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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어올려라…그물도 추억도 | |
아침 6시30분, 동해안 북쪽 끝 고성군 현내면 초도항. 양미리잡이 배가 어둠 찢는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5.6t 덕진호. 초도어촌계장 정철규(51)씨의 배다. “가들이 싹 다 잡아삐리는데 고기가 여까지 내리 오나? 못 오지.” 정씨가 막혔던 코를 풀듯이 말했다. 중국 배들과 정부쪽에 대한 불만이 묻어 있다. 최근 들어 북한쪽 허가를 받은 중국 배들이 함경도 앞바다에 몰려들어 명태고 대구고 도루묵이고 싹쓸이하는 통에, 남한 쪽에선 고기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초도항 45척의 배 가운데 도루묵배가 10척, 양미리배는 3척이다. 7~8년 전까지도 수십척의 배가 양미리를 잡았다. 하루에 60㎏짜리 상자로 300여 상자를 채우는 건 예사였다. 지난해엔 그래도 오랜만에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양미리잡이만으로 어촌계가 모두 1억4000만원을 벌었고, 선원들 1인당 1500만원씩 돌아갔으니 대단했다. 올해는 고기가 적은데다, 강풍으로 출어하지 못한 날이 많아 재미를 못보고 있다.
중국 조업으로 고기구경 힘들어 거센 파도와 새벽 추위를 견디며 전날 쳐둔 그물을 차례로 거두는데, 해가 벌겋게 떠오를 때까지도 그물은 휑한 모습이다. 마지막에 들어올린 그물엔 그래도 오선지에 콩나물대가리 걸리듯 꽤 많은 양미리가 딸려 올라왔다. “옛날엔 그물코가 안 보일 정도로 양미리가 꿰어 있어야 ‘많이 잡힌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
적막한 포구에 드러누운 거북섬
사실 양미리의 경우 어획량이 줄어든 건 바다 오염, 수온 상승 등에 따른 환경 변화의 영향이 크다. 50년 뱃사람 생활에 양미리배만 40년을 탔다는 김구섭(72)씨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다. “초도항 근처는 아직 깨끗한 편이죠. 양미리는 왕모래밭에서 사는데, 저기 남쪽 항구 아래로는 모래밭보다 뻘밭이 많아졌어요.” 양미리는 왕모래밭에 미꾸라지처럼 몸을 숨기고 사는 어종인데, 오염으로 그 모래밭이 뻘밭으로 바뀐 곳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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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갈수록 적어지긴 해도 초도항은 60~70년대 모습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다. 손바닥만한 배들도 바닷가에 우거진 바위도 거북섬(금구도)도 그림같다. 부둣가 바닷물은 밑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하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질퍽거리는 여느 큰 포구들에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썰렁하고 호젓하고 쓸쓸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거느리고 나그네를 맞아들인다. 60~70년대 어렵던 시절, 말리고 굽고 졸여서 맛난 밑반찬으로 술안주로 요긴하게 쓰였던, 이젠 다채로운 먹을거리에 밀려나 ‘추억의 생선’으로 남은 양미리와도 같은 포구다.
이 포구가 조용한 건 실은 철조망에 포위돼 있기 때문이다. 부둣가에 민가는 물론, 횟집 하나 없다. 군부대의 통제를 받아 밤 8시부터 새벽 3시30분까지는 어민들도 포구 출입이 금지된다. 이곳에 사람이 찾아드는 때는 주로 여름철이다. 피서객들은 작은 포구 모습과 앞바다에 뜬, 거북을 빼닮은 금구도 풍경에 반해 포구 주변을 거닐다 발길을 돌린다.
안타까운 건 어민들이다. “경치 구경만 하다 밥때가 되면 다른 포구로 가버리니, 남 좋은 장사만 하고 있는 셈”이란다. 소규모 ‘상설 회센터’를 들이게 해달라고 군청에 여러번 요구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양미리 떼는 손길…굽는 손길…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어쨌든 지금도 초도항 부둣가엔 아침이면 양미리·도루묵들이 쌓인다. 양미리는 거진항을 통해, 도루묵은 대진항을 통해 위판이 이뤄진다. 두 어종의 제철은 10~12월, 1월부터는 대구·명태잡이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달 말까지 날씨 좋은 날 아침이면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는 할머니들과 장작불에 둘러서서 즉석 소금구이판을 벌이고 있는 뱃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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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엔 풍어와 평안을 비는 서낭당이 두 곳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방파제 옆 서낭바위와 철조망 바위밑 광대서낭에 제를 올려왔다. 요즘은 3월에 방파제 서낭바위에만 지낸다.
금구도 얘기도 흥미롭다. 금구도엔 성곽 흔적과 주춧돌, 기왓장, 돌절구 따위가 남아 있다고 한다. 포구 한켠으로 ‘광개토대왕릉’이라 쓰인 안내판이 금구도를 향해 세워져 있다. 지난 10월 고성문화원에서 세운 것이다. ‘장수왕 2년(414년) 화진포 거북섬에 대왕의 시신을 옮겨 안장했다’고 나와 있다는 출처불명의 ‘고구려연대기’를 근거로 하고 있어, 신빙성은 적어 보인다. 확인 안된 내용으로 안내판까지 세웠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좌우간 금구도는 꼭 거북이 남쪽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인데, 포구와 화진포해수욕장 사이 언덕에서 가장 잘 보인다.
고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바다가 따분해질 즈음 호수와 정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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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는 동해 바닷가를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다. 해안 곳곳에서 절경과 유적지들을 만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강원도 북쪽 끄트머리 고성지역 바닷가로는 그림같은 호수와 정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화진포호=동해안 최대규모의 자연호수다. 초도항 바로 밑이다. 16㎞에 이르는 호숫가엔 갈대가 우거지고, 둘레를 따라 울창한 소나무숲이 자리하고 있다. 바다와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청둥오리·고니 등 철새들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이승만이 이용했던 별장과 48년 김일성의 처와 김정일 형제가 이용했다는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일제때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 해방 뒤 북한군 간부 휴양소로 이용되다, 이기붕의 처가 개인별장으로 쓰던 일명 이기붕 별장 등이 화진포 호숫가에 있다. 주변에 금강산 자연사박물관과 화진포 해양박물관(패류박물관·수족관)이 있다.
송지호=죽왕면 오호리·오봉리에 걸쳐 있는 둘레 4㎞의 자연호수다. 7번 국도를 지나다 보면 산쪽으로 탐조대 건물(공사중)이 보인다. 그 밑에 주차장이 있고 거닐어볼 만한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산책로 끝엔 나무다리가 물쪽으로 놓여 있다. 건너편 언덕의 정자 송호정과 어울려 경관이 볼 만하다. 고니·청둥오리 등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도미·전어 등 바닷고기와 숭어·잉어 등 민물고기가 함께 산다. 여름엔 재첩도 많이 난다.
천학정=교암리 바닷가 바위절벽 위에 올라앉은 아름다운 정자다. 1930년대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절벽과 바윗더미에 부닥쳐 부서지는 파도가 요란하다. 울창한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는데, 좌우 산길은 군부대에 의해 막혀 있고, 따로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언덕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다보는 정자 모습이 그림같다.
청간정=토성면 청간리 바닷가, 역시 소나무숲 우거진 절벽 위에 자리잡은 정자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1500년대 이전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진다. 갑신정변때 불탄 것을 1930년대에 복원했고, 지난 80년에 다시 완전 해체 복원했다. 현판은 본디 우암 송시열이 썼다 하나, 지금 걸려 있는 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글씨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을 감상하기 좋은 정자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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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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