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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신 권위로 일하라
참고말씀: 사11:10; 렘23:5; 마21:9; 롬13:7
읽을말씀: 눅20:1-47
주제말씀: 눅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첫째, 하나님 주신 권위로 일하되 그 권위 아래에 순복해야 합니다(1-18절)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눅20:1,2)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종교지도자들이 와서 무엇을 따져 물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써 이런 일을 하며, 누가 이 같은 권위를 예수님께 주었느냐는 점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1,2절)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되물으셨습니까?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써 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3,4절)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왜 아무런 답도 제출하지 못했습니까?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나 백성들이 모두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으므로, 자칫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5-7절)
왜 이 같이 되물으신 것입니까? 세례 요한의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할리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 주신 권위로써 일하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의 경우처럼 그 권위 아래에 불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하여 어떤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까? 포도원 농부 비유, 즉 일명 ‘악한 농부 비유’입니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는데, 이 농부들이 ‘주인이 부여해준 권위를 가지고’ 그 소출을 받으려온 주인의 종들을 몹시 때리고 능욕하며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인의 아들마저도 죽여 버리자, 주인이 그들을 모두 진멸하고 다른 이들에게 세를 내 준 것입니다(9-16절).
왜 이 같은 비유를 말씀해주신 것입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거부한 데 대하여(1-8절) 백성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그들의 손에 의해 죽임 당하며 그 결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17,18절)
참고로, 여기서 농부들을 1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 주인의 종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선지자들, 주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방인들을 각각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부하자, 복음의 기회가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주신 권위로 일하고 그 권위 아래에 복종하되, 부지불식간이라도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부활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19-40절)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눅20:24,25)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다시 어찌 했습니까? 이번에는 예수님을 총독의 권위 아래에 넘기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서기관들과 데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르심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19,20절)
어떻게 책잡으려고 했습니까?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지 아닌지를 물음으로써 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21,22절)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간계를 다 아시고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칠 것입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24,25절)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인 성도가 하나님의 청지기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에 백성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부분을 추가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그러니 결국 그들은 어찌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놀랍게 여긴 나머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26절)
그러자 이번에는 누가 또 와서 예수님께 시험했습니까? 사두개인들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물어 이르되...”(27,28절) 어떤 문제로 시험코자 했습니까? 계대혼인을 한 여성이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입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28-33절)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답하셨습니까? 부활 때에는 천사와 같이 되어서 더 이상 혼인을 하지 않으며 이 땅에서의 관계로 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34-36절)
더 나아가 무엇까지도 확증해주셨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 곧 부활의 확실성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37,38절)
어째서입니까?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부활이 없다고 믿는데서 시작된 논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27절)
그러자 사두개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감히 아무 것도 더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40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마땅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힘쓰는 것과 동시에 어떠한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부활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되, 외식은 삼가야 합니다(41-47절)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눅20:42-44)
그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구약의 여러 성경이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23:5) /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지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과 다윗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설명해주셨습니까?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 분명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곧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시므로 다윗이 주로 칭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42-44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과 성경적 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를 삼가라고 하셨습니까? 서기관들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사람들에게 칭송과 높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외식적인 신앙생활로 일관하며, 탐욕의 노예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45-47절) 이런 자들은 무엇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47절 하)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보다 확고히 하되, 종교적 외식주의로 빠지는 것을 삼가고 오히려 진실한 신앙생활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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