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의 거리*
신동재
여기 한 교차로가 있다
뛰어갈 때 총알이 쇄도한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날아오는,
스쳐가는,
육박하는,
이 단어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공포를 네 글자로 쓴다면
‘임박했다’
임박한 공포와 야박한 시선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이곳 뉴스를 보는 사람들
이
세계 어딘가 있다는 뉴스를 봤다
어떤 날에 생생한 사진이 찍힌다면
스나이퍼가 잠잠해질까
집 앞에 있는 교차로에서
가방을 멘 아이들은 있는 힘껏 달리면서
내일은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11시 시계 소리는
내일이 임박했다
외치는 것 같았고
내일 등굣길을 생각하면 공포에 질린다
평화유지군의 탱크 옆에 숨어 걸어가고 싶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커져가고
나무들이 자라는 복음이 들려온다
나는 이 도시의 모든 나무들도 임박했다 생각한다
임박했다
총신을 매만지는 자들과
감히 내게
* 1992~1996년 사라예보
V
네가 내 앞에 V자를 들이민다
중지를 잡을래 검지를 잡을래
덜 아픈 쪽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너는 맹렬하게 휘두른다 오른쪽 광대뼈가 얼얼하고
유스타키오관에 푸가가 울려 퍼지는 듯해
네 주위를 둘러싼 친구들이 너를 찍어내리고 있다
오르간 연주를 쭉 지켜볼수록 목이 조여온다
너는 손바닥을 꽉 쥐었고 귀에 웅웅대는 계이름도 많아진다
슈미더처럼 번호를 붙여둔다
이 기억은 화음이 될 것 같아서
16분음표들은 갓 쓰인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어떤 친구와 합쳐질지 몰라 아직 제자리에 서 있었다
슈미더는 말했다 ‘음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그가 평생 음악을 공부한 동기
나를 구석으로 몬다
눈앞으로 네 검지와 중지가 육박한다
내 얼굴이 기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귀에 이지러진 한 음이 들린다
어느 틈 속에 끼어야 할지 몰라 그랬다
알잖니? 나는 이렇게 미숙해
너의 뜻대로 마냥 앉아 있었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틀린 선택을 한 것 같다
주위를 꽁꽁 둘러싼 친구들
목젖을 짓누르며 몰려온다
목을 스스로 감싼다 감쌌다기보다는
조이는
용기를 내 거울을 응시하지만 너는 내게 V자만 보여준다
우리 모두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마가 뜨겁다
너는 내게 자기 이름을 말한다
이름을 먼저 밝히고 너를 패줄 걸 그랬어
이미 모든 넘버링이 끝난 것 같지만
젖은 셔츠의 단추를 푼다
차마 기지개를 켜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