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국경 하나를 넘었을 뿐이지만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원 달러’만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호주머니 쪽에 손만 대도 수십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베트남의 경제 도시 호치민에서 프놈펜.. 그리고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까지는 약 1000km, 버스와 배를 타고 무작정 떠난 오지.
사정없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 낡은 버스의 시원찮은 에어컨이 냉기를 연신 뿜어냈다. 버스가 달릴수록 시간은 자꾸만 거꾸로 흘렀다. 비포장 길, 벗은 아이들, 황량한 벌판, 쓰러져가는 집...
끝도 없는 평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위로 황토먼지가 끝없이 피어오른다. 차창을 열지 않았지만 먼지는 버스 안으로 스며들었다. 버스는 쉴새 없이 덜컹거렸다. 잠시 졸기라도 하면 머리를 차창에 처박기 일쑤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 감아 눈만 내놓은 사람을 가득 태운 트럭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의 캄보디아, 아이들은 집앞의 작은 연못 흙탕물속에다 투망을 연거푸 던진다. 손가락 크기만도 못한 작은 물고기를 건지고는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한때 로마제국을 능가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던 앙코르제국. 이들은 찬란한 문명을 남기고 어느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다 1861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톨레샵 호수를 탐험하던 프랑스의 탐험가에 의해 밀림속에서 발견됐다. 400년의 은둔을 청산하고 세상으로 나왔다.
물론 현지인들까지 대유적지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에게는 ‘수많은 남녀 유령이 돌아다니는 신의 저주가 내린 곳’이었다. 접근 불가능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앙코르 유적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이 그것. ‘와트‘는 사원을 의미하고 ‘톰’은 거대한 성을 뜻한다.
먼저 앙코르 톰. 앙코르와트의 북쪽에 있다. 한변의 길이가 3㎞에 이르는 정사각형의 성벽안에 바이온 사원 바푼 사원 등 수많은 사원이 있다. 전성기때는 상주 인구가 1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자아바르만 7세에 의해 앙코르와트보다 늦게 건축됐다. 남문 입구에는 양쪽으로 108개의 신상이 있다. 도굴꾼들이 목을 잘라가 몸통만 남아 있는 신상들도 적지 않다. 어줍게 보수한 신상은 고유의 미소를 잃어버리고 어색하게 웃고 있다.
자아바르만 7세는 앙코르 왕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힌두교 대신 불교를 받아들였다. 때문에 앙코르 톰의 건축물 중에는 불교 양식을 띠고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볼거리는 바이온 사원. 4개 면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한 ‘크메르의 미소’가 새겨진 탑이 있다. 원래는 54기였으나 지금은 37기만 남았다.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지만 조각상들은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앙코르 톰에서 또하나 인상적인 것은 ‘타프 롬’ 사원이다. 세월의 무게, 무서움, 그리고 자연 앞에선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나무뿌리가 사원을 칭칭 감아 허물고 있는 곳이다. 흡사 나무가 쓰러져가는 사원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에 생장억제 주사를 놓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큰 사원인 동시에 가장 잘 보존돼 있다. 해자를 건너 사원의 출입문을 지나면 신비의 세계가 문득 펼쳐진다.
앙코르와트는 전체가 3개층으로 나뉘어 있다. 3층 중앙에는 5개의 탑이 있다. 멀리서 보면 우선 그 크기에 놀란다. 사원안에 들어서면 기둥과 벽면마다 새겨진 정교한 부조 조각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정말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란 말인가.
벽면마다 새겨진 부조는 사원을 건축한 수라바르만 2세의 전투 장면 등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장면과 종교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발길을 붙잡는 것은 기둥마다 새겨진 ‘압사라’의 모습이다. 힌두교의 시바신을 기쁘게 하는 댄서이다.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와 쭉 빠진 늘씬한 다리, 머리에 관을 쓰고 배꼽을 드러내놓은 요염한 자태는 아주 육감적이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3층 중앙의 신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직각에 가까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신을 위해 만들어진 계단이기 때문에 이처럼 가파르게 지었다고 한다. 내려올 때도 줄을 서서 다시 한번 진땀을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