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잡지 패션 모델이 되다.
월요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들이 만나면 한결같이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매주 편지를 쓸 소재가 있습니까? 참 신기해요.” 제 입장에서도 참 신기합니다. 2008년 3월부터 시작했으니 6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한번도 겹치지 않고 새로운 주제로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신기한 노릇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보자는 저의 인생철학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2008년12월 대전지검장 시절 어느 검사가 보낸 온 연하장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생각을 넓고 다양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검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검사의 눈에도 제가 다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비친 모양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제약이 없어져 가능하면 모든 일을 해보려 합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중학교 동창 최종원 교수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한동안 인터넷과 카톡을 달구었던 글입니다. 그 인용구에는 위의 사진처럼 최교수의 이름이 최종훈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최종원으로 바로잡습니다. 저의 그 친구의 논지대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쪽을 선택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하는 일이 많아 월요편지를 계속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주 월요편지도 그런 시도 중에 하나입니다. 독자중 검찰 후배들은 ‘저 선배가 어떻게 저런 일까지 하지. 고검장까지 지낸 사람이…” 라고 못마땅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한을 두지 않으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공직만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하찮은 것이 아니더라구요. 인생이란 다채로운 경험의 축적입니다.
왜 오늘 서론이 이렇게 기나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만큼 제 스스로도 이 내용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쓰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주전 쯤 HEREN이라는 잡지에서 ‘2014년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30대 2명 40대 2명 50대 2명 60대 1명 등 7명의 패셔니스타를 선정하여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로 하였는데 50대의 한 분으로 변호사님을 모시고 싶습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패셔니스타라니 내가 평소 옷을 잘 입는 사람도 아니고 패션 근처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가당 치도 않은 일이야. 나를 아는 사람들이 기사를 보면 주책 떨었다고 비웃을 거야.’ ‘아니야, 선정한 것은 무슨 이유가 있겠지. 내 생애 이런 일이 또 있겠어. 패션 모델 멋있잖아. 한번 해보는 거지 뭐.’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머리 속에서 하루 종일 전쟁을 하였습니다. 결국은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는 최종원 교수의 가르침대로 가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지난 6월 15일 오후 3시 저는 역삼동에 있는 어느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10여명의 스탭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총괄하는 최자영 기자의 지시에 따라 잡지모델 사진 찍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화장을 하였습니다. 두 명의 분장사가 30여 분간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화장을 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이어 머리 손질입니다. 아예 간이 미장원이 꾸며져 있었습니다.
머리를 깍고 자신들이 필요한 스타일로 머리를 매만졌습니다. 제 머리는 어느새 삼십대 머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점점 공직생활을 30년 한 50대 중반의 조근호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옷입기 입니다. 그 스튜디오에는 수십 벌의 옷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번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더니 최기자가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습니다. 바지, 쇼츠, 가디건으로 조합된 옷입니다. 저에게도 어떠냐고 물어 보았지만 제 대답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신발입니다. 여러 벌의 신발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최기자가 골라 신어보라고 합니다. 베이지색 로퍼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신발을 한번에 결정 되었습니다. 끝으로 안경입니다. 안경도 수십 가지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안경점을 방불케 합니다. 이것저것 씌워 보더니 은색 테로 결정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근호의 다음 할 일은 촬영입니다.
촬영은 1시간 가까이 소요되었습니다. 단 한 장의 컷을 위해 여러 명이 달라붙어 정성을 기울입니다. “고개를 드세요. 멀리 보세요. 손을 반만 바지 넣어 보세요. 아니 빼는 게 낳겠어요. 좋아요. 잘 하고 계세요. 한번만 더 할께요. 이번에는 오른쪽 발을 반발만 앞으로 뺄게요.” 수많은 지시에 따라 수십 장을 찍은 후 결국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2시간에 걸친 잡지 모델 촬영이 끝이 났습니다. 끝나고 기분이 좋은 것을 보니 유쾌한 경험임에 틀림없습니다.
며칠 후 최기자가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왔습니다. 답변을 해주면 자신들이 손질하여 기사화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왕에 재미로 시작한 일 답변도 재미있게 달기로 하였습니다.
HEREN Dress your age 질문과 답변
1. 당신의 나이는?
일을 할 때는 54세, 운동을 할 때는 44세, 도전을 할 때는 34세.
2 나이가 들면서 옷차림에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가 있었다면 어떻게 바뀌었나요?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은 무채색의 세상에서 살았다. 지금은 유채색의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빨간 구두를 샀다. 그 구두를 바라보면 신지 않아도 기분이 좋다. 나는 이렇게 원색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3 남자의 옷차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이를 잊는 것, 직업을 잊는 것. 그리고 나를 잊는 것. 옷을 고르는 것은 도전이다. 진정한 도전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당신에게 옷을 잘 입는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내면의 세계와 나의 외면의 의상이 조화를 이루는 것. 옷 차림은 나의 기분마저도 소재로 삼는다.
5 당신이 생각하기에 유명인 중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자는 누구인가요?
최불암, 옷이 그의 매력을 넘어서지 않는다.
6 옷을 잘 입는다고 멋진 남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진정 멋진 남자란 어떤 남자일까요?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남자. 자신만의 향기가 있는 남자. 자신만의 유니크한 그 무엇이 있는 남자.
7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남자가 꼭 갖춰야 할 자격이 있다면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미래를 기다린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그 시대의 미래였다. 나는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절대로 뒤로 가는 적은 없다. 그리고 나는 꿈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남자를 패셔니스타라 부른다.
8 남자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세가지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질리지 않는 아내,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친구, 죽을 때까지 본 받고 싶은 멘토
9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이 한 일 중 가장 남자다운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50세가 넘어 창업을 한 것.
10 남편이나 아버지로서가 아닌 남자로서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만의 캐슬을 가지고 싶다. 정신적이거나, 네트워크적이거나, 아니면 건축적이거나.
HEREN에 어떤 모습으로 기사화 될 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미 저는 충분이 의미 있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잡지 모델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은 저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지우는 일이었으니까요?
여러분의 삶에도 예기치 않은 초대가 있을 것입니다. 초대에 응해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 입니다. 그러나 최종원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6.23.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