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바로 위의 언니 망우리 이모에게 나를 맡겼다.
불덩이처럼 발갛게 달아 있던 나를 달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이모에게 나를 맡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코뿔소처럼 아무도 말릴 사람 없었던 나를 위로하고 책임 질 사람은 이모 밖에 없었다는 판단을 한 어머니는 현명했다. 역시 그 때는 몰랐다.
묵호에서 도둑질 말고는 나쁜 짓을 다하던 내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머니는 잠시도 지체 없이 나를 간단한 짐만 챙겨서 서울 이모에게 보냈다.
“이모 말 잘 듣고, 이모 울거든 잘 달래거라”
어머니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것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밤 마다 이모는 울었다. 단칸방에 밖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었는데, 이모는 나를 아랫목에 재우고 당신은 추운 문 앞에서 잠을 잤다.
이모의 울음 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종로 2 가 학원에 갔다 오면, 이모는 연탄불에 밥을 해서 내 앞에 대령했다. 내가 밥 숟가락을 뜨면 어김없이 반찬을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절대 겸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다 먹고 나서야 이모는 남은 밥과 반찬을 처리했다.
그것이 이모의 미덕이었을까. 625 때 갓 결혼한 남편이 빨갱이로 몰려 동네 미루 나무에 묶여 총살 당한 것을 눈 앞에 보고도, 그렇게도 남자를 받드는 이유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결혼 하고 두달 만에 남편이 죽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 이종사촌 누나는 간호사가 되어 독일에 가서 한국 남자 광부와 결혼을 했다. 이모는 항상 나에게 딸이 남편을 닮았다고 했다. 누나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이모는 못생겼다.
나의 방황은 이모의 매일 같은 눈물로 잠재워져 갔다. 나의 불만은 이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또 나를 도왔던 것은, 묵호에서 나의 첫 순결을 주었던, 그녀의 말.
“남 동생 대학 보내야 해요”
그 말이 비수 같이 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온갖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이유가 고작 그것이라니.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서울에 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면서 오면서, 그녀가 했던 말이 비처럼 서서히 내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모의 울음은 비수가 되어 나를 찔렀고.
내가 대학생이 된 이유는 두 여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