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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 나들길 14코스 철종 외가! 나무꾼[강화도령]을 왕으로 만든 정치세력...........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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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 나들길 14코스 철종 외가! 나무꾼[강화도령] 이원범을 왕으로 만든 정치세력...........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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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유랑자는 '강화도령 이원범[아명]의 삶과 그의 時代史[시대사]로 한번 들어가 보기 위해 哲宗[철종(원범)]이 거처했
던 용흥궁에 이어 철종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의 외가를 찾아가 보았다. 강화 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 길 종점이
자 시작점에 있는 哲宗外家[철종외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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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이 한옥은 조선제 25대 왕 강화도령 철종[재위 1849년 7월∼1864년 1월] 의 외숙인 廉輔吉[염 보길]이 살던 집이다.
유랑자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한옥의 아름다움은 古色蒼然[고색창연]한다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하
면 마음의 고향 같은 푸근함이 묻어난다. 요즘 같은 글로컬 시대에도 항상 변함없는 한옥의 멋스러움은, 이 유랑자의 마음
을 훔치고도 남는다. 이를테면 랑데자뷰! 라고나 할까? 아무튼 강화 도령이 이곳에서 지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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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 비천한 삶을 살아가던 강화도령이 하루아침에 만인지상의 지존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후
계자 수업도, 학문을 닦을 기회도 없었던 철종에게 갑자기 주어진 왕위는 기쁨보다 막막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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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4년[1853]에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용도로 쓰는 舍廊[사랑] 채를 좌우
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주로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 기거하거나 각종 창고로 이용되었던 행랑채는 일부
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일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와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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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는 작으나 예스럽다. 용흥궁 못지않은 고풍스러운 멋이라고 할까? 우아한 아름다움 전통이 묻어나는 한옥은 선과 어
울리는 소담한 그 매력과 멋스러움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알겠지만 한옥은 비가와도 느낌이 있고 눈이 와도 고즈넉 할
뿐만 아니라 금빛 흩뿌려놓은 밤이 되어도 그 운치가 아름답다. 이를테면 한옥과 달빛은 호수의 윤슬처럼 너무나도 高尙
[고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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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나무꾼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철종, 하지만 세도 가문에 짓눌려 평생 꼭두각시 왕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 역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겉보기에 화려한 신분 상승과 높은 지위가 반드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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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철종이 강화도로 가게 된 동기가 있다. 철종의 할아버지[은언군]와 형이 逆謀[역모: 임금이나 나라를 배반할 계획을 짬]
사건에 휘말리면서, 왕족이었던 철종의 가족은 강화도로 流配[유배]를 가게 된다. 그는 약 5년 동안 강화도에서 평민과 다
름없는 農軍[농군]의 모습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리고 1849년 6월 선대 네 살 많은 7촌 조카 憲宗[헌종(조선 24대
왕)]이 23살 나이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안동 김씨 세력은 다루기 쉬운 인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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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물로 강화도에서 살던 초야의 왕족 元範[원범]을 데려왔다. 순조의 왕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의 명으로 이원범은 德完君[덕완군]으로 봉해지고 다음날 6월 9일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조선 제25대
왕 哲宗[철종]이다. 그래서 후세에 사람들은 그를 놀리는 차원에서 철종을 강화도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흔히 철종 하면
떠오르는 말은 첫사랑, 나무꾼, 인생 역전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왕! 한편으로는 무식한 왕 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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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는 철종 즉위 1년이 지나자, 중전을 들일 것을 권하고 전국에 금혼령을 내린다. 철종은 유배 생활로 인하여 아
직 혼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왕손이 귀한 조선 왕실로서는 후계 구도를 위해서라도 빨리 왕비를 들이는 것이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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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이런 선입견을 품게 된 결정적 이유는 1960년대에 히트 친 영화 KBS 라디오 드라마 "강화도령"[이서구 극작]을 원
작으로 한 [강화도령(1963)]과 1975년도 드라마 왕위 욕심 없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강화도로 돌아가고 싶은 철종과 그런
임금과 강화도에서 사랑을 약속했던 양순[鳳伊(봉이)]의 순수한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임금님의 첫사랑] 등 과 같은 영상
물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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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첫사랑 사건의 顚末[전말]은 이렇다. 逆謀[역모]와 謀陷[모함: 나쁜 꾀를 써서 남을 어려움에 빠뜨림] 으로 인해
집안 전체가 강화도로 유배당한 원범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왕손이지만 글도 못 읽고 무식했던 원범이 왕손이라는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은 원범을 피한다. 그런 원범을 유일하게 챙겨주는 사람은 양순[봉이]밖에 없었다. 鳳伊[봉이: 일명 양순
이]는 엄마 윤 씨 몰래 원범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성심성의껏 돌봐준다. 그런 양순을 사랑하게 된 원범은 양순에게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헌종이 자식을 낳지 않고 昇遐[승하: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는 말] 하
여 후사는 순원왕후의 결정에 따라 원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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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중전 간택이 진행되는 동안 철종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사실 철종에게는 잊지 못할 첫사
랑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봉이, 역적의 가문이었던 철종은 강화도 나무꾼 시절, 천민의 딸인 봉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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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849년 6월 7일, 조용하던 섬마을 강화의 나루터에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화려한 복색을 한 領相[영상]
과 그 외 신하들 그리고 官軍[관군]이 찾는 그것은 바로 한 젊은 나무꾼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관군에 놀란 나무꾼[원범]은
자신을 죽이러 온 줄 알고 두려운 마음에 산으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바로 뒤를 쫓아온 관군들에게 포위되고 급기야 한양으
로 끌려간다. 한양에 도착한 원범은 순원왕후를 만나고 조선의 25대 임금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그저 안동 김씨의 허수아
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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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범은 첫사랑인 양순을 後宮[후궁: 제왕의 첩] 으로라도 들이려고 했으나 안동 김씨의 반대로 물거품이 된다. 급기야 철
종은 안성군을 내세워 안동 김씨 세력을 숙청하려고 발악해 보지만 안성군이 암살되어 의미 없는 행동이었고 결국 원범은
자포자기하고 여자와 술에 빠져서 산다. 양순은 원범과의 사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자, 봉원사로 가 여승이
된다. 이후 사경을 헤매던 원범은 양순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통곡하다가 승하하고, 그 소식을 들은 양순은 흐느끼며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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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는 강화도의 청하동 약수터에는 지금도 두 사람의 풋풋했던 첫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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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조선 25대 국왕 哲宗[철종 (이원범)]은 한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혈통 상 왕족이
지만 왕위 계승 서열 따위는 고사하고 종친이나 양반 대우도 못 받던 가난한 시골 청년! 며칠 전까지 卑賤[비천]한 삶을 살
아가던 강화도령이 하루아침에 至尊無上[지존무상: 더 높은 이가 없는 고귀한 자] 이라, 일국의 至尊[지존] 자리에 오른 것
이다. 이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전례를 찾기 드문 놀라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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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틱한 인생 逆轉[역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이후 철종의 인생은 童話[동화]처럼
낭만적이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역사에서 철종의 이름은 조선의 멸망을 초래한 '勢道政治[세도정치]' 시대의 들러리이
자, 존재감 없는 暗君[암군: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 정도로만 膾炙[회자: 널리 오르내리게 되다] 되는 경우가 대부
분이다. 왕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悲運[비운]의 왕, 이것이 철종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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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사에 따르면 안동 김씨 가문이 봉이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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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4길인 '강화도령 첫사랑 길을 걷다 보면 [용흥궁에서→ 청하동 약수터 → 남장대→ 찬 우물 약수터→ 철종
외가를 잇는 11.7km] 선상에 놓여있는 건축물로 영화 [강화도령] 중에서도 처녀 봉이와 이 약수터[찬 우물] 가 언급된다.
그래서 사람들을 시켜 찬 우물 약수터에서 떠가지고 온 물로 막걸리를 담그게 했다고도 한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중앙로
320번지에 있는 찬 우물 약수터는 강화도 사람들에게 소문난 약수터 가운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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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우물 약수터는 ‘냉정 약천’, ‘냉정 약수’ 등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으로 꾸
며낸 이야기가 역사인 척 말해지고 그게 사실인 것으로 기록되고 홍보되는 건 문제다. 물론 스토리텔링 능력이 좋을수록
재미는 배가되고 풀러스 요인이 되면서 시쳇말로 돈벌이 또한 잘 되는 법이다. 이 이야기인즉슨 하나의 콘텐츠가 장르를
넘나들며 각각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풍성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추가해 즐거움을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제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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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도정치의 폐단이 길어지면서 조선은 '삼정 문란'이라는 국가적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의 시스템을 지탱하는
전정(田政, 토지에 기반한 세금 제도)·군정(軍政, 군포를 내면 병역을 면제해 주는 제도)·환정(還政, 춘궁기에 곡식을 빌
려주고, 추수기에 환수하던 제도) 등, 삼정이 무너지면서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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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강화도령 하면 '一字無識[일자무식]', '나무꾼'이라는 편견도 있다. 이는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 말일까. 사실 철종
이 강화도령 시절 나무꾼으로 일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떠한 면에서는 學識[학식]이 깊지는 않았을지
라도 일자무식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억측이며 史料[사료]를 통해 보건대 유배 시절에도 양순이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한학은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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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의 눈물을 씻다]에서 '강화도령'을 한양으로 모시고 온 영의정 鄭元容[정원용(1783~1873)]이 철종의 즉위식이 끝난
직후 "독서의 다소는 과연 어떠하셨는지요?"라고 묻자, "일찍이 [통감] 두 권과 [소학] 1, 2권을 읽었으나 근년에는 읽은 것
이 없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철종이 즉위 초기에는 공부가 달려 힘들어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철종의 눈물을 씻다]에는
"철종이 즉위한 첫해에는 글의 뜻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정원용이 어려운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서
다시 설명해 줘야 쉽게 이해하곤 했죠"라는 대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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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 소수 가문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장기화 되면서 부패와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국가
는 그 기능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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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년이 지나지 않아 정사를 펼치는 데 문제없을 정도로 진도를 나간다. 1849년[철종 즉위년] 競演[경연]에서 小學
[소학: 중국 송의 劉子澄[유자징]이 스승인 주희의 지시에 따라 여러 경전에서 童蒙[동몽] 즉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남자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범절과 수양을 위한 격언과 충신, 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 편찬한 책] 을 시작으로, 1850년 史
略[사략: 고려 말 31대 왕인 공민왕 시절 이제현이 지은 역사서], 通鑑[통감: 중국 송나라 사마광이 영종의 명으로 편찬한
중국의 편년체 역사서 ],까지 마스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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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大學[대학 : 대학은 유교의 경전으로,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사서오경[혹은 사서삼경]의 사서 가운데 한 권임] 을
떼고, 1851년에 孟子[맹자: 맹자는 맹자와 그의 제자들의 어록을 엮은 유교 경전임] 를 끝낸다. 1853년에 詩傳[시전: 공자
의 만년 행적과 그 의의를 기술한 책 ], 1854년에 [서전], [송사], [원사] 등을 읽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일자무식이라는
이야기는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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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야사들을 다룬 '매천야록'에서는 안동 김씨 가문에서 뇌물을 받기 위하여 따로 만든 가옥만 12채나 되었고, 그
앞에는 날마다 뇌물을 실은 수레바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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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종에 대한 酷評[혹평]은 世間[세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 교과서 속에서도 조선시대 가장 무
능한 왕으로 철종을 꼽았다. 조선 후기 철종 시기는 안동 김씨 가문의 勢道政治[세도정치]와 三政[삼정: 조선시대, 국가 재
정의 근본을 이루는 전정, 군정, 환정을 아울러 이르던 말] 의 문란으로 백성이 塗炭[도탄]에 빠진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철종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쉽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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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13년[1862년)] 3월 10일 자엔 농민들이 蜂起[봉기]를 일으키자, 철종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된 백성들이
탄식과 원망 끝에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하고 싶어 그랬겠는가. 이렇게 된 것은 우선 내가 부덕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고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고, 신료들이 백성을 잘 보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럽기만 하다."라고 말
한 것으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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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13년인 1862년 2월에는 각종 수탈에 못 이긴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하는 임술 농민 봉기 사건까지 일어난다. 임술
에서 시작된 농민들의 분노는 전국으로 번져갔고 철종은 '삼정이정청'이라는 기관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삼정의 개혁을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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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의 눈물을 씻다]에는 철종의 통치 철학을 넘겨짚어 볼 수 있는 글이 여러 대목 나온다. [철종실록]이나 다른 史料[사
료]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철종은 '思無邪[사무사]'라는 세 글자를 직접 써서 창덕궁 熙政堂[희정당]에 걸어두고 늘 마음
에 새겼다. “사무사“란 생각함에 삿된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철종실록이나 사료를 보면 철종의 백성을 사랑하는
愛民[애민] 정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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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철종[철종 14년]은 1864년 1월 16일 [향년 32세] 나이로 급성 충수염[맹장염]으로 앓다가 체력에 고갈되어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별채에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경기도 고양시에 소재하는 서삼릉[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권역인 睿陵[예릉]에 묻혀있다. 참고로 西三陵[서삼릉]은 희릉, 효릉, 예릉이 조성되면서 3릉이 한성부의 서쪽
에 있다고 하여 ‘서삼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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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무력한 현실 앞에 모든 의욕을 잃은 철종은, 진정한 국왕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끝에 승하하고 만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셋, 후계자도 남기지 못한 쓸쓸한 죽음이었다. 일부 야사에서는 선대인 헌종에 이
어 안동 김씨에 의한 독살 음모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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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훗날의 이하응[흥선대원군]의 아들 이재황 高宗[고종(조선 26대 왕)]이 낙점, 계승하면서 조선은 서서히 멸망의 길
로 접어든다. 오늘의 주인공 철종이 등장하는 영화, 드라마 등 작품 중에는 강화도령, 철종과 복녀, 임금님의 첫사랑, 풍운,
대원군, 바람과 구름과 비, 철인왕후 등 다수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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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은 어쩌면 차라리 가난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한 행복을 꿈꿀 수 있었던 강화도 시절을 마음 한구석에서 평생
그리워했던 것은 아닐까. 유랑자는 철종의 마지막 길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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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폐단을 극복할 골든타임을 놓친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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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4코스 철종 외가 찾아가기
*인천 강화군 선원면 철종외가길 46-1
-(지번) 선원면 냉정리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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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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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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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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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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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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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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