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학 김소월 시「합장合掌」
시는 절대적인 현실이다. 이것이 내 철학의 핵심이다. 시적이면 시적일수록, 그만큼 더 진실하다. (노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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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메리 올리버,『휘파람 부는 사람-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02. 서구 철학이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y을 추구해 왔다면, 그것은사랑의 지혜를 망각해 온 셈이다. 여전히 우리에겐 인간으로 서로에게 접근하고 대화를 시작하며 함께 살만한 세계(“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R·프로스트,「자작나무Birches」)를 만들기 위한 말이나 제스처, 행위와 사유의 방식이 부족하다. 사랑(의 철학과 시학)은 자연과 인간의 경이로운 현상이다.
03. 에로스의 본질은 앎과 삶(사랑)에 있다. 모든 앎은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정서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론적 개념이며, 이는 진리를 개시開示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철학 자체이다. (서배식,「사랑과 眞理」,『동서철학연구』제12권)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바다의 기별」)
04.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사랑은 진리의 구축이며, 이 진리는 둘에 관한 진리-사건, 있는 그대로의 차이의 진리다. 모든 사랑은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차이에 관한 새로운 진리 하나를 생산해 낸다. (알랭 바디우,『사랑 예찬』) I love to you. vs I love you.
05.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 두려움(fear/懼), 분노(anger/怒), 기쁨(joy/喜), 슬픔(sadness/哀), 수용(acceptance/愛), 혐오(disgust/惡), 기대(expectancy/欲), 놀라움(surprise/樂)
정서심리학자 로버트 플루치크가 만든 정서 우산(emotion umbrella)
06. 사랑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계몽주의자와는 달리, 낭만주의자는 예술이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의 영역이며, 이 상상력의 힘은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에 있으며, 이 정신을 발현시키는 힘이 사랑이다. 이성에 대한 감성의 우위.
07. 노발리스와 슐레겔은 낭만주의 기관지『아테네움Athenäum』을 통해 낭만주의를 선언한다. 낭만주의는 진보적인 보편시이며, 낭만시는 모든 시적인 것을 포함한다. 낭만시만이 무한하며 자유이다. 낭만시풍은 단순한 형식을 초월한 유일한 시의 형식이며 예술 그 자체이다. 모든 시는 낭만시이며 또한 낭만적이어야만 한다.(『아테네움Athenäum』斷章 116)
08. 낭만주의와 낭만주의자란 용어는 노발리스가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 낭만주의자는 로망스나 특이한 종류의 동화를 쓰는 작가를 뜻하고, 낭만주의는 이런 유의 글을 쓰는 예술 양식이란 뜻을 함의한다. 신화/상징/아이러니/기지/상상력/무의식/직관의 관점에서 낭만주의는 근대적이다. 슐레겔은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의 구별을 고대문학과 근대문학의 차이로 규정하며, 단테와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를 근대 낭만주의 문학의 시조로 기술한다.
09.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일은 새로운 감정을 발명하는 일이다.
2. 텍스트의 이해와 감상
合掌 / 김소월
라들이. 단 두몸이라. 밤빗츤 배여와라.
아, 이거봐, 우거진나무아래로 달드러라.
우리는 말하며거럿서라, 바람은 부는대로.
등불빗헤 거리는해적여라, 稀微한하느便에
고히밝은그림자 아득이고
퍽도갓가힌, 풀밧테서 이슬이 번ᄶᅥᆨ여라.
밤은 막깁퍼, 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안하고, 더안가고,
길ᄭᅡ에 우둑허니. 눈감고 마주섯서.
먼먼山. 山뎔의뎔鍾소래. 달빗츤 지새여라.
*헤적이다: 조금씩 들추고 헤치다. *하느(늬)便: 서쪽. *이마즉:이마적’의 방언. 이제로부터 지나간 얼마 동안의 가까운 때.
분석과 감상
나들이에 나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늦은 밤의 거리를 지난다. 나무 아래 달빛이 길을 비추고 그저 바람이 분다. 손에 들린 등불로 우거진 숲과 나무 사이를 조심스레 헤쳐 나간다. 어둠의 빛이 신비롭고 아득하다. 극락정토 세계가 있다고 일컬어지는 하느편(서쪽, 서방 정토)은 이런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풀빛에 빛나는 이슬이 가까이 와 있다. 밤은 깊어가고 사위가 고요해지면서 둘은 점차 말을 잊고 동작마저 멈춘다. 왜 말이 없는 것일까? 말이 필요 없어서일까, 아니면…더안가고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가고 오는 경계의 지점에서 달빛에 선 두 사람이 마주 선다. 눈을 감고 손을 모은다. 합장이다.합장은 떨어져 있던 두 손이 모여 하나가 됨을 나타내지만, 모여진 두 손은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법. 저들이 생각하고 침잠하는 세상은 어디일까? 동적인 상태가 정적인 상태로 옮겨가는 순간, 저 멀리 산사의 종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남은 달빛은 두 사람이 되돌아 갈 길을 비춘다. 연인이든 수행자이든 둘이면서 하나이고, 또 하나이면서 둘인 두 사람에다,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다. 사랑,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이다.
3. 텍스트 이후
01.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나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랑은 삶을 재발명함réinvention이다.
02. 진정한 사랑은 자기 사랑-치유에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은 언제나 가장 강하다. 글을 쓰려면 사랑해야 한다. (파울로 코엘료,『알레프』) 모든 나무가 나에게 말하지 않습니까―거룩하구나 거룩하구나―숲속은 황홀하도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교향곡). 나를 사랑하는 법?
03. 더 읽을거리
적어도 平凡한 가운데서는 物의 正體를 보지 못하며, 慣習的 行爲에서는 眞理를 보다 더 發見할 수 업는 것이 가장 어질다고 하는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밤에 여서 한울을 우럴어 보십시오. 우리는 나제 보지 못하든 아름답음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잇고 늣길 수도 잇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여잇섯서 애처롭게도 긔운있게도 몸을 며 永遠을 소삭입니다. 엇든 는, 새벽에 저가는 오묘한 달빗치, 애틋한 한각, 崇嚴한 彩雲의 多情한 치마를 비러, 그의 可憐한 한두 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나제는 보지도 못하고 늣기지도 못하든 것들입니다.
-素月〈詩魂〉,『開闢』제59호(1925.5.)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시「사랑법」전문
04. 기타
참고문헌
전정구 편,【素月 金廷湜 전집①】, 한국문화사, 1993.
김만수,【『진달래꽃』다시읽기】, 강, 2017.
김진수,【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책세상, 2001. 기타
♣ 차시 예고
4회(4.26.): 이태호 (통청인문학아카데미원장/철학박사) 사랑의 덕德 5회(5.3.): 금교영(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에로스와 아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