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졸업생 그리고 존경하는 학부모 여러분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졸업은 분명히 어느 정해진 과정을 끝마쳤음을 의미합니다. 학부모 여러분은 이제 우리 졸업생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이상 자녀의 등록금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고, 졸업생 여러분은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생 여러분은 졸업과 동시에 무엇인가에 대하여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각자의 길은 달라도 여러분이 가천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은 이제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습니다. 싫으나 좋으나 여러분의 장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여러분의 인생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싫었던 점이 있더라도 차라리 사랑해버리십시오. 여러분의 부모나 형제들이 마냥 좋을 수 없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감정에 치우쳐 자의적으로 통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1인 지배에 의한 불신을 기초로 순간적 감정과 자신의 이익 및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에 의한 통치를 행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 법치주의의 근본이념입니다. 그러나 과거 법실증주의자들과 같이 법의 내용이야 어떻든 일단 법이라는 이름으로 성립된 법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법의 내용적 정당성을 도외시하고 법의 형식적 합법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법에 의한 통치는 오히려 인간에 의한 통치보다 더 무섭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말살시키는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결국 법치주의에 있어서의 법이라 함은 형식적 합법성만이 아니라 ‘옳은 법’, ‘법다운 법’, 즉 ‘정법’이라는 내용적 정당성까지 갖춘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합니다. 법의 이념은 정의의 실현이므로 법치주의의 원리와 내용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바로 국가권력을 법에 구속시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경제논리에 얽매여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법은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음료수 캔이 떨어지듯 규격화된 틀 속에 들어 있는 박제가 아닙니다. 법은 사람의 가슴에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 비로소 ‘법다운 법’입니다. 법은 명백히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너무나 슬퍼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세월호 사건을 처리하려는 정치인들도 이 점을 꼭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천대학교 법과대학은 졸업생 여러분에게 바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가르침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여러분이 20여년을 살아 온 세상은 쉬운 세상이던가요? 아닐 것입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졸업생들 중에는 어제 사랑하던 이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각종 시험에 응시하여 초조하게 그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이력서를 제출하고 여러 군데서 딱지를 맞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 본 인생은 반드시 곤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탈출구가 없는 곤경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어제 KBS에서 방영하는 인간극장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자들을 채용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그러한 분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강자들보다 우대합니다.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것이지요.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남의 일이 될 수 없듯이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나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잠재적 소외계층입니다. 법이 그러한 자들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평생 동정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의 아픔에 눈감지 말아야 합니다. 법학을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정 힘들면 모교의 교수님들에게 손을 내미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통의 절반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다면 현실의 어려움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코 꿈꾸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존경하는 학부모 여러분들께도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휘재 씨의 아들 서언이와 서준이 그리고 송일국씨의 세 아들 대한, 민국, 만세도 쌍둥이지만 전혀 다른 능력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 중에 사람만큼 혼자 독립해 살게 되는 데 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존재도 없다고 합니다. 가천대의 손을 떠나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을 어느 한 순간의 결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한번의 1등이 항상 1등은 아닙니다.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약하고 선하지 않은 지식은 위험하다” 졸업생의 30%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미국 최고 명문 고교인 엑시터 아카데미의 1781년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교훈입니다. 학교 출석부의 이름을 따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저커버그가 이 학교 졸업생입니다. 이 학교는 팀별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공부는 ‘남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이러한 방법을 이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이 뛰어난 사람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가천대를 떠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인사는 사람이 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사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면접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도태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기업들도 교만한 자가 아닌 인성과 리더십이 뛰어난 인간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인간, 협력할 수 있는 인간,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 개성과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균형 잡힌 인간으로 키워주십시오.
졸업생 여러분의 졸업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학부모 여러분의 그동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4년 8월 21일
가천대학교 법과대학장 서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