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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제 입장을 적어봅니다.
철학에는 3대 질문이 있습니다.
Who ami I (나는 누구인가?)
How to live (어떻게 살것인가?)
How to die (어떻게 죽을것인가?)
질문은 3가지 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것이죠.
나라는 존재에 의해서 옳고 그름이 판단되고 이 옳고 그름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되고
그 가치에 따러서 어떻게 살것인가가 결정되는것이죠.
나는 누구인가라는것이 전체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는 누군가라는 문제죠.
우리는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사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자극에 따른 반응을 판단이라고 착각하면서 사는걸까요?
우리는 왜 살까요?
살고 있으니까 사는걸까요? 아니면 뭔가 어떤 일이 일어날것이라는것을 기대하면서 막연히 사는걸까요?
보통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라고 대답하죠.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경우는 사회에서 정답이라고 배운 행복을 얘기하죠.
사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게 맞을거예요.
그럼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것인가?
하루 하루 살아갈때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우리는 판단을하고 결정을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옳다라고 믿는데로 판단을 하죠.
이 판단이 나의 결정일까요?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정해진것에 따른 결정일까요?
어떤것이 옳다고 믿는것이 진짜 옳기 때문에 옳다고 믿는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판단하는 주체를 자아개념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자아개념과 판단체계가 합쳐서 나라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1. 자아개념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개념을 자아개념이라고 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의 판단체계가 나인것이죠.
저는 식물인간인 경우 판단할수없기에 자아개념이 없다고 봅니다.
가끔 해마가 손상되어 과거 장기기억은 있지만 새로 기억이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사람들은 5분만 지나면 방금전일을 다 까먹습니다.
하지만 과거 기억이 있기에 판단은 그대로 하죠.
(현재의 5분간의 경험이 과거의 장기기억체계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현재의 경험에 과거의 장기기억을 합쳐서 판단해나가면서 점점 판단체계는 변화합니다.
즉, 현재의 경험이 장기기억에 영향을 주는것이죠.
나는 개인의 자아개념을 생성하는데는 다음 3가지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진화의 결과 (생존본능) - 개인적 가치 판단
2.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 형질 - 개인적 성향(성격)/능력
3. 문화 + 무의식적 경험 - 사회적 가치 판단
위 3가지만 있는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95%의 사람들)들에게는 그러한것이기에 위 3가지가 중요합니다.
(이외에 자기 성찰이라던가 학습에 큰 영향을 받죠.)
1) 생존본능
본능은 학습된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태어난것입니다.
학습을 통한 행동이나, 유전적 인자에 의한 생리적 반응행동과는 다릅니다.
간단하게는 성욕, 식욕, 수면욕을 본능이라고 합니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반복행동이 본능인 것들이 있습니다.
예. 설탕을 좋아하는것, 뱀을 무서워하는것, 아기가 면역체계를 갖추기위해 아무거나 입에 넣는것, 라빈스키 반사 등등..
동물의 본능과 인간 본능의 차이점은 인간은 본능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다라는것이 다르지만 본능은 본능이죠.
하지만 억제하던 말던 이러한 본능은 무의식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죠.
본능을 억제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표출됩니다.
이 본능에 따라 우리의 판단체계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본능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생존본능입니다.
바로 생존을 도모하고 자손을 남겨서 내가 영속화하는것이 가장 큰 본능입니다.
생존본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것도 생존본능인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생존에 유리한것들이 행복입니다.
먹을것 걱정없이, 크지는 않지만 몸을 뉘울수있는 집에서 가족과 근심 걱정없이 사는것..
소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생존본능이 승화(sublimation)된것이죠.
누군가 자기는 공부를 못해서 불행하다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건 행복과는 상관없다고 말하죠.
그런데, 자식이 죽었거나, 먹을게 없거나 집도 절도 없으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 불행) 말하죠.
즉 모든 판단의 기저에는 타고난 본능에 의한 생존욕이 있습니다.
나는 행복이란것은, 진화의 산물로서 생존에 유리도록 조작된 특성이라고 봅니다.
행복하면 행복감을 느끼죠. 사랑에 빠져도 행복하고요
행복할때 두뇌를 보면 도파민 (단백질 혼합물)이 분비되어 신경 흥분 상태가 되죠.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것이 물질에 따른 두뇌의 반응인데,
두뇌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하면 보상을 주는 체계를 만들어서 생존 가능성을 높인거죠
끊임없이 음식을 찾도록 하기위해서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이라는 행복을 주죠.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고요
이러한 보상체계로 인하여 우리는 보상을 받는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라는것은 생존을 선물로 주는 중독체계입니다.
반복적인 행동에는 습관과 중독이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는 보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반복행동으로 보상이 없어도 하는것인데, 의식적으로 안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보상을 갈구하도록 두뇌가 요구하기에 의식적으로도 끊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100년정도면 죽는걸 알고있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신경쇠약을 일으키는 사람은 별로 없죠.
이건 두뇌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불안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게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렇죠.
동물들이 바로 옆에 있는 친구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었어도
좀 지나면 금방 잊고 풀을 뜯어 먹는것 처럼요.
이처럼 생존에 유리하도록 두뇌가 정해놓은것 (=본능)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나 판단을 결정하는 일이 많은데, 보통은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본능들이 잠재의식하에서 우리의 가치기준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본능의 기준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가 그렇지 않은가 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것은 돈입니다.
왜 일까요? 생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겠죠.
(돈 혹은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 (예. 외모, 지식, 능력, 물건)들)
원시시대에 돈 역할을 하는 조개의 가치와 현대 시대의 돈의 가치는 비교불가입니다.
현대사회는 돈의 가치가 절대적이죠.
막말로, 지폐는 주조된 자유라고까지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업해서 돈을 버는걸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러하므로 의심할 생각자체도 안하고 무조건 따라가죠.
(저는 사람은 판단하지 않고 반응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도 개인의 선호보다는 생존이 훨씬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기에 그렇다고 봅니다.
가끔 다른 게시판가면 외국 나가서 병아리 감별사하면 돈 많이 번다고 병아리 감별사 배운다는
글을 봅니다. 이것외에도 돈을 잘 버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공부하기도 하고
고시공부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도 저도 안되면 평생 생존을 보장해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죠.
이런 사람들 중 몇명이나 하는 일 자체에 만족하면서 살까요?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꿈(= 진짜 원하는 꿈인지는 의심이 가지만.._)을 포기하는것이라고 봅니다.
<개인 의견>
병아리 감별사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가치가 있느냐 하는것이죠.
왜냐면 병아리 감별기계가 이미 나왔거든요. 기계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쉬지도 않죠.
당장은 기계값이 비싸서 감별사가 필요하지만 조만간 없어질 직업이죠.
없어지지 않는다해도 내 인생에 병아리 암수구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점이 의문입니다.
저는 자신이 하는 일이, 생존이 아니라 자신을 발전시키는것이 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개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저는 항상 모즐로의 자아발전 단계이론을 신봉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가치기준은 다음 단게로 발전한다는 이론입니다. (관심있는분들은 찾아보세요)
1. 생존
2. 안전
3. 관계
4. 명예
5. 자아실현
우리 사회의 여라가지 문제중 복지문제, 부와 가난, 비정규직 문제, 고용문제는 생존에 관련된 문제라고 봅니다.
2) 유전형질
본능이 가치 판단의 기반이라면, 유전은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람마다 독특한 성격이나 성향이 있습니다.
까칠한 사람, 느긋한 사람, 게으른 사람, 부지런한 사람
성적취향도 다양하고요.
이것들은 내가 결정한걸까요 아니면 타고 난것일까요?
동성애는 만들어진것이라까요? 타고난 것일까요?
우리의 성향이나 능력을 결정짓는것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여러가지 이론이 있고, 나름 설득력이 있는것들이 있습니다.
프로리트의 원인론이나 아들러의 목적론 둘다 정답일 수 도 있고요
아니면 진화생물학이 정답일 수 도 있고요.
이전까지의 믿음은 환경의 결과에 의해서 그 사람의 성향이나 능력이 결정된다 입니다.
즉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고 변하므로 현재 너가 못하는것은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하는 말의 근거가 되기도 하죠.
참고로, 저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은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죄뇌론 우뇌론, 바이오리듬, 혈액형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게 밝혀졌는데
은근히 현재가지 사실로 믿고있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 근거없는 믿음을 진실로 믿는순간 두뇌는 이것에 맞춰서 동작합니다.
좌/우뇌론(노벨상 수상)=>다중지능이론=>복합지능이론=>작업기억(노벨상수상) 등으로
발전한것처럼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에 대한 연구도 발전하고 있죠.
각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을 결정짓는것은 무엇인가?
과연 능력의 한계는 모두 동일할것인가?
이 차이를 결정짓는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노력 차이인가?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입니다.
우리는 어릴적 가정환경, 교육이 그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다고 믿지만
분명 어릴적에는 영향이 있지만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그 영향은 0으로 수렴해서
20세쯤되면 그 영향력은 0이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믿음)과는 상반되고
교육심리학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연구결과라 수많은 비판과 반박을 받았죠.
이 결과가 틀리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제시 됬지만,
현재까지는 저 연구결과를 깨뜨린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사이코패스는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것이죠.
미래에는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가장 최신 연구결과는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은 태어날때부터 결정되며 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다 입니다.
우리가 어떤것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환경 결정론을 믿을때는 개인의 노력이나 책임이 강조되죠.
그래서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수 있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맞다는 근거가 다른것입니다.)
무한한 잠재능력을 말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진것인지 결정된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막연하게 노력하면 할수있다라고 믿을 뿐이죠.
현재의 내 모습이 내가 아닌 유전에 의해서 결정된 부분이 많다는것이죠
능력이 유전으로 결정됬다면 그러면 개인의 노력은 필요없는가?
성향이 그렇게 결정됬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몰라서 못바꾸는것이지 알면 바꿀 수 있습니다.
다른걸 선택하면 되는것이거든요.
능력이라는게 연산능력 판단력 뿐만 아니라 가장 큰것은 창의력이죠
능력을 드러내는데 가장 대표적인게 노벨상이죠.
노벨상 수상자들의 IQ는 120~ 140 정도입니다.
(유명한 핵물리학자 파인만은 110)
인류 역사상 최고의 두뇌라 믿어지는 노이만의 경우
두뇌는 경이적으로 뛰어나지만 큰 업적은 별로 없죠
(컴퓨터 구조 설계와 게임 이론이 그나마 유명)
창의력 얘기는 너무 긴 얘기가 되므로 적지 않겠습니다.
부가적으로 남자의 유전자와 여자의 유전자(DNA)가 분열하여 하나의 유전자로 결합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남녀로 구분되기도 하고, 성격이나 능력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 원인은 분열된 유전자가 결합할때 일부분의 변형이 발생합니다.
DNA (Deoxy-ribonucleic acid) 말 그대로 단백질 화합물입니다. 변형이 안일어나는게 용한거죠.
이러한 변형이 발생한 부분에 따라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것이고요.
변형이 너무 심하면 죽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 도 있죠.
참고로, 변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종의 다양성을 위한 진화적 조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변형이 없다면 두 남녀가 생산하는 후손은 모두 동일한 형질을 갖게되어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여 생존확률이 떨어지겠죠.
3) 문화와 의식적/무의식적 경험
나라 마다 독특한 성격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좀 급하고 남 의식을 하기는 하는데 느끼는 부담은 일본인들보다는 적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남을 의식하고 남한테 신세지기를 싫어하죠.
이런것을 통틀어 국민성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우리 의식체계의 판단 로직으로 정착되어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제어하게 됩니다.
같은 사물, 사건을 봤을때 한국인/일본인/미국인의 보편적 생각이나 판단은 다릅니다.
즉 내가 옳다고 믿는것은 주어진 문화의 소산일 수 있다는것이죠.
그럼 문화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살고있는 환경에서 생존하기에 적합한 생활약식이라고 봅니다.
즉, 환경에 대한 진화 혹은 적응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는곳은 어디나 비슷하기에 문화의 대부분의 비슷한 부분이 많죠.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한 처벌, 존속에 유리한 행동에 대한 장려..
도둑질이나 살인은 어느 문화권이든 금지되죠.
아기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사회에 적응하게 됩니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를 거치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칩니다.
어릴적에는 참/거짓을 판단하기 미숙하므로 모든것을 스폰지처럼 받아들여서
판단체계를 형성하죠.
우리는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돕도록 교육됩니다.
이에 비하면 서양은 개인주의적이죠.
어느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문제로 각각의 개인이 선택해야할 방식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자라면서 이렇게 하는것이 맞다고 배웠기에 의심하지 않죠.
오랜적 뉴스에서 본 일인데, 지하철에서 어떤 커플이 애정행각을 하고 있는걸
어떤 노인이 야단치면서 여자를 때렸습니다.
여자의 남자친구가 화가나서 노인을 때렸죠.
그걸보던 주변 남자들이 젊은놈이 노인을 때린다고 남자친구를 집단 폭행했죠.
이 상황에서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 일가요?
시대와 문화,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겟죠.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남의 일에 끼어든 노인이 잘못일것이고
어떤 사람은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애정행각을 한 커플 잘못이라고 하겠죠.
이러한 판단의 내면을 살펴보면, 자신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게
사람이 어떻게 사는게 옳은가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판단한다는것을 알 수 있죠
즉 옳고 그름의 판단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기반에 따라 달라진다는것이죠.
제가 말하고자하는것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삼는 믿음이라는게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 주입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1), 2), 3)은 우리가 판단할때 기준으로 삼는 재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것들이 우리의 배후에 숨어서 우리의 생각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극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판단한다면 무의식적 족쇄를 벗어날 수 있자만,
(선현들이 항상 깨어있으라 하는 이유죠)
사람의 두뇌 구조상 항상 깨어있기 힘들기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사람은 어떻게 판단을 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 판단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삽니다.
작게는 커피를 마실지, 담배를 필지, 쉴것인가 말것인가
크게는 정치 문제, 국제 정세 문제등등 수많은 판단을 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고유의 판단과정을 거친 생각이라고 생각할것입니다.
과연 그럴것인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것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1) 판단체계 형성과 automation
2) 의식 메카니즘
3) 의식적 판단
4) 생각의 발현 과정
1) 판단체계의 형성과 automation
사람이 기억을 못하면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기억은 고정된 판단체계라고 할 수 있죠.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수많은 판단체계의 집합이라고 볼수있죠.
이러한 판단체계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형성됩니다.
어렸을적의 행동이나 그 결과에 다른 벌이나 칭찬, 타인과의 관계등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이러한 형성의 문제는 이 판단체계가 맞느냐 틀리느냐는 판단하지 않고
한번 성공하면 그대로 형성되어 의심없이 수행된다는 점 입니다.
아기가 처음 물건을 집을때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수많은 시도를 통해서 안정화되면 그 이후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물건을 집죠.
성공적 시도는 판단체계로 형성되고, 그 이후에는 무의식적으로 수행됩니다.
cybernetics에서는 이것을 automation 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자동화 매카니즘은 큰 장점인 반면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믿음> 자극 => 판단 => 반응
실제 > 자극 => 반응
우리는 왜 빠르게 판단할까요? 왜 하나하나 깊이 생각해서 결정하지 않을까요?
저는 빠른 판단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형성된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길을 가다가 맹수를 만났을때 즉각 반응하여 도망하거나 싸우거나 하는게
생존에 유리하겠죠.
판단을 내리기 위한 필요한 에너지 절약은 부수적인 효과고요.
사람의 두뇌는 휴식시에도 20~25%의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인간보다 더 좋아보이는 뇌를 가진 돌고래는 8%를 사용하고요.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하는것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신경회로를 변형하는것이기에
이런것을 최소화하는게 생존에 유리하겠죠.
즉, 판단체계가 무의식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않고
현재의 상황에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진화한것으로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의 문제해결 방식이 이런 방식입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옳다라고 생각하는걸 무의식적으로 수행합니다)
이러한 매카니즘의 단점은 한번 참이라고 결정된것은 의심없이 항상 같은 동작을 수행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매카니즘은 행동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문제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한다는것은 고민끝에 결론 내리는것이 아니라, 기존에 형성된 판단 체계하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이런걸 프레임적 사고라고 할 수 있죠
투표는 이성이 아니고 감성에 따른다고 하는것도 그 이유죠.
즉, 사람은 생각하기 싫도록 진화한것입니다.
이러한 자동화 외에도 우리의 의식 매카니즘은 수많은 함정이 있습니다.
2) 의식 메카니즘
우리의 의식 아래에 수많은 기억들과 가치판단이 뒤얽힌 수렁있습니다.
모든 판단이 동일한것이 아닙니다. 내적으로 많은 충돌도 있고요.
(예.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 vs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이러한 무의식 세계에서 여러 필터를 통한 결과가 현재의 생각이 되는데
이러한 필터는 크게 순응과 방어기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제:mechansim - 유사한 자극에 대한 기게적인 반응)
순응에는 사회적인 믿음, 권위등처럼 타인을 의식해서 따라가는것이고
방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억제하는것입니다. (부인/분리/투사/억압...)
자기 합리화도 방어기제죠.
하나의 의식이 결론으로 나올때까지 수많은 내적 충돌을 거치게 되는데,
우리의 의식에는 모순되는 믿음이 혼재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전략)
우리가 인지부조화를 겪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충돌은 승화(sublimation)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한다는것은 기존것을 포기하는것이기에 수많은 내적 충돌일 발생하게되어
불편한 상태가 되어 다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는것이죠.
기제 부분에 대해서 관심있으신분은 심리학을 공부해보세요
3) 의식적 판단
의식적 판단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점입니다.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제가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를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자유의지 실험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판단한다고 할때 그러면 그것도 나의 선택일것인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벤자민 리벳이라는 사람의 자유의지(freewill)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험자들을 모아놓고 손가락중 아무거나 의식적으로 움직이되,
그 생각을 한 순간 버튼을 누르라고 했죠.
실험목적은 두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관찰하는게 목적이었는데,
이 실험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람이 특정 손가락을 결정하기도 전에 벌써 두뇌는 움직일 손가락을 결정해놨다는것이죠.
우리는 내 의지로 특정 손가락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두뇌가 만들어내 착각이었다는것이죠.
* 감각은 믿을 수 없다.
우리 두뇌는 자극이 있어야 생각이 발현됩니다.
(이 부분은 사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생리학적, 종교적, 철학적 등등..
저는 자극이 있어야 생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극중에서 감각이 대부분의 자극을 담당하는데,
실제로 두뇌는 보는것도 만지는것도 못합니다.
다만 신경을 통해서 들어온 신호를 해석하는것이죠.
예로 시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눈에 사물이 거꾸로 비치는것은 아실겁니다.
두뇌에서 이걸 다시 뒤집어서 처리합니다.
안구의 결정적 단점은 시신경 앞에 많은 혈관이 존재하는다는 점입니다.
(이건 진화가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을 방해하거든요)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것은 우리 시신경에는 바깥 사물이 거꾸로 맺히고
그 위에 나무 가지 같은 그림지가 죽죽 생긴다는 점이죠.
이걸 두뇌가 바로 돌린 후에 그림자 부분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는 옆에 있는
이미지를 가져다 채워넣어서 보여줍니다.
이것을 자동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 눈은 움직이지 않는 사물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림자는 항상 고정 위치에 형성되기에 움직이지 않는 물체입니다)
그럼 밖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가 눈에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밖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눈은 미세하게 좌우로 진동하여 모든 사물을 움직이게
만들어서 인식합니다.
모든 감각이 필터를 거쳐서 두뇌에서 판단하다보니 착시나 착각이 발생하게 됩니다.
* 감각만으로도 지능적으로 동작할 수 있다.
이쁜꼬마선충이라는 뉴런이 300개 정도되는 선충이 있는데, 이 선충의 뉴련 연결정보를
그대로 복제한 결과 지능이 없어도 감각만으로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고 먹이를 찾는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지능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어짜면 자극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생각은 나인가? 판단 주체 문제
다음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죠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모든것은 의심해도 의심하는 나는 의심하지 못한다.
이 말은 일견 맞는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죠.
생각이나 판단하는 주체는 나인데, 내가 맞는지 틀리는지
어떻게 알것인가하는 문제와 판단하는 내가 실존하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죠.
백번 양보해서 저는 생각은 그냥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논리적 체계의 문제점
우리는 어떤것을 판단할때 삼단논법이나 정반합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삼단논법으로 판단한다고 했을때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3.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여기서 전제는 사람이 죽는다인데, 이것이 참이라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것을 증명해야 됩니다.
만약 어딘가에 죽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가정이 틀리는것이죠.
정반합을 사용한다 쳐도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것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말할 수 있는것은 수학과 게임규칙
(예. 가위바위보 게임. 카드놀이 등)
뿐이고 나머지는 참 거짓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참/거짓을 알 수 없다라는 문제 입니다.
4) 생각의 발현 과정
현재는 생각의 발현과정이 물리적으로 증명이 된 상태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분해되어 단백질 화합물로 두뇌에 저장되고, 입력되는 자극은 음성, 이미지 등으로 분해되어
기존에 저장된 장기기억과 조합되면서 새로운 생각이 발현됩니다.
문제는 어떤 조각과 왜 결합하는지 또한 기억은 단백질 화합물이기에 다시 불러올때 변형이 일어나는 점이죠
변형에 의해서 기억이 왜곡되어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죠.
즉, 이론적으로 봤을때 우리의 생각의 내 결정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거나 왜곡된 결과일 수 있다는것이죠.
의식을 바라보면 바라 볼수록 낯선 나를 발견할 뿐이죠.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판단체계 위에서, 여러 기제 (mechanism)와 자동화를 거치고 왜곡과 우연의 결합을
거친 생각이 과연 나일까하는 회의가 듭니다.
3. 며칠 문제가 됬던점에 대한 내 생각들
위에 길게 자아개념과 판단을 쓴 이유는 내가 왜 이렇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쓴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나도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사회도 어떤 고결한 연대 의식보다는
본능에 의한 무리짓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독립적 개체이지만, 어떤 사회적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가게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집단을 이루는 이유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것입니다.
생존에 걱정이 없는 종은 굳이 집단을 이루지 않겠죠.
제 입장에서 보는 공동체는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집단입니다.
얻는건 최대한 얻고 주는건 최소한으로 주는 관계라고 할 수 있죠.
집단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취할려고하는게 본능이라는 점이죠.
가족간에는 도둑질이 필요없지만, 타인과는 도둑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둑질이 죄인 이유는 그러한 도둑질 피해를 내가 당할 수 있기에
합의로써 금지하고 처벌하게 됨으로써 죄가 된것이죠.
즉 죄는 집단의 생존에 해가되는것이 죄고 집단에 유리한것은
선이 되는것이죠.
이러한 처벌의 두려움은 양심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요.
즉 제가 바라보는 사회는 절대선도 아니고 절대악도 아닌 상호이익을 위한
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나의 물질적 이익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옳다고 믿는것은 희생할 생각이 없습니다.
1) 부와 가난 vs 불의와 정의
개인의 이익을 최대한 취하려다보니 무리수나 불법을 쓰게되는게 현실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부라는것은 생존 본능에따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것이라 생각하기에
부와 가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저 한테 더 중요한것은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으로 부터 기인했는가하는점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부라는것은 구름이 이 산위에 있던지 저 산위에 있는가 하는 문제 정도입니다.
저는 부의 편중 문제보다는 부에 메몰되도록 만들어가는 사회 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프레임적 사고를 경계하거든요.
부=불의, 가난=정의라는 프레임이요.
제가 걱정하는것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부는 불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점입니다.
오랜 성찰을 거치고 논리적 모순이 없는 결론에 도달해서 그렇게 판단한다면 존중합니다.
저는 술도 잘 안마십니다. 물질에 지배받기 싫어서요.
제 관점에서는 부 자체는 선이나 악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이 문제는 판단하는 사람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부의 불평등은 제기 되는 이유는 생존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것이고,
주택문제, 교육문제도 생존과 직결된다고 믿기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것이죠.
하지만, 공공의 이익에 문제가 되는 환경문제등에는 내 발등의 불이 되기전까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죠.
저는 급진적 진보 세력을 믿지 않습니다. (제 경험과 믿음에 의한 판단입니다)
왜냐면 먹고사니즘에만 너무 몰입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사적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도 찬성은 하지만, 목적성 자체는 회의적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잘먹고 잘살자가 목적인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의 부의 평준이 문제가 없다라는게 아니라,
목적을 어디야 두어야하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주셧으면 합니다.
저라고 생존문제에서 벗어날수있겠습니까?
그냥 별 중요한것이 아니라 생각할뿐입니다.
2) 문재인 지지자
저는 이번 선거에 문재인을 지지했읍니다.
저를 문빠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문빠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했던 정치인은 김대중선생님과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경선 과정에서는 문재인/안희정을 지지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안희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열린 사고를 보고 지지한것입니다.
(보수까지 포함해서 정계개편을 한다는 자기 발등찍는 소리는 소신있게 하는걸 보고 지지했습니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판단에 의한 지지 맞습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경선에서는 문재인을 지지했습니다.
이재명은 인간이 덜 됬다 생각해서 싫어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불만이 목소리가 까페내에서 나오는것을 봤습니다.
남북문제, 북미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종속변수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문대통령이 뭔짓을 한다해도 현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편든다고 했을때 미국이 고분고분 물러갈까요? 국민이 지지해줄까요?
현실은 대부분은 국민들은 친미주의자고, 종북 알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진적 정책을 폈을때 그 후과는 누가 감당할까요?
보안법 폐지, 양심수 석방등은 반드시 이뤄지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국민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제도는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지만, 사람 의식은 급진적으로 변화 시킬 수 없기에
모든것은 순리대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역사와 나의 관계
역사해석 방법론은 뭐가 맞다 논하지 말고 자기 민족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교훈일까요?
과거의 경험으로 교훈이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참고해도 되므로 교훈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보는 민족역사의 의의는 한 민족이나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정체성 확립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일 민족인 경우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 있어서 민족 역사가 갖는 무게는 다를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다민족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데, 문화통합이 안되는게 가장 큰 문제죠.
유전자는 일본인인데, 아기일때 입양되서 정체성은 한국인이라면
이 사람에게 있어서 한국민족 역사는 무엇일까요?
그 사람의 역사인가요 아닌가요?
저는 민족 역사는 민족혈통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민족역사라는게 인간이 가진 생존본능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후손을 통해서 자신의 영속성을 확보하고자하는 생존욕구가 확장된것이 가족이고 그것이 확대되어
친족, 지역, 국가적으로 발전하여 민족 개념이 형성된것이라고 봅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유전자를 배척하는것도, 대놓고 말은 못해도 순혈주의 (예. 백인우월주의)가 득세하는것도
유전자 형질의 동일성 측면에서 본능적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찾고자하는 시도는 자기 유전자적 정체성을 잦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인데,
이게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게 제 의문입니다.
4) 단전호흡, 예언, 운명론자
저는 5살때부터 사람이 왜사는지를 고민하던 사람입니다.
오랜 고민끝에 중학교 1학년때 단전호흡을 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을 듣고
단전호흡을 배워서 진짜 열심히 했죠.
석달만에 온갖 능력을 얻게되었죠.
귀신도 보고, 투시도 하고, 미래도 보고, 사람마음도 읽고, 과거도 보고..
유체이탈을 통해서 영계도 많이 갔다 왔죠.
하지만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게되어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여러가지 수련도 했습니다.
입정이라고 하는 단계도 많이 가봤죠.
10년넘게 이런저런 수련을 하다가 어느때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적도 있었지만..
아는것과 행하는것은 하늘과 땅차이고, 결정적으로 깨달음이 맞다는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게
문제에 부딪혀 다 때려쳤죠.
이후 20대 후반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서 지금까지 프로그래머로 살고 있습니다.
40대초반에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번민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제 운명도 다 알고 있고, 현재까지는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운명론자라고 자칭하는것이지요.
저는 앞으로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일어날일은 일어날것이요, 안일어날 일은 안일어날것이고,
내가 안달복달한다고해서 한치도 변화가 없다는것을 알기때문이죠.
프로그래머다보니 하루 24시간을 집중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까페에 들어와도 글을 봐도 집중력 떨어질까 댓글은 잘 안달아요.
며칠전 괜히 댓글 달았다가 오해를 사게되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적엇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져서 개발새발이 되가네요 ㅡㅡ;
첫댓글 /
돼지라 그런지..
..
몇 수년 전에 꼬마야님이 단전호흡이나 여러 수련을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몰입과 집중력이 대단하신듯. 일상에서 명상수련을 하는 처지로서 무아지경의 입정에 들어봤으면 하는게 소원임. 제 운명을 다는 모르지만, 저도 운명론자 입니다. 늘 건승하시고, 잘 지내세요. 카페에 의외로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
사실 저는 깨달음이라는것에 회의를 갖는 입장이라 뭐라 말하는기는 그런데요
입정이 뭐 별거있나요. 깨달음을 못얻으면 그냥 세월가는줄 모르고 앉았는거죠.
하지만 그런 과정중에 깨달음이 온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깨달음 자체에 회의가 있어서 안할뿐이죠.
원하시는것 얻으시길 바랍니다.
녹두님괴 키호테님께 글을 쓰셨는데 답볍이 없네요.
가끔씩 올라오는 꼬마야님의 댓글들을 읽으면서 상당히 엄격하고 반듯한 훈장님 같은 성격과
나름대로의 지적체계를 가지신 분이겠구나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자신의 틀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신 것을 보고 내린 결론은 내 생각이 어느정도 맞은거 같네요.
똑소리님 이시군요. 그동안 안보이시길래 탈퇴하신줄 알았어요.
건강하신가요?
저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네요.
이렇게나마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초반부만 읽고 댓글 달기는 드문경우네요
ㅎㅎ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린것입니다. 저는 기본적 윤리조차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한테는 식민지 문제보다 더 중요한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존에 급급해서 더 중요한것을 못본다는 점입니다.
그게 키호테님과 저의 생각 차이인것이죠.
이것은 가치관 문제이므로 어느것이 맞다 틀리다 판단할 수 없는 문제죠.
저는 답변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키호테님의 관점으로 가지고 판단하시길래 오해를 풀고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나고 가는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가는게 두려울뿐이죠.
제 관점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비난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보시고 싶은신데로 보시겠다는데 말릴수야 없죠.
저는 다 이루어졋다고 믿는데,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게 보니까 어쩔수없죠.
미제가 물러간다고 모든 인생의 제 문제가 사라질까요?
우리 발에 채워진 족쇄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것뿐이라고 봅니다.
그냥 다른 문제로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여튼 저도 여기서 정리합니다. 건강하시길.
졸리면 자고..
고프면 먹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그래도 직성이 안풀리면 술 마셔 풀어내고..
얼큰히 취해 길을 걷다 비 오는 날 폐지 줍는 꼬부랑 할매를 보면 호주머니 털고..
집안에 도둑이 들면 타이르고...
칼 든 강도가 들면 몽둥이로 까고..
떼 강도들이 총 들고 가족을 인질 잡아 집안에서 퍼먹고 방 바닥에 똥 퍼 싸지르면..
그땐 어찌해야 하나요.
홀로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시줏돈이나 축내며 일면불 월면불하며 살 수는 없겠지요.
어는 회원님께서 똑소리님이세요?
저도 연락이 안되서 그간 기다렸는데요
내 사는동안님이 똑소리님이신듯해요.
@꼬마야 똑소리님 계시면서 모르체 계시다니 서운 ~
그리고 반갑네요 ^^*
참 억울한 일도 많았고 한스러운 일도 많았고 사방이 나와는 통하지 않는 차별의
벽으로 쌓여서 숨을 쉬고 살수가 없었던 그 옛날의 기억들이 오늘 이 본문글과
댓글들을 되살아 나네요.
내가 어려서 얻은 질병 때문에 불구가 되어 국민학교때부터 받았던 그 두려운 왕따돌림
이유없이 들어야 되는 별명만 해도 서너개는 되었는데 그 별명들에 마음이 굳어지고
한이 맺혀서 모두를 두려운 적으로 여기고 살았지요.
나를 위로하는 사람 조차도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두려워 하는 삶을 살다가
사선을 넘는 두려움을 안고 남한을 떠나 왔습니다.
떠나온 그 후로 얼마간은 북쪽글 바라보면서는 오줌도 안누겠다는 생각을 되뇌이면서
살다가 보니 어느새 허연 백발의 머리가 되었고 여기저기 뼉다귀도 아프고
새벽에 이불 밖으로 나온 어깨 쭉찌가 시려워 얼릉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 올리는
한국말로 "어르신"이 되버렸습니다.
그토록 증오스럽던 한국사람들이 사는 남한이 요즘 박그네랑 그 무리 때문에
분노의 촛불이 타오르는걸 보면서 정론직필님께 배우게 된 우리의 역사와 시사를
기초로 꼽싸리를 끼게 되었지만
그래도 왠지 저에게는 어릴때 들었던 별명들이 들려오는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합니다.
한마디 하고 싶다가도
"빙신 달밤에 체조"하냐고 할까봐 상당히 조심 스러운데
오늘같은 이런 글싸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집니다.
@내사는동안 어디를 가시던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삶에 뭔 미련이 있고 한이 있겠냐마는 인간의 탈을 쓴 이상 고해를 벗어날수야 없죠.
저도 그렇고요. 어릴적이나 나이를 먹어서 내 얼굴이 낯설어지는 나이가 됬어도
집착은 그림자마냥 떨어질줄 모르네요.
저는 모든것은 순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냅둡니다.
고칠려고도 하지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둡니다.
저야뭐 인생이란 어찌보면 한낮의 꿈에 불과한것을
괜히 지는 해가 아쉬워 투정 부려보는것이죠
그냥 흥에 취해서 글 한벌 갈기고 잊어버리고
그러면서 사는거죠.
여기 가깝게 지내오던 한국동포분이 있는데 얼마전에 장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생기자 이분이 제 장모님이 참 훌륭하셨는데 돌아가셨다면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면서
"나 같으면 당신같은 불구자를 사위로 안맞았을텐데 당신 장모님은 훌륭해.
나도 딸이 있지만 절대 당신같은 불구자한테는 안줘"
위로야 욕이야?
느닺없이 변하는 그 이웃동포의 얼굴을 보면서
두렵더군요.
가슴이 뛰고 억울하고 말이 안통하는 그 옛날의 기억들이 또 파도처럼
밀려 오더군요.
옳은 이야기이지만 이게 왜 이런 분위기에서 튀어 나오는건지...
좋은 의견조차 내기가 무서운 우리 동포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뭔가에 붙들려 늘 맴도는 내 모습이 참 바보같
@내사는동안 습니다.
저는 지금 꼬마야님이나 키호테님 어느누구 편에 서는게 아니라 일단 서로의
글에 서로 귀기울여보셨으면 해서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키호테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댓글들을 읽다보면 너무 시원해서 꼭 다 읽고 넘어 갑니다.
꼬마야님의 그 중립적인 비평글에도 흥미를 가지고 읽습니다.
마치 회색분자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두분의 이야기에는 사실 모두가 제가 보기에는 절박함이 있는것 같애요.
키호테님이 이런 싱민지 국민들의 습성을 못참아 하시는게 이해가 되다가도
꼬마야님의 현실적인 이야기도 이해가 되니
여기도 낄수 없고 저기도 낄수 없고
잘못하면 빙신이 달밤에 체조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두려웠는데
오늘
@내사는동안 맘이 아프네요.
뭔말한다고 한들 상처가 치유되겠습니까마는..
원래 쓰레기는 자신이 쓰레기인줄 모릅니다.
쓰레기눈에는 쓰레기만 보이는거죠.
내사는동안에 님은 그렇지 않다는것은 오래봐온 제가 알죠.
저는 본능대로 사는 야만스러운 넘들을 혐오합니다.
자기가 왜 그러지도 몰라요. 왜 그런지 생각도 안하죠.
가장 큰 복수는 그렇게 살다가 가도록 그냥 냅두는거죠.
죽어보면 알겁니다. 그냥 냅두세요. 제가 보장합니다.
@내사는동안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낑겨 들었습니다. 늙어서 머리 하얗게 되고나니
세상사 모든게 다 얽혀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를 정도로 제 이야기가 얽혀 있더군요.
용기를 내서 꼽싸리를 끼어 보았습니다.
@내사는동안 님의 글을 읽노라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 아픈 기억을 밝은 태양 아래 꺼내어 말림은 이미 차별을 잊었음이니 님은 이미 밝음을 잉태하였기 때문이죠.
모든것이 .나.와 다른것인데 그 다름 때문에 아파하는분들이 너무 많지요.
사실 병이 깊은 사람은 자신이 병 깊은줄 모르고 남이 병 든 줄 알지요.
어려서부터 깊은 압제에 시달리거나 정신이 나약하여 두려움에 시달린 사람은 성인이 되어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발현하여 하루종일 쉬지 못하고 표출을해야만 삶을 유지할수 있을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밝아진 내사는동안님..
이후로는 쓰라리고 아픈 기억이 깊은 아뢰야에도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육체가 중하냐 마음이 중하냐... 둘다 중하죠... 하지만 육체가 탈이 났다면 우선 고치고 볼일이고 선후의 순서가 문제이지 맞고 틀리다는 차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마음이 담기고 건강한 마음이 건전한 몸을 만듭니다. 우선 아픈 곳부터 먼저 고치자는 말씀이니 그리 생각하시면 두 생각이 다 소중하리라 봅니다. 뜯어고치는 혁명은 행동으로 참여로 밖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앎으로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소위 도딲는 조용한 내적 자기계발도 자기혁명입니다. 알게되면 결국 표현하게 돼 있습니다. 현시대의 도는 앎, 각성이라 생각합니다.
자칭 어르신들의 댓글들은 곱으로 곱씹어봐도
도대체 깊이를 알 길 없어 . . .
안주삼아 하릴없이 탁주만 들이킵니다 헤헤^^
백돼지들이 즐겨 써먹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다분히
보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 결정
되어지는 것이지 무슨, 뭐가
이미 결정 되어졌다는 것인지???
엔트로피(혼돈의 지수)의 증가 즉,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타난다
고 합니다.
근거를 부탁드립니다.
@꼬마야 의식을 바라보면 바라 볼수록 낯선 나를 발견할 뿐이죠.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판단체계 위에서, 여러 기제 (mechanism)와 자동화를 거치고 왜곡과 우연의 결합을
거친 생각이 과연 나일까하는 회의가 듭니다.
@처음처럼 스키마 이론이 아님?
그런데 반대로 이야길
하심까?
@처음처럼 모르면 그냥 지나가세요
@꼬마야 네!
암 말이 죽어서....
키호테 아찌...
참...대단하셔라~~
눈팅족에서 나오게 만드시고...
갑수씨 왈엔... 멍멍멍 하시겠지만.
(진실의 길)에서 그분 글 몇 쪽을 읽어봤습니다...
다 보기엔 체질 상 아닌 듯 같고요.
여튼... 키효테 아찌랑은 매치가 안되는군요.
까다보면,,,
아마도... 뭔가는 나오겠지요. 그죠?
키호테님이야 예전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러려니 넘어가는거지만 강어님은 뭔가요?
까실것있으면 까세요. 참전하시겠다면 전 환영입니다
@꼬마야
꼬마야님...글엔 공감합니다만,,,
뭔 참전?
키호테 아찌랑,,,
뭔~ 좋은 기억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그 아찌는...
누구만 못 잡아먹어서,,,눈 부릅뜨고 찾겠다고 설치는 분.
(키호테 아찌 글은 쓰고 지우는 게 취향인지,,,핑계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서도...)
키호테 아찌는 제 말이 무슨 뜻인지,,,알겠죠.
@키호테 잘린 적 없구요...
몇 번씩 계급 올리기 싫어서,,,탈퇴 가입 반복했습니다.(병장까지만)
마지막은 아찌랑 실랑이 하기 싫어서 눈팅만 하겠다고 탈했구요.
자신 글에 뭐라했는지 좀 보시구,,,,아~ 또 지웠나 에효...
없는 말도 맹글어서 하시구...
말하는 행동은 줏대있어 보이는 데,,,겁은 많은 가 봅니다.(쓰고 지우고)
아...
까보니 뭐 좀 나왔나요?
@강어 죄송합니다. 저에게 하는 말인줄알았습니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꼬마야 아녀요..^^
오해의 소지는 저에게 있었네요...
키요테님 댓글 밑에 댓글을 달아야 하는데,,,또 지울까봐서...
죄송합니다.
한편의 논문이네요
이런글들 어디서 읽을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내시글이나 성기잘린 내용보다 이런글과 댓글들은 한단계 이끌어주는 느낌이 있어 넘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