛰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라고 외치는 사회. 오로지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것에만 열중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예비역들이여 일어나라!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군대는 ‘신성한 의무’를 벗어나 있었다. 그것은 박노자 교수가 말하듯이 거대한 양견장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거나,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남들도 다 하는데’라는 말로 위로 삼으며 덮어두려고만 했다.
이 문제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현존하는 피해자는 다름 아닌 예비역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노할 자격이 있음에도, 그 분노를 토해내야 할 진정한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서 겨우 벗어난 군대와 다시 마주서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감 역시 그들의 분노를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새나가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부디 그대들의 정당한 분노를 헛되이 하지 마시라. 탈영한 상식이를 다시 찾아오는 것은 여러분의 사자후가 군대를 정조준 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군대의 악몽을 대물림하지 말고, 비아냥 거리지 않는 의미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될 수 있도록 비판의 끈을 놓지 마셨으면 한다. “병무행정관련 문의는 국방부로.”
첫댓글 정말 예비군 훈련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예비군 훈련 너무 고통이에요..훈련이 힘들지는 않는데 일찍 아침에 일어나서 8시까지 훈련장에 가야하고..예비군 끝나면 민방위도 있긴 하지만요^^
예..예비군 훈련없는나라로 이민가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