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334) 시시하게 살지 말라
경쟁도 시비분별도 필요없다
지나간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시시한 일도 없다 /셔터스톡
대다수는 한 번 뿐인 인생을 시시하게 살다가 자기도 모르게 종칩니다. 시시하게 살지 말라는게 출세하거나 돈 많이 벌란 말이 아닙니다.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생명과 이 삶을 제대로 한번 아름답게 살아보잔 말입니다.
그럴려면 영성(기독교)을 키우든지 아니면 깨어나야(불교) 합니다. 신기하게도 두종교의 가르침은 세상으로부터의 자기 구원에 있으며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에 의존해서 나타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없으면 모든 것도 따라서 다 사라진다는 게 의미하는 건 뭘까요? 그것은 일체가 다 허상이며 오직 여기 [나란 현상]만이 실상이란 것입니다. 지나간 삶을 봐도 변하지 않는 건 오직 [나란 현상]일 뿐 다 변하지 않았나요? 그 이름이 [나란 현상]일 뿐 실제로 이것은 우주 대생명의 현존(살아있음)입니다.
즉 생명이 진정한 참나이며 과거의 나란 [생각+느낌]에 불과하단 겁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변하지도 않고 늘 항상 여여한 이 생명자리를 탐구하고 발견해 그 자리를 나의 왕으로 삼고 그 자리가 나란 현상을 살아가도록 내어맡길 때 진짜 구원과 해탈이 성취됩니다.
이것이 예수와 석가의 공통된 가르침이며 진리입니다. 이대로 정견 공부하면 세상은 다 내가 그렇게 보고 듣고 해석한 내 마음의 모습이며 O자리로서의 내 몸이 됩니다. 그래서 깨달으면 일체가 내가 되니 너도 나고 O과 그 활동이 아닌 게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도반 중 누구랑 사이가 나빠서 감정 상해한다던지 또는 누가 더 도를 많이 아느냐고 경쟁하거나 지나간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앉아 누가 옳으냐, 내로남불로 시비분별한다면 그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놀음입니까? 왜 그렇게 시시하게 삽니까?
자기 생명이 그렇게 하잘것 없는 것 가지고 휘둘리는 값싼 것입니까? 에고는 작은 걸 붙잡고 키워 크게 뻥튀기하는 속성이 있지만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 앞엔 일체가 평등하며 그 앞에서 자기의 빛을 잃습니다.
예수가 성령으로 거듭나란 말은 성령이란 인간의 생각 느낌이 아니고 바로 순수한 생명의 O자리와 그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깨어나면 삶의 모든 것들은 좋든 나쁘든 단지 이 O의 다양한 변화 모습이며 이것이 변장해서 찾아오신 경이로운 손님인 것입니다.
고로 깨달았다면서 과거 인간 아무개의 삶을 지금까지 연장하지 마세요. 그게 바로 깨달음의 화창하고 경이로운 빛을 에고란 검정 우산으로 가리고 그 그늘 밑에서 어둡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언행을 보면 그가 제대로 깨어났는지 말만 그런지 테스트할 것도 없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