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세상 어지러운가? 여기불손야녕고(與其不孫也寧固, 난세에는 고루함이불손함보다는 낫다) ‘孫’은 본래 ‘손자 손’이라고 훈독하는 글자지만, 한자는 음이 같은 경우에 서로 빌려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겸손할 손(遜)’을 ‘孫’으로 쓰기도 한다. ‘寧’은 ‘편안할 녕’으로 훈독하며 ‘안녕(安寧)’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지만, 부사로 사용할 때는 ‘차라리 녕’으로 훈독한다.
난세에는 못된 사람들이 활개를 친다. 공자 시대도 난세였다. 불손하게 날뛰는 사람도 많았고, 검소가 지나쳐 고루(固陋:누추할 루)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사치하면 불손하고 검소하면 고루할 수 있는데, 불손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게 낫다”고 했다. 불손을 고루함보다 더 나쁘게 본 것이다. 현대는 ‘있어 보이도록’ 자신을 포장하는 시대라고 한다. 촌스러운 고루함보다는 세련된 양 포장하는 불손함, 심지어 ‘갑질’이 더 ‘있어 보이고’ 낫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 특히 장수하는 연예인을 보면 하나같이 고루할지언정 불손하지 않다. 불손함보다는 고루함이 낫다는 증거이다. 불손함의 대가로 코를 다쳐본 사람이 하는 씁쓸한 고백이 “겸손은 어려워”다. 성공은 다른 게 아니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게 성공이다. 불손한 ‘날티’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촌티’가 사람을 모으는 힘이 더 강하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우주의 리듬, 누구에게나 삶의 고민이 있다. 그것이 그 삶의 무게이다. 그것이 그 삶의 빛깔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가난한들 손해될게 무엇인가. 또 살만큼 살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죽을 때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우주의 선물을 신이 주신 선물을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것 일 뿐이다. 그 기간이 끝나거나 관리를 잘못하면 곧 바로 회수 당한다. 이것이 우주의 리듬이다. (법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