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도장 찍었어. 그런데 왜 이리 허망하고 우울한지 갱신(몸을 추스르지)을 못하겠네 속시원할 줄 알았는데….”
나고 자란 영광을 떠난 지 1년 만에, 아니 별거기간 전체를 따지자면 3년여 만에 법원에서 합의이혼 절차를 마쳤다며 젖은 솜처럼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탄다.
1년 전 남편의 횡포로 영광에서 살기가 고단해 멀지 않은 시골마을로 아이 둘 데리고 살러 들어간 그는 입 앙다물고 견디다 고향과 사람이 그리울 때면 가끔 전화로나마 긴 이야기를 한짐 부려놓았다.
두 아이를 고스란히 맡기면서도 양육비는 한푼도 못 준다며 악담을 퍼붓는 남편은 아빠 노릇마저 포기하려나 보다며 아이들 생각에 가슴을 친다.
파출부 나가 버는 30만여원이 전부인 그는 그래도 옆마을 수녀님이 운영하는 작은 공동체 아이들에게 타고난 음식솜씨로 “피자 나와라 뚝딱, 탕수육 나와라 뚝딱” 하며 한쪽 부모마저 없는 아이들 삶을 거들려고 애쓴다.
“30만원짜리 극빈자여도 나눌 수 있어 좋다”는 그는 이제 돌아와 고향냄새 맡으며 맘 편히 살고 싶어진단다. 힘든 산을 하나 넘은 그에게 남아 있는 산은 몇개일까
-이야기 둘-
1년 전 이맘때 돈벌이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광주로 이사나간 그가 오랜만에 영광에 발걸음을 했다. 다급히 안부 나누고 나니 그의 1년 도시살이도 만만찮아 보인다.
7년이나 혼자 살았어도 아직 변변한 직장 못 구하고 더구나 도시로 나가니 더욱 막막했다는 그는 아들까지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자퇴시키며 1년을 애타게 살았다. 이제사 도시 한 귀퉁이에 아들도 마음 끌른 것 같다며 한시름 놓은 눈치다.
“도시 살기 얼마나 각다분혀(힘들어)! 힘들면 내려와”라고 대책 없는 말을 꺼내보지만 “이제 아이도 맘잡았는데 다시 시작하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을 땐 이미 살림차리고 아이까지 있어 끝낸 결혼생활인데 전남편은 아이와 아무 관계도 아닌 듯 양육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다. “이제 아들도 속들을 나이니까 자기 인생이나 좀 챙겨”라며 나무라도 엄마의 안타까운 사랑은 끝없어 보인다.
지난 한해 동안 떠나보낸 알토란 같은 그들이다. 혼자 된 여성이 아이들과 시골마을에서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10쌍에 4쌍이 하는 이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여성들에게 아직도 시골인심은 각박한 듯하다. 오해와 편견은 견딘다 해도 이들이 살아낼 수 있는 경제적 터전이 전혀 없다. 물론 도시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아이들 키우며 살아야 하는 사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들의 이야기가 더 애틋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