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강. 땅에서 올라온 짐승 (계 13:11-18)
계 13:11-18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지난 시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를 두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적그리스도 국가들이고,
종교적으로는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짐승을 단수로 말하면 적그리스도이고,
복수로 말하면 그를 따르는 세력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세력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하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누구인가요?
요한계시록 19장을 봅시다.
계 19:19-21절.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제일 먼저 두 짐승을 잡아서 유황불 못에 집어넣게 됩니다.
20절을 보면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가 잡힙니다.
앞에서 잡힌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고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활동하는 무대가 어디인가요?
세상인가요?
교회인가요?
교회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미혹하는 대상이 누구인가요?
세상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육적 교인들입니까?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육적 교인들입니다.
오늘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미혹을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교회 이야기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모두가 교회 안에서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에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은 어둠에 속하였고 죽은 자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감지하지 못해요.
죽은 자는 죽음을 감지할 수가 없어요.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적그리스도를 몰라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만이 알아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교회 안에 창궐하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무슨 짓을 하고 무엇으로 어떻게 미혹하고 어떻게 교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지를 다 알고 있어요.
적그리스도 세력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인들만 해쳐요.
예수님 초림 당시에 정치와 종교의 힘으로 예수님을 죽였어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정치와 종교가 하나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 성도에게 죽음은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정죄당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유대 사회에서 예수를 믿으면 출회와 출교를 당하는 것과 같아요.
지금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물리적으로는 죽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자기들의 교회나 조직에서 이단이라 정죄를 하고 제명해요.
이게 성도에게는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유대인들 사회로부터 출회를 당하고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하였어요.
유대인으로서 유대 사회로부터 출회를 당하고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하는 것은 죽음과 같아요.
이게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무리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로마의 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누구를 핍박하던가요?
자기를 하늘에서 쫓아낸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지요.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가 교회예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에요.
우리 생각에는 예수를 믿으면 죽음도 피해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역설적입니다.
죽음이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이건 죽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죽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였듯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성도들도 죽임을 당해요.
요한계시록은 이걸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예수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므로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땅에 버려진 사도 요한에게 죽음 이후에 가야 할 천국으로 올라오게 하여서 장차 될 일을 보여주시고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알려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국을 보고 와서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축복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죽는 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사도 요한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경험케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을 보았듯이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요한이 보고서 기록한 요한계시록이라는 편지를 통해 천국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를 대신하여서 천국을 보고 온 것입니다.
사도 요한 속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사도 요한과 한 성령을 마신 성도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은 공포를 주는 책이 아니고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신약의 전 시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한 성도들도 있고, 죽임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죄목으로 짐승으로부터 죽임당한 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요.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자입니다.
그런데 그게 실패하고 진 것이 아니라 성공이고 이긴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무얼 말합니까?
초지일관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죽임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벨이 왜 가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였나요?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악한 자란 마귀에요.
마귀가 가인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자를 죽이게 한 것입니다.
이 구도가 세상 끝까지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였나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두 증인을 죽인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바로 계시록 13장의 짐승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은 살려두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워서 이기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나는 누구 편인가?
자기 소속을 아셔야 해요.
짐승 편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편인가?
말하기 민망스러운데 짐승에게 죽임당하지 않는 신앙은 가짜에요.
짐승에게 죽임당하지 않으면 짐승과 같은 편이에요.
진짜 신앙은 짐승에게 속한 자들로부터 이단 소리를 듣고 죽임당하여야 해요.
예수의 증거로 이단 소리를 듣고 출교를 당하고 제명을 당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자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으니까 돌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선택을 입은 자들만이 믿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입은 자들의 특징이 이 세상에서 짐승을 고발하기 위하여 죽임당하는 미끼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디로 파송하던가요?
양을 이리 가운데로 파송하지요.
가서 격투기 해서 싸워서 이기라고 보낸 건가요?
아니지요.
가서 그들에게 죽으라는 것입니다.
죽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이고 마귀에게 속한 짐승이라는 것을 폭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자연적으로 땅에 속한 자들을 고발하게 되어 있어요.
복음의 특징이 세상의 악함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소리를 하여야 하니까 자연히 땅에 말을 하는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것이 고발당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짐승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더 살펴보기로 합시다.
지난 시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두 가지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수(單數)적인 의미 즉 개인적으로 보면 적그리스도이고,
복수(複數)적인 의미 즉 세력으로 보면 적그리스도 세력 또는 그 국가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둘은 동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적그리스도 짓을 하는 사람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로 나타납니다.
교회사를 보면 그대로 나타났어요.
수많은 이단이 다 이 범주에 속한 자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하기를 한국에 자칭 예수나 하나님이나 보혜사 라고 하는 자들이 수십 명이나 있다고 합니다.
수십 명이 있다는 것은 곧 이러한 자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이 시대에만 있는 일이 아니에요.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래 늘 있어 왔던 일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예수에게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세력으로만 국한해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 안에서 이단들은 늘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는 적그리스도 세력은 국가로 나타난다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언대로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실 때까지 제국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그 성격은 동일하고 하는 일도 반복하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이 다니엘이 예언한 것처럼 일곱 머리 열 뿔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하여 잠간 설명하고 갑시다.
열이란? 숫자적 열(십)을 말하는데 이는 충만을 뜻하므로 열 명이라는 숫자적인 의미보다 많다는 뜻의 열국(列國)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열 뿔들이 모두가 용이 쓰고 있는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일어날 열국의 왕들이 다 적그리스도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12장에서 보았던 용의 모습과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이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12장 용의 모습은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는데 면류관을 일곱 머리가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13장의 짐승의 모습은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는데 면류관을 열 뿔들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12장의 용과 13장의 짐승을 비교해 보세요.
계 12:3절.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 13:1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 들이 있더라”
12장의 용은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13장의 짐승은 열 뿔이 열 면류관을 쓰고 있어요.
왜 용은 일곱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있고,
짐승은 열 뿔에 면류관을 쓰고 있을까요?
이는 주군(主君)과 신하(臣下)의 차이와 같아요.
13장은 12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12장에 나오는 용은 사단이고,
13장에 나오는 짐승은 사단의 수하에요.
용이 주군이고,
짐승은 신하에요.
그래서 주군인 용은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있고,
신하들은 열 뿔처럼 많이 일어나는 세상 열국의 왕들을 상징하므로 그 뿔들이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는 일곱 나라를 말합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의 일곱 머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나라들을 대표하고 있어요.
구약 이스라엘이 생기고 난 후 이스라엘을 괴롭힌 대표적인 제국들을 보면 역사 속에 일곱 나라로 나타났습니다.
애굽, 블레셋,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은 일곱 나라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 성격이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시대 때 오셨지요.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의 종말이에요.
초림은 재림의 그림자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을 역사의 종말을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이 세상을 멸하실 때 이 세상의 모습이 로마 시대와 같아질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로마가 온 나라들을 통치하고 있었어요.
로마는 일곱 머리에 속한 것이고,
로마로부터 통치당하고 있는 열국들은 열 뿔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는 모든 국가 위에 있었어요.
이건 마치 머리와 같아요.
로마는 적그리스도 국가이므로 로마 황제가 앉은 보좌는 사단의 위와 같은 것입니다.
12장의 용을 국가로 말하면 로마이고, 개인으로 말하면 황제가 되는 것입니다.
용이 일곱 머리에 쓴 면류관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사단의 제국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사단의 제국에 지배받고 있는 나라들을 열 뿔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수님 당시 모습으로 봅시다.
예수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그 때에 온 세상을 지배하던 나라가 로마였어요.
로마가 용처럼 온 세상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로마는 각 국가별로 분봉 왕들을 세워서 각 나라를 섭정 통치를 하였어요.
분봉 왕들은 독자적으로 통치한 것이 아니고 로마 황제의 권세를 위임받아서 통치했어요.
이러면 로마가 머리가 되고 분봉 왕들은 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열 뿔들이 면류관을 쓴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분봉 왕들은 로마의 섭정을 받았기 때문에 로마와 같은 정치를 했어요.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화하였듯이 각 지역의 분봉왕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로마 황제나 분봉 왕들이 적그리스도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단수적인 의미로는 로마 황제가 적그리스도이고,
복수적인 의미로는 분봉 왕들이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로마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해되시지요.
머리는 주권자를 상징하고,
뿔은 주권자로부터 권세를 받은 대리자를 상징합니다.
12장의 용과 13장의 짐승은 주인과 종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용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용과 짐승의 차이가 뭔가요?
용은 지시하는 자이고,
짐승은 그 지시를 따르는 자입니다.
짐승은 용의 대리자인 겁니다.
왜 용이 짐승을 통해서 일하는가요?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은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자이고,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자에요.
용의 소속은 하늘이고,
짐승의 소속은 바다에요.
용은 원래 하늘에 있었는데 땅으로 쫓겨났어요.
이건 마치 뱀이 에덴동산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과 같아요.
뱀은 원래 에덴동산에 있었어요.
욥기에 보면 사단이 하나님 회의에 참석하지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여 그 죄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용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용을 일컬어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영(靈)을 상징하고,
땅은 육(肉)을 상징해요.
하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하고,
땅은 보이는 세계를 말해요.
사단은 영적 존재에요.
영적 존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피조물에게는 포착되지 않아요.
하나님이 그러해요.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피조물의 모습인 육신으로 보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일컬어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용인 옛 뱀 마귀 사단도 그러해요.
사단은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에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서 일을 하셨듯이,
사단도 세상 임금들을 가지고 적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이듯이,
마귀도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 삼위일체로 일을 해요.
세상 임금은 용을 대리하는 자들이에요.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나라에요.
그러므로 세상 나라 임금들은 사단의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핍박한 것도 다 이러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종을 상징하는 세상 임금을 용으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眼)이라고 하고,
임금이 앉는 보좌를 용상(龍床)이라고 하고,
임금의 눈물을 용루(龍淚)라고 하고,
임금의 씨를 용정(龍精)이라고 하고,
임금이 입는 옷을 용포(龍袍)라고 하고,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를 용호군(龍護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용자로 쓰는 것은 세상 임금들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용인 옛 뱀 마귀 사단을 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극을 보면 임금이 사는 궁궐을 보면 온통 용 그림으로 그려져 있지요.
이게 그대로 세상 종교에도 드러나 있어요.
세상 종교를 대표하는 불교에서 용을 영물로 묘사하여서 전각마다 용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은 곧 세상 종교는 모두가 사단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께서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자신이 태국의 사원에 가서 보니까 용을 일곱 머리 열 뿔로 그려놓은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건 그만큼 용이 인간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세상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용을 신성시하여서 경배하고 섬기도록 해놓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용 꿈을 꾸면 길몽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영의 세계이고, 땅은 육의 세계에요.
사단을 상징하는 용은 영물이고,
바다에서 나타나는 짐승은 육체에요.
바다는 이 세상을 상징하니까
바다에서 나타난 짐승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세상 권세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적그리스도로만 국한해서 보지 말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적그리스도 세력들로 포괄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 자들은 모두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에요.
애굽의 바로 왕을 비롯하여 로마 황제나 로마 교황이나 히틀러나 공산주의를 일으켜서 기독교를 박해한 모든 권력자들이 다 적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이에요.
이 모두가 용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짐승들에게 권세를 주어서 용의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일이 무슨 일인고 하니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열 뿔들이 용으로부터 성도들을 죽이라는 권세를 받은 것을 상징하는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는 로마 황제가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고 신의 자리에 앉아서 경배를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을 했어요.
이게 종교적으로는 로마 카토릭의 교황이 로마의 황제와 같이 신의 자리에 앉아서 교인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카토릭에서는 교황을 신을 대리하는 자라고 해요.
카토릭 신자들은 그렇게 믿고 따라요.
로마 황제는 기독교를 정치 수단으로 이용했어요.
로마 황제는 철저히 교회를 자기 시녀(侍女)로 이용했어요.
교황들이 황제의 칙령으로 교회를 다스렸어요.
어느 시대이고 세상의 권력자들은 종교를 이용하였어요.
종교를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을 대우해 주니까 땅에 속한 자들은 권력자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목사들이 국가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서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들이 바로 구약의 궁중선지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정권에 빌붙어서 세상 영광을 누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토릭은 땅의 종교에요.
그래서 로마 카토릭은 세상의 모든 종교를 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카토릭은 인본주의를 추구해요.
그래서 근본 교리를 인간 존엄 사상에 두고 있는 겁니다.
카토릭과 세상 종교가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근본 뿌리가 인본주의로 같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나타난 적그리스도는 세상 권력자인 로마 황제였지만,
종교적으로 나타난 적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권력자인 로마 교황이었어요.
이것이 종말에는 적그리스도가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묶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의 열 왕들을 다스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로마 국교 시대를 통해서 예표적으로 보여주었어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난 후 교황이 왕들을 임명하였어요.
이는 곧 교황이 세상의 왕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종말에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조짐이 지금 보이고 있잖아요.
교황이 세상 왕들보다 더 권세를 가지고 있잖아요.
세상 왕들이 교황을 알현하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자기 나라에 방문해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교황이 방문하면 온 나라가 대대적으로 환영을 하고 그 나라는 신으로부터 은총을 입고 축복을 받았다고 기뻐하잖아요.
교황이 모든 나라의 국가 원수보다 더 높아요.
더 권위가 있어요.
앞으로 종교 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교황은 세상의 머리인 왕중의 왕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훼방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노골적으로 그 본질을 드러낼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란? 어원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자만 그리스도 흉내를 내는 자로 나타나겠지요.
그래야 적그리스도가 되니까요?
그럼 적그리스도가 절간의 중들에게서 나올까요?
아니면 교회에서 나올까요?
교회에서 나오겠지요.
그것도 짝퉁교회에서 나와요.
짝퉁교회가 바로 로마 카토릭이에요.
사단은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로 둔갑을 시켜놓았어요.
이게 엄청 중요해요.
대적자와 대리하는 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라요.
대적자는 원수이지만,
대리하는 자는 신이에요.
이 둘을 같이 행하는 자가 교황이에요.
하늘에 속한 성도들 입장에서는 교황은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에요.
그러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교황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에요.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성도들에게는 교황은 이단의 괴수이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왕인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해 주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카토릭은 예수를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라고 합니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메시야로 보지 않아요.
그래서 카토릭은 예수를 평화 마케팅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카토릭은 신앙을 죄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세상을 만들까로 접근해요.
카토릭에서는 예수는 믿을 대상이 아니고 본받을 대상이에요.
본받을 대상으로 두어야지 착하게 산 사람들도 성인으로 추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카토릭에서는 그들의 교리에 따라 공헌한 사람들을 성녀니 성자니 하면서 성인으로 추대해서 신의 자리에 앉히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걸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악이라고 고발을 합니다.
인간의 의로 하늘에 오르겠다는 사단의 술책이라고 폭로합니다.
그러다가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죽이지요.
성도들과 싸우지요.
짐승이 왜 성도들을 죽이는가요?
성도들은 인간의 의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무엇과 싸우는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주어진 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만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로마 카토릭에서는 인간의 선행을 의로 가르쳐요.
카토릭은 선악과 적인 선악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의 행동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놓았어요.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선이라 하고,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을 악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는 카토릭은 인간 존엄 사상을 근본 교리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해요.
이게 성경적으로 말하면 율법에서 난 의에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예수님이 율법으로 난 의를 부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난 의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를 이단으로 몰아서 죽인 것입니다.
바울도 다메섹 이전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율법 외에 다른 의를 증거하기 시작했어요.
율법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난 의로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증거하였어요.
그러다가 핍박을 받았어요.
교회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사함이 주어지고 이것을 믿는 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겨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신앙으로 가지고 있어요.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인간의 선행을 의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나 땅에 가치로 세워진 카토릭은 인간의 선행을 의로 인정해요.
그래서 인간을 이롭게 살다가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추대하고 그들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숭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카토릭에서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도 그들은 신의 반열에 올라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도를 깨우치면 부처가 된다는 것과 같아요.
부처는 도를 깨달음으로 신이 된 사람들이에요.
카토릭에서는 선행을 한 사람은 성인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도를 깨우친 사람을 신이라 해요.
결국 둘 다 인간을 신이 되는 범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신론이란? 만물 가운데 신성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성을 잘 회복하면 누구나가 신이 된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신에게 빌지 말고 선행으로 또는 도를 깨우쳐서 자기가 신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나 카토릭의 가르침은 근본이 같아요.
카토릭에서 성인이 되라는 것이나 불교에서 부처가 되라는 것이나 동일해요.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둘 다 땅에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어느 것이 좋고 진리로 들릴까요?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기독교가 좋을까요?
아니면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세상 종교가 좋을까요?
당연히 인간의 가치를 챙겨주고 인간의 선행을 인정하는 카토릭의 교리가 좋고 진리로 들려요.
상대적으로 예수의 피만 고집하는 교회와 성도는 자기들만 옳다고 하고 남을 배타하는 독선적인 종교라고 하면서 욕을 먹는 것입니다.
장담컨대 앞으로 예수의 피만 고집하면 기독교 안에서도 퇴출당합니다.
앞으로 교회의 예배는 문화 행사가 되고 교회는 놀이터가 될 것입니다.
이는 신앙이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문화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 안에 육에 속한 자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교회에 즐기러 와요.
목사들의 설교를 강연으로 듣고자 해요.
육에 속한 목사들을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펴 놓고서는 인간의 가치를 챙겨주는 세상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음녀로 말하면서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해요.
교회가 귀신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땅에 거하는 자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듣고자 할까요?
아니에요.
싫어해요.
부담스러운 말은 하지 말고 듣기 좋고 재미있는 말만 해 달라고 해요.
교회 안에 육에 속한 자들은 인간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해요.
그래서 육적 교인들이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믿음을 외치는 목사들은 싫어하고,
인간의 행함도 의롭다고 하는 인본주의 성화를 외치는 목사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다원주의를 외쳐야 깨어 있는 목사로 인정받아요.
인간의 가치를 챙겨주고 고급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자들을 좋아해요.
이들은 결국 종교통합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반기독교 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WCC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시대의 흐름을 잘 보세요.
영적으로 엄청난 종말의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적그리스도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요.
세상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난리와 난리가 나고 민족이 민족이 싸우지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교황이 평화의 사도로 가서 조종을 할 것입니다.
그럼 세상은 그를 그리스도로 따르게 되어 있어요.
세상은 교황이 주는 거짓 평화에 미혹 당하여 교황의 치마폭으로 폭 싸이게 될 것입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만드는 일을 누가 하는가 하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이 해요.
땅에 소속을 둔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거짓 목사들이 합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교회 안에 일어나는 거짓 목사들이에요.
이 놈들이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는 교회에요.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시대 교회 안에 창궐하는 적그리스도 세력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무엇으로 그리스도를 가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지 않지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출처는 땅입니다.
땅이 그들의 근거지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 말로서 땅에 것을 가지고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일으켜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추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거짓 선지자들이 말을 듣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경배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역사 속에서 반복하여서 일어납니다.
기독교를 박해한 세력들이 다 적그리스도 세력들이었어요.
이것이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로 나타났고, 종교적으로는 거짓 교회로 나타난 것입니다.
공산주의에서 태동 된 것이 WCC(세계교회협의회)에요.
공산주의는 정치 집단이고, WCC는 종교집단이에요.
이 둘이 적그리스도 세력이에요.
WCC가 어떤 단체입니까?
반(反) 그리스도 단체에요.
WCC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면 그 단체의 본질을 알 수가 있어요.
1947년에 스탈린이 서방교회 침투전략이라는 것을 세웠어요.
그리고 그 이듬해 1948년 WCC 세계 교회 협의회가 창립되었어요.
이 때 스탈린이 서방 교회로 공작원 다수를 침투시켰어요.
이 사실은 스탈린이 죽고 난 후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WCC는 지금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두주자입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뭔고 하니 세계 종교 통합 운동이에요.
그래서 WCC는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는 일을 하고 있어요.
1971년부터는 힌두교, 회교, 불교까지 합세를 했습니다.
지난 번 부산에서 WCC 총회 할 때 한국의 모든 종파들이 다 참석을 했어요.
스탈린이 서방 종교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침투 전락을 세웠는데 그 사상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 사상을 보면 WCC의 성격을 알게 되어요.
크게 세 가지 행동 강령이 있어요.
첫째,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
둘째, 신자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 의식을 키우도록 하라.
셋째, 모든 순수 종교를 사회 종교로 대체 하라.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전부 교회의 관심을 세상일에 묶어 두려고 하지요.
인본주의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세요.
WCC의 강령 그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
오늘날 교회가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잖아요.
교인들은 신앙을 사회 종교화 되어서 문화생활로 이해하고 있어요.
실제로 교인들은 교회의 모임과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하듯이 동호회 모임처럼 하고 있어요.
아쉬우면 오고 아쉽지 않으면 안 와요.
결국 스탈린의 계획대로 된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 종교로 대체 되고 만 것입니다.
신앙이 문화가 되었어요.
마귀가 멋지게 성공한 셈입니다.
WCC는 로마 카토릭이 주축이 되어서 움직여져요.
로마 카토릭은 다신(多神) 종교를 인정하는 곳이에요.
모든 종교는 같다고 말을 해요.
그들은 구원을 산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합니다.
구원이라는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는 겁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길로 올라가고,
불교는 불교의 길로 올라가고,
힌두교는 힌두교 방식으로 올라가고,
각자의 길로 올라가면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린 다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지고 싸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열린 사고입니까?
멋지잖아요.
이걸 왜 반대합니까?
반대하는 그 놈이 인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된다고 하는 기독교를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하면서 개독교 라고 비아냥거리면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들이 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어야 하느냐?
우리도 좀 통 크게 그들도 인정하자,
그래서 석가탄신일에 교회에서 연등을 걸고 축하해 주고, 성탄절에는 절간에서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벌이는 것입니다.
목사가 절간에 가서 설교하고,
스님이 교회에 와서 설법을 외치고,,,,
참 멋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이게 WCC 사고에요.
이걸 목사들이 대 놓고 교회에서 말하고 있어요.
과연 그러한가요?
여러분들 눈에도 아름답게 보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목사들의 말이 진리로 들립니까?
예수 이외도 불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자를 목사로 인정하는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땅에 거하는 뱀의 후손입니다.
카토릭에서는 WCC를 통해서 종교 통합 운동을 벌려요.
그래서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그와 함께 한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도 서 있고, 불교의 스님도 서 있고, 토속 종교의 무당도 서 있고, 자칭 종교 지도자 라고 하는 자들은 다 교황과 나란히 서 있었어요.
교황이 치마로 폭 감싼 것입니다.
내 품에 둥지를 틀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이걸 혼합이라고 합니다.
WCC는 교회를 와해시키려고 생겨난 단체에요.
참 재미있지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생겨났어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하겠지요.
이들이 바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 밖에 있지 않아요.
교회 안에 있어요.
이 놈들이 뭘 하는고 하면 짐승에게 경배케 하고 짐승표를 받게 해요.
계 19:20절.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짐승이 잡히지요.
그런데 이 놈을 뭐라고 합니까?
거짓 선지자로서 짐승표를 받게 하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자라고 하지요.
짐승을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보아서 교황과 WCC가 그 세력으로 볼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목사들이 지지하고 있어요.
WCC를 교회 안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교인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놈들이 세상 영광으로 둘둘 말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세상적인 스펙이 좋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유학을 갔다 오고, 박사 학위를 받고,
온갖 미사여구를 쓰면서 말을 현란하게 잘해요.
인품도 좋고 죄도 안 짓는 것처럼 가장 거룩한 척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대형 교회들을 꿰차고 있어요.
왜 사단의 종들을 광명의 천사라고 하는가 하면 인간들의 마음을 얻고자 인본주의 사고로 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속에 성령이 없는 자들은 다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세상 학벌이나 지위나 아무 소용없어요.
영적인 일에 소경이면 그냥 훅하고 넘어가요.
하나님께서 눈을 감기게 하면 박사도 넘어가고 교수도 넘어가고 목사도 넘어가요.
거짓 목사들의 출처가 땅이에요.
그래서 인간중심의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도 인간을 위한 예수로 둔갑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해방자 예수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게 민중신학으로 해방신학으로 나타났어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국가 권력이나 부자와 같은 힘을 가진 자들로부터 약자를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국가 권력과 부자를 악의 축으로 규정해서 타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게 이 시대 진보주의 좌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보주의 좌파들이 외치는게 뭡니까?
재벌을 해체하자는 거에요.
이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러므로 인본주의를 외치는 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로운 세력으로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을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가요?
약자 편에 서서 사회적으로 강한 자들을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왕 노릇하면서 말이에요.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게 있어요.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한 죄인이에요.
누가 더 선하고 악하고가 없어요.
부자라서 악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선하지 않아요.
둘 다 죄 아래서 난 악한 자들이에요.
인본주의자들은 부자는 수탈의 세력이라 간주하여 악하다고 하고 가난한 자는 수탈당한 세력이라 하여 선하다고 합니다.
이걸 혁파하자고 나타난 것이 공산주의 사상이에요.
공산주의 사상이 어디에서 나온 줄 아세요.
성경에서 나왔어요.
공산주의 사상의 모티브가 되는 사회주의 이론을 만든 사람이 독일의 신학자 칼 마르크스에요.
이걸 혁명으로 이루어낸 사람이 레닌이구요.
그래서 공산주의를 맑스 레닌주의 라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 모습을 근거로 가진 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누리는 유무상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했어요.
칼 마르크스가 살던 당시의 독일은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자본을 가진 자들이 공장을 지어서 노동자들을 고용하여서 막대한 부를 축척했어요.
가만히 보니까 노동자들은 죽도록 일을 하는데 그 이익은 자본가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배만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동등하게 분배하지 않고 자본가만 독식하느냐 입니다.
이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이러한 제도를 자본주의로 규정을 하고 노동자들이 잘 살자면 자본주의를 혁파해서 자본가들이 소요한 것을 국가가 귀속하여 모든 민중들이 공평하게 나누어서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나왔어요.
공산주의는 자본가들이 순순히 내어놓지 않으니까 강제로 빼앗아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이러한 논리로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자들이 다 이런 아류들이에요.
공산주의에서는 개인의 재산을 허락하지 않아요.
모든 것을 국가가 가지고 개인에게 골고루 분배하여 나누어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에서는 지상낙원을 이루자는 구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부자가 권력으로 나타났는데,
공산주의에서는 국가가 권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이 재산을 가졌지만 공산주의에서는 국가가 재산을 소유하였어요.
그러다보니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자는 국가의 재산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고 옥상옥의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취지는 좋았는데 결과는 자본주의보다 더 악한 것이 되고 말았어요.
지금 북한이 그렇잖아요.
유무상통하자고 외치는 자들이 어떻게 사나요?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도 권력자들은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어요.
공산주의에서 권력자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빼 먹는 수탈 세력이에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타락했어요.
더 악해요.
가진 자들만의 지상낙원이 공산주의에요.
공산주의를 해 보니까 노동자들이 더 수탈당하고 더 살기가 힘이 든 겁니다.
그래서 한 때 유럽의 동구권을 휩쓸었던 사회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다 몰락하고 만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시작한 소련이 무너졌어요.
왜 무너졌나요?
해보니까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념과 사상은 그것을 담아낼 인간이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난 죄인이에요.
죄인의 특징이 뭔가요?
자기를 신으로 삼고 사는 탐욕 자들이에요.
탐심이 가득해요.
짐승이란 말입니다.
짐승은 배고프면 물어요.
이런 자들이 아무리 좋은 사상을 만들어도 배고픔 앞에서는 휴지 조각이에요.
탁상공론에 불과해요.
인류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산주의 이론에 허구성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공산주의를 하고자 2억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서로 평등하게 살자는 구호를 외치는 자들이 자기하고 다르다고 2억 명이나 죽였어요.
이게 무슨 평등이고 자유입니까?
모두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안 그런가요?
똑같아요.
그럼 어쩌자는 건가요?
인간에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그 어떤 제도를 주어도 짐승의 본질은 버려지지 않아요.
공산주의가 틀렸고, 자본주의는 옳다 라고 하지 마세요.
가진 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서로 공평하고 평등하게 살자고 사회주의 이념을 외치는 인간도 죄인이고, 자본주의를 외치는 인간도 죄인이에요.
공산주의 해도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하여 남의 것을 수탈하고,
자본주의를 해도 자기 배를 불리고자 약한 자의 것을 수탈해요.
노동자도 나쁘고 재벌도 나빠요.
가난한 자도 탐욕이 가득한 죄인이고,
부자도 탐욕이 가득한 죄인이에요.
죄인은 똑 같아요.
우리 생각 같아선 돈 많은 자들이 서로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자기 회사 직원들이잖아요.
구호는 ‘사원을 가족처럼’ 외치면서 정작 하는 짓은 사원들을 노예로 취급하고 종부리듯이 부려 먹고 있잖아요.
사원들을 돈 벌어 주는 기계로 생각하고 불철주야로 부려 먹잖아요.
그런데 이걸 악이라고 외치고 선동하는 자들이 있는 겁니다.
이게 좌파 사상으로 무장한 선동가들이에요.
우리 힘으로 부자들을 몰아내자고 합니다.
이 소리에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데모하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 해방신학으로 민중신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평등하게 살자는 사회주의 구호를 외치는 자들은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줄 알고 그들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각종 데모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고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게 짐승들이 사는 곳이지 어디 사람이 사는 곳인가요.
맞아요.
이 세상은 지옥이에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어야 하는 정글이에요.
탐욕이 가득한 죄인이 사는 곳은 지옥이에요.
서로 유무상통하며 살자고 사회주의를 주창한 칼 마르크스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탐욕 덩어리 죄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인본주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악이고 노동자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예수님이 해방자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지고 사회주의 이론을 만든 것입니다.
인간들이 고통당하는 것이 어떤 제도나 환경이 잘못되어서가 아니에요.
죄 때문이에요.
죄가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항상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보세요.
가나안 땅에 살면서 부자와 가난 한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모두가 공평하게 땅을 분배를 받았어요.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려지는 곳이므로 믿음으로 살면 다 평등하게 잘 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자와 가난 한 자들이 생기기 시작을 했어요.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죄인에게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도 안 되더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평화하면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평화를 만들 수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 아래서 나서 힘의 논리로 살고자 하는 옛사람을 죽이고 은혜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새롭게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악한 자들이에요.
그러므로 부자는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민중신학이니 해방신학은 성경을 인본주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악의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적 죄관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악의 세력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틀어 적그리스도 세력이라고 합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바로 이러한 적그리스도 세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교회협의회를 누가 조종하는가 하면 로마 카토릭이에요.
로마 카토릭은 종교 통합 운동을 일으켜요.
결국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교회가 참 교회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육으로 난 자가 영으로 난 자를 핍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제 싸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한 집안에 육으로 난 자와 영으로 난 자를 배치하여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싸움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을 미리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요셉과 그 형제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
로마 카토릭과 개신교회,
인본주의 교회와 신본주의 교회,
모두가 육에 속한 자들이 영에 속한 자들을 죽였어요.
이것이 종말에는 새 언약을 전하는 교회와 그 종들을 옛 언약을 전하는 교회와 종들이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한 교회 안에서도 새 언약에 속한 자와 옛 언약에 속한 자가 있어요.
새 언약에 속한 종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증거하고,
옛 언약에 속한 자들은 인간의 착한 삶도 의로운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결국 바울이 그토록 외쳤던 율법에 의와 율법 외에 다른 의의 싸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항상 육에 속한 자들은 힘 있는 강한 자로 나타나고, 영에 속한 자들은 힘이 없고 핍박받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에 속한 자들에게는 힘을 주지 않아요.
이 땅에서 육에 속한 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하나님은 이러한 모순된 구조를 세상에 두시고는 이 세상은 죄 아래 있음을 고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주어진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적그리스도가 있고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를 핍박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핍박해요.
이 놈들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해서 활동하기 때문에 육에 속한 자들은 절대로 몰라요.
육에 속한 자들 눈에는 그들이 진짜처럼 보여요.
그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고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봅시다.
마 24:1-13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강도의 굴혈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쓸어버리고 나왔습니다.
이는 더 이상 성전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성전을 자랑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저것은 성전이 아니라고 하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러한 일이 언제 일어나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임하실 때와 이 세상이 끝날 때는 어떤 징조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의 첫 마디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미혹을 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고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시대만을 국한하여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세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요.
세상 징조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면 나라와 나라가 싸우고,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듯이 교회 안에 서로 싸우는 전쟁이 일어나고 성도들의 신앙은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을 당하게 될 것이며 신앙이 무너지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네 가지 말이 뛰면서 재앙이 일어나지요.
그 첫째 말이 흰 말입니다.
이는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단이에요.
이단이 교회 안에 나타나면 편 가르기가 일어나고 교회 안에는 전쟁이 일어나요.
그래서 흰 말 다음에 붉은 말이 나타나는데 이는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걸 셋째 말인 검은 말로 말하는데 검은 말이 뛰니까 기근이 닥치지요.
기근이 닥치고 나면 말씀을 먹지 못해서 온갖 이단 사설에 넘어지고 영적 질병과 아픔을 당해요.
이걸 청황색 말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들인 거짓 선지자가 교회 안에 나타나면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간에 분쟁이 일어나서 니편 내편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들인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면 하늘의 말과 땅의 말이 섞인 뱀의 말로 인하여 홍수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져요.
말씀이 사라지면 교인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을 당하여서 영적으로 피폐하여지고 급기야는 이단에 빠지고 시험에 들고 사랑이 식어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 가지 말은 서로 연결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징조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징조란? 표상적인 것으로 싸인이에요.
땅에서 일어나는 육적인 전쟁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영적인 전쟁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징조를 통해서 시대를 읽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징조를 육적으로는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고 민족끼리 내분이 일어나고 세상적으로는 갖가지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는 영적으로 일어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9-11절을 보세요.
마 24:9-11절.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라고 하지요.
그래서 너희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너희는’ 누구인가요?
사람들이란? 11절에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해요.
그리고 너희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광의적으로는 모든 성도들을 말해요.
거짓 선지자들이 성도를 어디에 넘겨준다고 합니까?
환란에 넘겨준다고 하지요.
미워하고 죽인다고 하지요.
교회 안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면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서 서로 미워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도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게 만들어요.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거하는 자들끼리 파당을 짓고 서로 싸우게 되는 겁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그림들이 아닌가요?
지금 이 시대 교회 이야기에요.
교회마다 목사에 따라서 파당을 지어서 싸우고 있잖아요.
급기야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듯이 교회가 분리되고 갈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교파도 많고 교단도 많아요.
교파끼리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고 싸우고,
교단끼리 우리가 정통이고 너희는 이단이라고 싸우고,
교회끼리 우리 교회는 옳고 너희 교회는 틀렸어, 라고 싸우고,
교인들끼리 나는 복음 아는데 너는 모르지, 하면서 서로 물어뜯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하늘에 전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의 전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누구를 고발하고 누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가요?
땅에 거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로 13장에서 말하는 짐승이에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들이 왜 두 증인들을 죽이는가요?
용을 하늘에서 쫓아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용이 짐승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에게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13장의 내용이에요.
두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요.
반면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처음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증거하고 경배케 합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단수로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복수로는 그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교주나 자기들의 조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수 없이 보아온 사실들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이 교주를 신봉하고 자기 조직을 지키려고 해요.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들을 보세요.
성경을 가지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자기들의 교주를 따르게 하고 그 조직에 충성하는 자로 만들잖아요.
이단들의 특징이 아주 무례하고 패역해요.
악마적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정머리도 없고 흉포해요.
가정도 가족도 부모 형제도 몰라봐요.
통일교나 장막성전이나 신천지나 JMS나 여타 사이비들을 보세요.
자기 조직의 식구들 이외는 모두가 경계의 대상으로 삼고 배척해요.
이게 정통으로 가장한 교회 안에서는 어느 특정한 목사를 따르게 만들어요.
목사의 말을 성경의 권위 위에 두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들이 신봉하는 목사의 말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기에 이르러요.
이들은 자기들이 따르는 교주나 목사를 비판하면 마치 북한과 같이 자기 지도자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길길이 날뛰면서 잡아먹으려고 해요.
이게 복음을 가장한 집단들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단들은 항상 복음을 가지고 폭력적으로 행사해요.
복음을 말하면서 자기들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 남을 배타하는 폭력성을 띠고 있다고 하면 이단으로 간주하세요.
그들의 말이 아무리 복음적이라 하여도 그건 마귀적인 것이에요.
마귀도 얼마든지 복음을 말할 수 있어요.
다만 마귀는 복음 속에 담겨진 내용을 삶으로 토해내지 못해요.
이는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말하면서 남을 헐뜯고 죽이는 반복음적인 짓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특정한 목사의 말을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고 따르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해도 안 들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추종하는 교주나 목사의 말 이외는 안 들어요.
이는 그들의 귀에는 자기 교주나 목사의 말만 들리도록 인이 박혀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다른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라고 하지 않아요.
원래 짝퉁이 더 진짜 같아요.
그래서 진품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속는 것입니다.
짝퉁은 진품을 가진 자들만이 알 수가 있어요.
쉬운 말로 저는 명품을 몰라요.
어떤 것이 명품인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누가 명품을 들고 오거나 입고 와도 나는 소 닭 보듯이 하는 겁니다.
뭘 알아야 부러워하지요.
근데 이게 말이에요.
누가 짝퉁을 가지고 와서 명품이라고 하면 나는 속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명품을 구경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경을 안 했으니 명품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니 짝퉁을 가지고 명품이라 하여도 속는 겁니다.
복음도 이와 같아요.
예수를 만나본 사람들은 복음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을 대번에 알아봐요.
진짜 복음을 품고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절대로 속지 않아요.
복음을 그 속에 생명으로 품고 사는 사람들은 복음이 뿜어내는 향기를 알아요.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사리사욕을 좇는 자들을 보면 저건 거짓 선지자이고 말쟁이라는 것을 알고 속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요?
계 13:11-12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짐승의 모습이 어떤가요?
새끼 양 같다고 하지요.
그런데 용처럼 말을 합니다.
이것은 겉모습은 어린 양을 모방하는데 그 입에서는 용(마귀)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겉 다르고 속이 다른 겁니다.
이게 이단들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 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리가 양의 탈을 씁니까?
양을 속여서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양들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 놈이 무슨 말을 하는가요?
처음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라고 하지요.
처음 나온 짐승이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말하는데 단수적인 의미로는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복수적인 의미로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고 그의 세력에 동조하라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진보주의 목사들이 반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있는 WCC를 옳은 집단으로 선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난번 부산에서 개최한 WCC 총회를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주었어요.
또한 교황의 방문 때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목사는 기독교 방송에 나와서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단의 세력이라고 몰아붙였어요.
기독교 방송도 뉴스 시간에 WCC를 옹호하였어요.
이들이 바로 육에 속한 자들이고 땅에서 올라온 거짓 선지자들이고 그 세력들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 방송이라고 하면서, 또 목사라고 하면서도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교황을 칭송하고 적그리스도 세력인 WCC를 옹호하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나온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가 동조한다고 했나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거짓 신자들이기 때문에 거짓 목사들의 말을 듣는 것이에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는 교황을 칭송하고 WCC를 지지하는 목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거부해요.
그런데 말이죠.
땅에 속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해요.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항상 인간의 숫자를 힘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은 진리의 집단으로 생각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항상 군중들의 숫자를 힘으로 내 세우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무리 지어서 다니는 짐승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까요?
그게 이적(異蹟)이에요.
초월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모아요.
육에 속한 자들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추종하게 되어 있어요.
땅에 거하는 자들은 기적을 행하면 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추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건 한국교회 안에서 너무도 잘 보아온 모습이에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행하면 하나님의 큰 종이라고 따라요.
13-15절을 보세요.
13-15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거짓 선지자들이 큰 이적을 행하지요.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합니다.
‘심지어’ 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이적들을 행하였지만 이 보다 더 큰 이적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 두 증인들을 모방하고 있는 겁니다.
두 증인들이 사역하는 동안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하고,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하고,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사른다고 하였지요.
이것은 영적인 능력들을 말해요.
거짓 선지자들이 입에서 진짜로 불을 뿜어낸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들의 말이 사람들을 설득시킬 만큼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속된 이야기로 말 빨이 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리가 그 안에 없고 땅에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은 하늘에 속하였고 거짓 선지자는 땅에 속하였어요.
두 증인들은 하늘에 말로 하늘에 속한 자들을 설교하고,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 말로 땅에 속한 자들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처는 하늘이고, 적그리스도의 출처는 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두 증인들은 하늘에 말로 성도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 말로 뱀의 후손들을 땅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두 증인들은 하늘에 말을 하고 하늘에 복을 주는데,
반하여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 말을 하고 땅에 복인 떡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십일을 주리실 때 마귀가 찾아 와서 하는 말을 잘 음미해 보세요.
마귀가 뭐라고 하던가요?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제시하는 것이 떡이고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에요.
그러니까 마귀의 논리는 땅의 것으로 하나님 아들 됨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땅에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각종 이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렇게 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 속에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가 행하는 이적을 보고서 저 사람은 신에게 속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의 말을 진리처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는 상상치 못하는 이적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럼 진리에 속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다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봅시다.
살후 2:9-12절.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악한 자가 임한다고 하지요.
이들은 사단의 역사로 능력과 기적을 행한다고 하지요.
이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해요.
이건 요한계시록 13장의 말이에요.
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서 각종 이적을 행하게 한다고 하지요.
이들이 이적으로 누구를 미혹합니까?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는 뭐라고 하는가요?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은 자들을 추수하기 위하여 사단에게 능력을 허락하게 하셨고 사단은 그 종들에게 권세를 주어서 불의를 좋아하고 진리에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을 심판을 받게 하려고 미혹한다고 하잖아요.
기적이 결국 미혹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왜 기적으로 미혹하는가요?
이는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을 찾아내고자 함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기적을 신적 계시로 접근해요.
그러나 진리의 사랑을 받아서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성도들은 하늘에 말씀으로 신적 계시로 삼아요.
말씀으로 낳아진 성도는 말씀을 좇아가고,
육으로 낳아진 자들은 기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두 증인들의 말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 듣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땅에 속한 자들이 들어요.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경배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말을 듣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라고 하였지요.
이 말씀처럼 확실한 증거가 없어요.
복음은 하늘로서 난 자들은 다 알아들어요.
알아듣게 되어 있어요.
알아듣는 자가 하늘로서 난 자들이고 예수님의 양이에요.
그래서 제가 복음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복음이 언제 누가 강요해서 알아진 것인가요?
아니잖아요.
어느 날 들려지게 되었잖아요.
하나님께서 들려지게 해 주시니까 듣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노력해서 알아진 것이 아니에요.
바울이 언제 예수에 대해서 공부했나요?
아니에요.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셨어요.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까’ 라고 하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바울은 구약 성경 속에서 예수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구약 성경으로 인간의 행함을 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구약 성경 속에서 예수가 보이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저도 과거 율법이 특심 할 때는 모든 성경이 내가 뭘 해야 하는 것으로만 보였어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이라고 외쳤어요.
열심과 충성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증거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성경 속에서 예수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보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음이 보이고 은혜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다른 의를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기 백성은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언약에 의하여 구원해 주신다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은 이 이야기가 들려져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절대로 짐승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영적 분별력으로 저 말이 하늘의 말인지 땅의 말인지 잘 분별하여서 믿음을 잘 지켜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 안에 각종 거짓 영들이 난무하여 속이고 있는 때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탈을 쓰고 온갖 기적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영분별의 은사를 주시어서 미혹당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도 주셔서 성령께서 하시는 하늘에 말씀과 뱀이 하는 땅에 말을 분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고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한 때이오니 깨어서 기도하고 주의 날을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날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