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자 탈라쉬는 고개를 바닥에 대고 빙빙 몸을 돌리는 남자의 동영상을 처음 본 순간, 스트리트 댄스 스타일과 비슷한 브레이킹에 일생을 바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그 꿈을 이루려면 자신의 목숨, 가족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꿈이었다. 그 일은 조국을 달아나 신원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성 브레이커인 마니자가 9일(현지시간) 파리올림픽 브레이킹에 출전해 세계 무대에 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 '슛 복싱'이란 일본 무술에 이끌렸다. 레슬링과 킥복싱을 합친 것인데 수도 카불의 길거리에서 수레를 끌어 잡화를 파는 아빠 일을 돕기 위해 호신술로 이 무술을 익혔다.
그러나 몇 경기 만에 어깨가 부러져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때 나이 열일곱, 문제의 동영상을 보게 됐고, 곧 이어 카불에서 활동하는 브레이킹 모임 '슈페리어스 크루'를 알게 됐다. 사랑에 빠졌다. "실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녀는 브레이킹이 2024년 파리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데뷔할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 꼭 가야겠다는 꿈이 생겨났다.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카불 서쪽 훈련클럽을 찾았는데 그곳은 그 나라 힙합과 브레이킹의 개척지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상상했던 대로는 아니었다. 남성들 뿐이었다. 코치 자와드 사베리는 대뜸 마니자의 몸매부터 재빨리 훑어 봤다. "그녀는 너무 작더군요. 난 금방 뛰쳐나가는 다른 소녀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의심스러웠다." 몸매는 그들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별것 아닌 일이었다.
“모든 사람이 날 쟀다. 친척들이 내 등 뒤에서 수군대고 우리 엄마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곧 집안 밖으로 번져 소셜미디어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12월 클럽 근처에서 폭발한 자동차 폭탄 테러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그녀는 "정말 날 무섭게 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마니자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자와드에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우리는 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그녀는 돌아왔다. 난 그녀가 2024 파리를 가는 꿈을 갖고 있으며,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부친이 반군에 납치돼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마니자가 집의 유일한 수입원이 됐다. 그 일부를 떼내 훈련비로 내야 할 판이었다.
자동차 폭탄테러 몇달 뒤에 클럽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 위협이 내부로부터 나왔다. "보안군 병력이 우리 클럽을 습격, 한 남성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에 두건을 씌었다." 그들이 말하길 그 남성은 당분간 우리 클럽을 스토킹해 공격 계획을 짜는 자살폭탄 테러범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 클럽을 날려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번은 우리가 운이 좋았다며 우리 삶을 사랑한다면 클럽 문을 닫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마니자는 브레이킹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위험을 피하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성씨를 파르시어로 '애쓰다' '열심'을 뜻하는 '탈라쉬'로 바꿨다. 자신의 가족을 돌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던 차에 그 해 8월, 탈레반이 돌아왔다.
느닷없이 마니자의 세상,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소녀들의 세상이 쫄아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실과 체육관 출입이 금지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가지로 가리란 말이 들려왔다. 음과 춤 역시 사실상 금지됐다. 브레이킹 역시 중단됐다.
새로운 제약 때문에 마니자와 친구들은 그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었다면 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날 처형하거나 돌을 던져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마니자와 자와드를 비롯한 슈페리어스 크루 몇몇 멤버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탈출했다. 일자리를 찾아 일하며 번 돈을 조국에 송금했다. 현지 브레이커들과 접촉해 클럽과 길거리, 쇼핑몰까지 어느 곳에서든 연습했다. 쉽지 않았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많은 질문들 때문에 힘겨워했다. 아프간 여성이 뭘 할 수 있지, 왜 난 그들에게 뭔가일 수 없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탈레반이 귀환한 이후 올림픽에서 조국을 대표해 출전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6명으로 구성된 젠더 균형 팀이 망명한 아프간올림픽위원회가 제작하고 탈레반과는 연결 고리가 없는 옛 깃발을 들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니자는 파리로 가는 다른 여정을 찾아냈다. 그녀는 출신 국가가 내전이나 전쟁을 겪고 있어 돌아가면 너무 위험한 선수들은 난민올림픽팀에 선수로 등록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지난 5월 그녀는 난민팀 3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고, IOC는 그녀에게 전담 코치까지 붙여줬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난 기뻤고, 완전히 뒤집어졌다. 아프간을 떠나 가족들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슬펐다. 난 그들의 안전보다 내 목표를 우선 택했다."
그러나 9일 올림픽 데뷔를 준비할수록 마니자는 조금 숨쉬기가 편해질 수 있다. 그녀가 파리를 활보해 전 세계 스크린에 그 모습이 나가면 그녀 가족은 안전해질 것이다. 해서 선발되자마자 그들은 겨우겨우 아프간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헤어진 지 2년 만에 마침내 가족은 스페인에서 다시 뭉쳤다.
마니자도 파리에서 메달을 따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도 "내가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시상대 위에 서는 것은 우선하는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난 우리 친구들과 그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출전할 것이다. 아프간 소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압력, 그녀를 제약하거나 수감하더라도 분명히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싸워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