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을 인터넷 쇼핑몰로 팔기 전에는, 농산물을 주로 팔았다. 배추와 옥수수를 직접 농사를 지어 절임배추를 만들어 포장을 해서 인터넷이라는 판매수단을 통해서 팔았기에 누구보다도 농업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농민들을 상대했었고, 농산물 유통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제 농촌은 사람 냄새를 맡기가 힘들어졌다. 과거의 인심 좋은 고향의 의미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정답이다.
나는, 농산물을 생산 유통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돈의 노예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것에서 충격이 크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기에 생략을 하고, 왜 그렇게 변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농촌은 이제 도시에 식량을 공급해주는 주체적인 자격에서 멀어져 도시민의 소비에 따라 생산해야 하는, 보조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농업 홀대 정책에 있다. 중국과 미국에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면서 농촌 경제는 철저하게 무너져버렸다.
농지 몇천평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봐야 도시민의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친다.
게다가, 농촌에도 이미 도시민들의 소비 형태가 자리잡았기에 그들의 생활은 점점 피팍하게 변해버렸다.
게다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농업 생산의 주된 방식이었던 협업의 형태가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농기계와 일당 외국인 인력들이다. 농촌의 아름다운 전통인 공동 협업 작업이 석유와 돈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농촌의 인심이 도시 보다 더 사나워졌다.
나는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를 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인터넷이라는 대단히 효율적인 판매수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버텨나갈 수 있었을 뿐이다.
묵호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수산물을 팔기 위해 어민들과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 어촌 역시 도시민들에게 수산물 공급처로 전락해버리고 돈이 판치는 곳에는 같았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농촌에서 사라져버린 협업체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공동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어업의 특성이 다행히 그것을 남겨 놓은 것이다.
그래서, 어촌은 그나마 사람냄 새가 나는 곳으로 겨우 남아 있다.
경제라는 것을 정부는 성장을 통해 돈을 벌기위한 것만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만들고 행정을 통해 추진해왔다는 것에 모든 오해와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오로지 성장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농업과 어업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경제라는 것은, 경쟁을 통해서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느냐가 아니라, 같이 힘을 합쳐서 일해서 같이 벌어 먹고 사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 한다면, 자기 자신의 발전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은, 이미 경제의 옳바른 의미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이 열심히 일해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사회주의라고 이해한다면, 나는 극우주의자들이 이야기 하는 극좌파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