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5000m 결선(11일)에 곡절 끝에 진출한 도미닉 로발루(25)는 남수단 고아출신으로 케냐 난민캠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달 전만 해도 그는 이번 대회에 나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난민올림픽대표팀(ROT)에 들어오라고 제안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뤄 결선에 나선다.
그는 3년 전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려 했으나 스위스에 망명을 신청했기 때문에 ROT에 포함될 수가 없었다. 세계육상연맹(WA)은 지난 5월 그가 스위스 시민권을 얻지 못했는데도 다음달 유럽선수권대회에 스위스 대표로 출전하도록 허용해 그는 1만m 금메달과 50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자 IOC가 제안했고, 로발루는 5000m에만 출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영국 BBC 스포츠 아프리카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내가 꿈꿔온 일"이라며 "내가 훈련을 시작했을 때 목표는 언젠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와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카메룬 출신 여자 복서 신디 응감바가 이미 동메달을 확보, ROT 최초의 메달을 딸 것으로 보이는데 로발루가 은메달이나 금메달을 따낼 지 주목된다.
남수단을 탈출하다
로발루는 장기 내전이 한창이던 1998년, 수단 남동부의 작은 마을 추쿠둠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2011년 독립을 획득한 남수단 땅이 됐다. 내전은 2005년 종식됐는데 200만명이 몰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전 종식 2년 뒤 로발루의 고향 마을은 병사들의 습격을 받았다. 가족들은 달아났는데 아홉 살의 그는 부모와 헤어지고 말았다. 이탈리아 비정부기구(NGO)의 도움을 받아 케냐 국경을 넘었다. 유엔인권이사회(UNHCR)가 케냐 북서부에서 운영하는 카쿠마 난민캠프가 그의 새로운 집이 됐다.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로발루는 과거 얘기는 깊이있게 나누는 것을 주저했다. 미래에만 초점을 맞추자고 했다. 하지만 캠프에서의 경험들이 트랙을 뛰게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난 그곳에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곳에서의 삶은 달리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내가 온 그곳에서는 내일 내가 먹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음식이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두 누나는 아직도 카쿠마에 살고 있다. 그는 언젠가 누나들이 그곳을 떠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누나들은 카쿠마에서 엄청 싸워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밤에도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가끔 병원으로 가 그곳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올림픽 꿈이 시작되다
로발루의 올림픽 꿈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모 파라가 1만m 금메달을 따는 것을 중계로 지켜보며 시작됐다. 파라가 잘 뛰어서가 아니라 "TV로 보는 선수들 달리기가 너무 느려 보여서" 그랬다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난 '와우, 내가 거기 있었다면 우승했겠는걸' 뭐 이렇게 생각했다."
2015년 로발루는 케냐의 여자 육상스타 테글라 로루페가 주관해 카쿠마 캠프에서 연 10km 대회에 맨발로 뛰었다. 그는 2위를 차지했고, 뉴욕마라톤을 두 차례 우승했던 로루페는 자신의 재단이 나이로비 외곽에 세운 훈련캠프에 그를 초청했다.
2년 뒤, 19세 생일을 조금 앞두고 로발루는 2017년 런던 세계육상선수권 1500m 예선에 출전했다. 5년 전 파라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경기장이었다.
2020 도쿄올림픽은 손에 쥘 수 있는 목표인 것처럼 보였는데 육상 난민 팀에 속해 있던 그의 시간은 갑작스럽게 끝이 나고 말았다.
스위스 망명을 시도하다
2019년 로발루는 10km 대회 출전하기 위해 제네바로 건너갔다. 우승한 뒤 그는 스위스에 남아 있을 요량으로 팀 숙소를 빠져나왔다.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땡전 한 푼 없이 그는 스위스 난민센터로 가 망명을 신청했고, 이민 담당관은 마르쿠스 하그만 코치를 연결해줬고 그는 생 갈렌에서 훈련하자고 로발루를 초대했다.
로발루는 하그만이 찾아낼 수 있었던 첫 번째 대회에 나가 우승했고, 연이어 우승했다.
2021년 7월 도쿄올림픽 직전에 IOC와 UNHRC는 로발루가 ROT를 대표할 수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해 6월 로발루는 스위스에 단기 거주 허가를 얻어내 이 나라 밖으로 나가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달 말에 하그만 코치의 안내를 받아 로발루는 다이아몬드 리그 스톡홀름 대회 3000m에서 하프마라톤 세계 챔피언이었던 제이콥 키플리모를 꺾으며 자신의 이름을 육상계에 널리 알렸다.
로발루는 2031년까지 스위스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없지만, 지난해 9월 WA는 2026년 4월부터 스위스 대표로 뛸 수 있다고 승인했다. 그러다 지난 5월로 앞당겨져 로마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첫 난민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면서 “내가 젊었을 때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메달을 둘 딴 뒤 막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난민팀이 리콜하다
파리올림픽을 반 년 앞두고 IOC는 로발루가 스위스 대표로 출전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딱잘랐다. 당시 IOC 성명은 "그는 현재 스위스 국적이 아닌데 올림픽 헌장은 그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발루가 유럽 챔피언에 오른 다음날, IOC는 파리올림픽 5000m에 ROT 대표로 출전해 달라고 초청했다.
8일에는 스위스 스포츠의류 브랜드 온(On)이 그의 여정을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꿈을 쫓아'(To Chase a Dream)를 공개한다. "내가 제작에 참여해 즐겼다. 바라건대 다른 난민 선수들에게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