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자의 골목
양우정
옹색한 변론으로 문고리를 열며
폭식의 아침을 허겁지겁 먹어 치울
저녁이 없는 당신의 이야기는
지루해
가슴 한쪽 달라붙은
낙담의 커리어를 벗는 변용과 반전을 생각할 때
바코드가 새겨진
초라한 모자이크의 하루를 지우고
부서지도록 웃는 일이 있을
따뜻한 분노의 모험을 꿈꿔
산초가 유레카를 외쳤던 그 시절
추억이 추억을 건너던 시간의 바깥으로
비몽사몽 찾아가는 암호 길
민낯의
풍차를 거인이라 부르고
여관 주인을 성주라 믿던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다면
유쾌한 길동무의 역활쯤
모르는 척 꼬드김에 넘어가
콘크리트 바닥에 엎질러진 표정을 입으면 그만
거인이 풍차인 호프집을 지나
성주가 여관 주인인 모텔 앞
산초를 업은 돈키호테가 달리는
입간판이 있는 혜자의 골목에서
무지해진 오늘을 잃는다
가끔 나누는 인사처럼
직역되지 않는 꿈을 꾸다
눈꺼풀이 내려앉는 경계선
여전히 아무 날도 아닌
유리집
아슬아슬하게 구르는 역동의 리듬들이
질문을 잔뜩 싣고 비탈길을 올라요
등고선이 높아 낮춰도 낮춘 마찰음이
몸통 운명선을 자주 바꾸지만
허공에 맞춘 중심축의 낙차는 언제나
수치를 넘어서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데요
오늘은
앞집 옆집이
다른 장르가 될지 모른다며
좁은 골목이 쭉쭉 펴질 거라더군요
반듯한 서정이라지만
숨겼던 부등호의 갈림길이 등장할지도 몰라요
절대 음감을 지닌
납작해질 기미가 없는 생의 각도는
늘 수화로 말해요
서툴기만 한 실감나는 두근거림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래요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도 주름져 느슨해진 기타줄을 조이며
화목한 밥을 먹어요
배신은 굴욕이 아니고
고장 난 건 우리가 아니니까요
하루가 빠지고 또 다른 하루가 더해지는
허들링의 구름밭을 걷다 들어서는 녹슨 대문
별이 환히 보이고
새와 마주한 성에가 자라는 유리집이지만
발소리가 낮아져서인지
잠이 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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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의 골목 / 양우정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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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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