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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여행의 핫풀! 魔法[마법]을 부린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조양방직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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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여행의 핫풀! 魔法[마법]을 부린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조양방직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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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의 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닉네임을 가진 섬나라! 강화도! 유랑자는 현재 강화도를
여행하면서 강화도의 민낯과 속살을 보기 위해 열심히 돌아 보고 있는 중이다. 특히 고려궁이 있는 사대문 안 성곽길 남문
[안파루]에서 출발해 서문[첨화루], 북문[진송루], 동문[망한루]을 지나 고려궁지-까지 이어지는 고즈넉한 성곽길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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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왕의 길이라 해서 1.8킬로미터의 거리로 강화산성 남문[인파루]-소창 체험관-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 문학관- 고려궁지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는 제1길과 제2길로 이루어져 있다. 아는 사람들만 알겠지만, 일명 왕의 길
에는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들이 두루 분포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아마도 강화
도의 여행에 있어서 핵심 포인트가 아닌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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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강화대로를 기준으로 남쪽은 예전 소창, 방직산업과 관련된 근대 유적지들이 제법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요즘 조금은
한적한 섬인 강화도 이긴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직물 산업이 발달했다는 사실이 유랑자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중
1933년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강화 최초의 인견 공장이었던 조 양 방직은 세월이 흘러 강화 직물이 쇠락하자 수십 년을 폐
가로 전락했지만 1년여의 공사 끝에 또 다른 얼굴로 화려하게 부활한 재건축의 마법과 미학이 깃들어져 연인들의 찾는 곳
중 한 곳 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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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政時代[왜정시대]부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번성했던 강화도 직물 산업의 흔적을 보존하
면서 체험 콘텐츠를 더해 원도심 관광 거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織機[직물]이란 씨실과 날실을, 피륙을
짜는 직기라는 기계에 걸어 짠 베나 무명, 비단따위의 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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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지 모르겠지만 강화는 과거 수많은 직물 공장이 들어서 대호황을 이루며 지역 산업을 이끌었던 역사가 있다. 특히 면
사로 만든 특산 직물 ‘소창’은 기저귀와 생활용품으로 널리 쓰이며 지역 주민의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오늘날 소창 체
험관[구 평화직물]으로 문을 연 곳이 있지만 이곳은 차후에 유랑자가 별도로 소개 하기로 하고 일단 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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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먼저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에 있는 1937년 설립된 조 양 방 직 공장이자 신문리 미술관 카페로
적산가옥을 복원하여 조성된 강화도의 명소로 대규모 박물관이자 빈티지 카페인 조 양 방 직 공장을 유랑자가 찾아가 보았다.
한국전쟁 이후 거의 5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흉물스럽던 곳이 2013년 MBC 막장 주말드라마 [백 년의 유산] 주
요 촬영지 세트장으로 활용되면서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대형 카페로 탈바꿈하게 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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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유산'은 방송 도중 지나친 극적 설정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던 드라마로 유랑자에겐 기억되고 있다. 아무튼 지금도 나이 드신 강화 주민들 사이에서는 “홍재묵 사장님 공장”
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강화에서 대단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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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유랑자가 찾았던 조 양 방직이란 회사는 어떠한 회사였을까? 조 양 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강화도 최
대 지주 가문이었던 홍재용, 홍재묵[도쿄 모 대학 졸업] 형제가 공동 설립한 강화 최초 인견 방직공장으로 알려져 있다. 홍
씨 가문은 강화도 대지주로 그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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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 가문은 강화의 핵심 일원으로 1942년 전시통제 강화로 일본에서 최대의 해운회사로 성장한 일본3대 기업 중 하나요
전범기업으로 '근로 정신대' 로 이름을 떨친 글로 착취기업 미쓰비시 계열 이세현에게 조 양 방 직을 매각할 때까지의 강화
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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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홍씨 가문의 당시 재력을 살펴보면 1930년대 기준 홍씨 가문 전체 논 소유 면적 600ha[약 180만 평] 이상으로,
소작인 3,000명 이상이었으며 주로 쌀을 생산 대일 수출로 부를 축적했으나 1930년대 일제 米穀[미곡] 통제 정책으로 위
기를 맞자 곧바로 미래의 먹거리인 紡織[방직]으로 産業 轉換[산업 전환] 을 시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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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양 방 직 설립 당시 125,000원[현시가 60억 원 내외] 의 자본금으로 시작하였으며 700여 평의 2층 건물과 50여 대의
직조기를 갖추고 人絹[인견]과 마직물 염색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설립 이후 착공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장 가동 후 1년여가 되는 1939년에 큰불이 나서 소실되고 말았고 피해액은 40만 원[200억 원 내외] 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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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양 방직은 1939년 대화재를 시작으로, 1958년 폐업, 2017년 새로운 주인이 공장용지 인수를 하면서 리모델링을 시작,
2018년 7월 조 양 방 직 미술관 겸 카페로 정식 개장하면서 강화 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공장 건물이다. 강화도의 織物[직물] 산업이 발달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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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강화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문석, 가마니 짜기 등 손재주가 필요한 수공업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를테면 한국
양궁이 세계에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로 단련된 손끝의 섬세함 때문인 것처럼 강화의 직물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유랑자의 생각…. .이러한 손재주는 정교함과 꼼꼼함이 요구되는 소창의 제조 과정에
부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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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농사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강화의 여성들은 부업 수단으로 소창, 즉 이불이나 베개 따위의 안감을 짜서 팔았다.
소창은 주로 여성들이 제작했는데 여기서 男耕女織[남경여직]이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경여직’이란 '남자는
밭 갈고 여자가 길쌈하는 것은 천하의 대업이다'라는 말처럼 예부터 조선의 여성들은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길쌈을 했다. 참고로 길쌈의 어원은 고려시대의 속요를 모은 西京別曲[서경별곡]에서 “질 삼베 바리시고”라고 하던 데에
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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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연 설명을 하자면 소창이란 목화솜으로 실을 만들고 이 실을 평직으로 짠 옷감을 말하는 것이다. 아기 기저귀부터
관을 묶는 끈으로 사용했던 소창은 한국인들의 一生一世[일생일세] 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소창은 무속, 불교 의
례에도 종종 사용되는데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무당들은 굿판에서 소창을 잘라 다리를 만들어 굿
을 행한다. 불교에서는 49재를 지낼 때 소창을 쓰기도 하니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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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창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1910년대부터 강화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직물 산업은 풍부한 노동력, 조직적인 판매 경
로, 개량 직기의 도입으로 인한 공동작업장 운영으로 끝없는 발전을 이루게 된다. 1917년 강화에서 직물 조합이 조직되었
고, 직물 품평회를 통해 우수한 품질을 심사하기도 하면서 강화의 소창은 그 품질이 전국에서 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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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직물 산업은 해방 이후에도 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화 전역에 소창 공장이 80여 군데에 이
르렀고, 이 공장에서 勞動 司牧[노동 사목] 이 발생할 정도로 강화는 전국에서도 앞서가는 산업도시였다. 노동 사목이란 카
톨릭교회가 노동자와 노동문제에 대해 사목[돌봄·지도]하는 활동을 뜻한다. 사목은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
운 사태] 을 계기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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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권익을 보장하고 착취, 불평등한 노동조건 개선과 분배정의를 촉구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는 1984년부터 카톨릭을 중심으로 勞動 司牧[노동 사목] 이라는 이름으로 전담 사제를 두고 노동자와 동행하며,
노동의 신성함과 존엄성, 권익 향상을 목표로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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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가장 큰 규모의 천2백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던 삼도 직물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900명이 가입하면서 사측
에서는 노동조합에 적극 가담했던 노동자를 해고하고, 와해시키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회합 장소
를 제공하는 등, 노조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던 강화성당의 전 미카엘 강화 본당 주임신부에게도 여러 위협이 가해지면
서 가톨릭 주교단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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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기 강화성당에서 주교단이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다. 곧이어 정부에서 대책
을 발표했고 해고되었던 노동자 전원이 복직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이렇듯 강화는 고려, 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
늘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마다 역사의 층을 계속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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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예나 지금이나 노조가 활발한 기업치고 거의 망하는 수준으로 내닫는 게 현실이고 보면
오늘날 삼성의 사태가 우려스러움으로 치닫는 이유와 과정일지도 모른다는….상생을 모르는 노동자들, 마치 자기가 주인
인양 자신들의 배만 불리울 생각하는 것 그자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강화의 소창
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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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산업의 혁명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나일론과 일회용품의 등장하게 되고 소창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강화의 직물
산업은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읍내에 자리한 많은 방직공장은 폐쇄되었고, 현재 가내수공업 형태로 일곱여
군데 정도만이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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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세월이 흘러 조 양 방직은 迂餘曲折[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날 카페이자 미술관으로 대변신했다. 1990년대 공장
은 문을 닫고 오래도록 방치돼 있었지만, 고미술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골동품점을 운영했던 이용철 사장이 인수하면서 카
페이자 미술관으로 변모해 이제는 강화를 방문하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오늘날 조 양
방 직 공장 카페는 강화의 다른 명소들과 달리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
고,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들어가기 위한 대기인원이 말 그대로 門前成市[문전성시]를 이루며 불황 無風地帶[무풍지대]라
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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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 양 방 직 공장을 방문하게 되면 입구에서부터 낡은 앤티크 소품들과 예전 이발소에서 볼만 한 그림들이 묘한 조화
를 이루며 거대한 공간을 獨特[독특]하게 꾸미고 있다. 우선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 대신 커피 한 잔을 주문해
야 한다. 1930년대 건축된 공장의 건물이 전체적으로 남은 공간에 옛 공장의 형태는 부분 부분 살리면서 이발소 의자와 초
등학교에서 봤던 조각상 등 근대의 해괴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배치해 놓으니. 뉴트로의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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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직기계가 있던 기다란 작업대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로 바뀌었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다른 테마가 펼쳐지니 방문
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간에 핸드폰을 들이대고 사진 찍는 손이 바빠진다, 그도 그럴것이 중간중간 빈티지 感性[감성]
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이 많아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되어가는 듯하다. 낡은 공장 건물 속에 남아 있는 골동품
들과 곳곳에 자리한 사진 촬영 장소들은 그 자체로 소재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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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 애물단지로만 여겨졌던 장소와 물건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가치를 創出[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세월이 흐르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개발은 마치 宿命[숙명]처럼 흐를 수밖에 없는 요즘 세상이다. 무조건 건물을 헐
어 버리고 새것만 추구하는 요즘의 추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낡은 것들도 새롭게 변신해 魔法[마법] 같은
價値[가치]를 수직상승 시키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사례가 앞으로 계속 늘어나길 나 유랑자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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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양 방 직 갤러리카페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 1층
-구(지번) 주소: 강화읍 신문리 587
*전 화: 032-933-2192
영 업: 평일 11:00 - 20:00
-----주 말 11:00 - 21:00
*모든 공간은 케어키즈존입니다.
*분위기: 공장 터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거대한 내부 공간에 골동품과 예술 작품
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카페라기보다는 거대한 '빈티지 미술관'에 가깝다.
*정 보: 주차 가능, 예약 불가, 포장 가능, 배달 불가, 와이파이 가능, 휠체어접근
가능, 반려동물 동반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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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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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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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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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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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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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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