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92) - 제7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11
- 마을과 공원에는 황금의 꽃이 피네
4월 28일(일), 오전 8시에 숙소에서 제공한 마이크로버스 편으로 이고이노무라를 출발하여 조선통신사의 자료가 많이 보존된 우시마도(牛窓)로 향하였다. 8시 40분, 우시마도의 가이유(海遊)문화관에 도착하니 문화관 관계자들이 일행을 반가이 맞는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문화관 뒤편에 있는 혼렌지(本蓮寺)를 찾았다. 혼렌지는 일본 법화종의 대표적인 고찰, 중후한 인상의 스님이 일행을 정중히 맞아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은 내실로 안내한다. 이와 함께 이곳에서 소장한 조선통신사 한시 서축을 한글로 번역하여 나눠 주는 등 유네스코기억유산 등재 후 달라진 자부심과 적극성을 보인다. 내실에는 조선통신사들이 남긴 여러 시문(복제품)을 품위 있게 진열해 놓았다. 하나같이 명필들이다. 이곳에서 유숙한 1643년의 통신사 신유(종사관)는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적었다. ‘우시마도 해변에 있는 절은 예스럽고 스님도 드물다. 무성한 대와 등나무가 햇빛을 가려 정막 그 자체로다. 묵는 나그네는 만감이 교차하여 밤을 지새우고 모기 우는 소리 드세어 그윽한 안방이 시끄럽다.’

혼렌지 입구에 함께 선 일행
절에서 나와 가이유문화관에 들러 우시마도조(町)가 제작한 영상물 ‘역사기행 우시마도와 조선통신사’를 시청하였다. 이를 통하여 우시마도에 기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의 행적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었다. 영상의 내레이션 요약, ‘통신사는 진심을 전하는 사절로 그들을 통하여 우시마도 주민들은 이조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조선에서 온 사절과 현지수행원 천여 명에 구경꾼이 9백 명으로 2천여 명이 작은 포구에 몰려 여러 날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조류와 바람을 타고 온 사절들은 평소에 접할 기회가 없는 이방인들이었고 거적 차림의 주민들은 수행원의 무명옷을 신가하게 여겼다. 해유록을 쓴 신유한의 표현, 마을에는 황금의 꽃이 피네.’
영상을 살핀 후 자료실을 찬찬이 둘러보며 통신사들이 거쳐 간 행로, 역대 통신사의 인적사항, 행렬의 모습, 통신사를 바라보는 시각 등을 통하여 통신사들이 일본에 끼친 영향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큰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어진 현장탐사에서 당시의 지역 통치자인 오카야마 번주의 별장이자 혼랜지 이후에 통신사들의 거처로 사용된 건물, 물이 귀한 포구에 통신사들을 위해 일부러 판 우물, 축제(해마다 10월 넷째 주말에 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잔치를 벌인다.) 때 등장하는 용머리 모양의 선박 등을 돌아보았다. 우시마도는 일본의 에게해로 알려진 아름다운 휴양지, 포구를 한 바퀴 돌아 가이유문화관에 돌아오니 오전 11시가 지났다. 오사카까지 타고 갈 버스가 오려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할 상황, 각기 적당한 장소를 골라 준비해온 도시락을 들고 12시 조금 전에 버스에 올랐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오사카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0분, 마천루 숲을 이룬 도심을 지나 오사카성에서 내려 한 시간여 성을 일주하는 걷기에 나섰다. 성안에 들어서니 연휴를 맞아 인파들이 크게 붐빈다. 성의 규모도 웅장하거니와 성을 둘러싼 공원은 매화 숲, 복숭아 숲 등 다양한 수목이 울창하고 철쭉과 진달래 등 화사한 꽃무리의 아름다운 휴식공간이다. 오는 6월에 G20 정상모임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오사카성을 일주하며 걷는 모습
성을 한 바퀴 돈 후 시내 중심부의 숙소에 이르니 오후 4시가 지났다. 오사카에서 걷기를 마치는 이, 새로 합류하는 이들과 아쉬움과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저녁 6시부터는 조별로 팀을 짜서 저녁식사를 하는 등 하루 일과가 빠듯하다. 우리 조는 6명, 숙소에서 10여분 떨어진 깔끔한 식당에서 생맥주와 다이메세(도미 밥) 등으로 저녁을 들고 숙소에 돌아오니 8시가 가깝다.
23일부터 28일까지 6일간 대마도, 이키, 후코오카,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카야마지역을 거치는 선박 및 버스 이동을 마치고 내일부터 오사카 – 도쿄 간 600여km의 본격적인 걷기에 들어간다. 그간 함께 한 친구들이여, 평안히 가시라. 새로 합류한 벗들이여, 힘차게 걸읍시다.
* 우시마도의 가이유(海遊)문화관은 1719년에 조선통신사 제술관(제술관은 주로 사행 일행의 글에 관한 직무를 맡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 사행들을 학사대인이라 부르면서 시문과 학문토론을 청하였다.)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의 기행문 해유록(海遊錄)에서 연유한 것이다. 문화관은 130년 전(1887년)에 경찰서로 지은 건물인데 경찰서가 옮겨가고 그 자리에 조선통신사자료실이 들어서면서 가이유문화관이 되었다. 조선통신사는 11회의 에도왕복 중 우시마도에 15차례 기항하고 9차례 숙박(나머지는 선상에서 숙박)하였는데 자료실에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문화유산과 행렬을 디오라마 형식(작은 공간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 놓은 입체 전시물)으로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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