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갈 때는 망우리에서 종로 2 가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가, 끝나면 종로 2가에서 동대문 운동장을 거쳐 신설동 로타리를 지나고 청량리 역까지 걸어 오곤 했다.
묵호에서 사고를 치고, 경찰을 피해서 강릉에 갔다가, 서울 망우리 이모집으로 피신을 했다가, 종로 2가 제일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까지 대학에 가겠다는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이 등록해 주어서 마냥 다닌 거 였다.
미도파 백화점을 지나 거리를 걷다 보면, 전파사에서 사랑과 평화의 ‘한 동안 뜸 했었지’ 가 흘러 나왔다.
그 노래는 지금도 흥얼 거린다. 그 시절 내가 들었던 유일한 노래.
묵호의 거리에서는 그런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노래 가사에 흠뻑 빠졌다.
“한 동안 뜸 하다가 다시 묵호에 진출 하여 나의 화려했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지금 서울에서의 생활은 다시 복귀하기 위한 준비 기간 이라고.”
난 아마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나를 쫒아다니던 묵호에서 제일 이뻣던 그 아이의 대학생 애인을 두둘겨 패고, 어쩔 수 없이 도망을 했다.
난, 그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 아이가 나를 졸졸 따라다닌 것이다.
그 아이의 애인이 오해를 했던, 그 아이가 어설픈 소문을 퍼뜨렸던,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아이 애인의 윗 이빨이 다 날라가고, 경찰이 찾아서 부모님이 겨우 합의를 해서 다시 묵호에 가고 싶었지만, 난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의 순결을 바친 그녀가, 자신의 남동생을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몸을 판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어떡하든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한 동안 뜸해서 묵호에 간 것이 아니라, 40 년도 더 지나 묵호에 갈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그녀를 찾았을 때는 그녀는 가고 없었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에 사랑과 평화의 ‘한 동안 뜸 했었지’ 가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