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세상에서...
자리를 양보해 주고 싶었는데 나도 힘들었다.
지하철 안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도 될 나이다.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탔다. 지쳐 보이는 얼굴에 나이는 나보다 몇 살쯤은 위로 보인다.
내 앞의 열차가 다른 칸과 연결되는 문 옆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데 몹시 피곤해 보인다. 자리를 양보해 주고 싶은데 나도 힘들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그대로 버티면서도 마음이 편할리없다.
한 두 정거장 지나자
내 옆 자리가 비고 그 여성이 앉는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다음 정거장에서 노인이 들어와 앞으로 다가온다. 노인은 기력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다시 불편해진다.
조금 전 내 옆에 앉았던 여성이 일어나면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자기도 힘들텐데...
양보하지 못 한 내마음에는 불순물이라도 낀 듯 찜찜해진다. 자리를 양보받았던 노인이 차에서 내리고 지쳐 보이는 그 여성은 다시 내 옆 자리에 앉는다. 내가 나이든 그 여성에게 말했다.
"어찌 그렇게 마음이 예쁘세요?"
"당연한 거죠."
그녀는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 다리가 조금 아프다고 당연한 걸 못 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돌아올 때, 에어컨 작동이 안 되는지 전철안은 참 무더웠다. 열대야가 한 달간 계속되고 쏟아지는 방송들의 수다가 대단하다. 옆에 앉아있는 노인이 손부채를 부치고 있다. 이상하게 바람이 내쪽으로 오고 있는게 느껴진다.
살짝 옆을 돌아보았다. 그 노인이 일부러 나에게 바람이 오도록 부쳐주고 있다. 이상히다.
그는 계속 내게 의식적으로 바람을 보내주고있는것이다. 선한 인상의 노인이다.
"어찌 그렇게 마음이 착하세요?"
그 노인을 보며 물었다. 노인은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다.
어제 조용한 바닷가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집 앞에 세워둔 내 스파크 차의 창문이 열려 있어 비가 들이치고 있다는 것이다. 차 옆에 적어둔 전화번호를 보고 누군가 알려준다 3년 전에 구입한 값싼 중고 경차였다.
나는 그런 차가 편하다. 수시로 닦고 돌보며 차에 상처라도 입을까봐 걱정하지 않아 편하다. 낡은 청바지를 입고 길가에 앉는 편안함이랄까...
내가 집 앞에 세워둔 차 있는 곳으로 갔을 때, 전화로 들은 대로 양쪽의 차창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차 지붕 양쪽에 판지를 놓고 그 끝을 살짝 접어 차양같이 만들어 비가 들이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이렇게 할 사람이 없는데...?
호젓한 바닷가에 가까이 지내는 이웃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이랬을까... 분명 천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 이라는 생각이든다. 내 가족의 차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을 살펴본다. 근처에는 보훈회관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거기서 일하는 인부 밖에 내 차 옆을 지나갈 사람은 없었다.
가끔 내 차 옆에 공구를 실은 트럭을 세워두는 건설 현장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잠시 후 앞을 지나가는 인부가 보인다. 백발이 섞인 짧은 머리의 50대 말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내 차에 판지를 덮어준 분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는 짧게 대답하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착해요?"
"허허"
그는 미소를 짓고 말없이 공사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큰 감동의 물결이 마음속에 치솟아 올라 흰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운 회색에서 아름다운 원색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영롱하게 하는 것은 국회나 방송에서 하는 거친 담론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나 사랑일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최소한 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보라" 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풀꽃같은 조그만 행동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거친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천사들을 보게된다.
엄상익의 체험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