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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가신 예수님
참고말씀: 슥9:9; 마25:15,18,20-23; 눅17:11; 18:31-33
읽을말씀: 눅19:1-48
참고말씀: 눅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첫째,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신 예수님(1-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예수님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셨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눅17:11 상)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눅18:31 상)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28절)
어째서입니까?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의 도를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눅18:31-33)
그 와중에도 예수님은 무슨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사역입니다. 여리고에 가셨을 때는 누구를 만나셨습니까?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1,2절) 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3,4절)
예수님은 그곳에 이르러서 어찌 하셨습니까? 쳐다보시면서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처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5절) 우연의 일치입니까? 아닙니다. 일부러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이곳에서 그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입니다.
왜 그리 하신 것입니까? 잃어버린 자, 곧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9,10절)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누구를 향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도 예수님처럼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연은 없고 오직 필연만 있는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 안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제자들의 오해를 비유로써 풀어주신 예수님(11-27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눅19:11)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어떤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까? 은 열 므나 비유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 같은 오해를 풀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1절)
그 비유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한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가면서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은화 한 므나씩을 맡기고 갔다가,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한 내용입니다. 이는 무슨 비유와 비슷합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달란트 비유는 세 사람에게 각자의 재능에 따라서 차등을 두어 금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맡겼다면,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25:15) 므나 비유는 열 사람에게 균등하게 은 한 므나씩을 맡겼다는 점입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13절)
그러나 두 비유 모두 어떤 사람들이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부지런히 장사한 사람들입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16-19절) /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네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0-23)
반면 어떤 사람은 꾸중과 함께 심판을 받았습니까? 주인이 맡긴 것을 땅 속에 묻어두거나 수건으로 싸놓은 사람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25:18) /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20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모든 사람에게 조건과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 기회를 잘 선용한 사람에게는 더 큰 복을 주시지만, 이를 저버린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며,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절)
한편, 마지막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주인에 대한 오해가 많았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을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21절) 주인이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원수들과 내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27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오해들을 한 채,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셋째, 예루살렘을 앞서서 가신 예수님(28-4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눅19:28)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어찌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28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십자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굳은 의지와 결단입니다.
가시면서 무엇을 준비시키셨습니까? 어린 나귀입니다.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29,30절)
어째서입니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
이 때 누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까? 제자의 온 무리입니다.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37,38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무엇을 보시면서 우셨습니까? 예루살렘성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 어째서입니까? 이곳이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매어 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42-44절)
성전에 들어가서는 어찌 하셨습니까?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이곳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을 선포하셨으며,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45,46절) 또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47절 상)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주가 쓰시고자 할 때 언제든지 기꺼이 내어드리되. 모든 것을 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어떻습니까?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우리의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기꺼이 내어드리고 있습니까? 또한 모든 일을 다 주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주님 주신 열심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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