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닭 어디 갔어요?”
“그거....살쾡이란 놈이 다 잡아 먹었다.”
“예?”
한 달 만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닭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옛날 우리가 살던 기와집을 헐어 나온 부자재와 금진항에 가서 주워 온 그물과 길거리에 버린 폐자재로 얼기설기 아버지가 손수 지은 닭장이었다.
거기 몇 년 전 중병아리를 스무 마리 정도 집어 넣었고, 그 놈들이 알아서 알을 낳고 품고 자연스레 번식을 하여 가끔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토종닭 고기 맛을 보기도 했고, 양계닭의 비린 맛이 아닌, 고소한 맛이 나는 신선한 달걀도 가끔 얻어 먹었던 것이다.
올 봄에는 토종닭 몇 마리를 더 집어 넣었고, 아버지 친구에게서 얻은 오골계도 한 쌍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살쾡이가 있어요?”
“얼마 동안 안 보이더니 요즘 다시 나타나는 구나”
아버지는 대답을 하시면서 아쉬운 듯 닭장을 바라보셨다.
어릴 때는 살쾡이가 흔한 존재였으나, 얼마 전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나서야 그 존재가 간신히 떠올려졌던 터였다.
그 살쾡이가 우리 닭을 잡아먹다니........
아마 인간과 파괴된 환경에 쫒겨 깊은 산속 어딘가에 숨어 살던 살쾡이가, 다행히 산림보호 정책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생태계에서 번식을 해서, 그 일파의 어느 새끼가 자라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이곳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리라.
그리고 부모님이 잠든 야심한 밤에 그놈의 야성의 사냥술로 닭장 안의 닭들을 살육했으리라.
낮에 산속 수풀에 숨어 닭들과 부모님의 상태를 관찰 했을 터이고, 이윽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밤에 내려와 배를 채우고는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배는 채웠지만 놈은 외로울 것이다.
홀로 영역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놈들의 습성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외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차 문을 열다가 무엇인가 급하게 차 밑에서 뛰쳐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고양이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보이는 버려진 도둑 고양이었다. 놈들의 행태는 추하기 짝이없다.
낮 동안은 사람의 눈을 피하거나 눈치를 살피며 어두컴컴한 골목 구석이나 화장실 뒷켠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뜸한 새벽이나 한 밤중에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것이 놈들의 일상사이다.
때론 대로로 뛰쳐 나왔다가 차에 치여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기도 한다.
살쾡이와 고양이는 같은 고양이과 동물로 날렵하기도 마찬가지이고 노련한 사냥술도 비슷할 것이다.
고양이는 인간이 애지중지 하다 버린 것이고, 살쾡이는 인간에게 버린 존재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둘 다 인간이 만든 물질문명의 피해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나는 직접적인 피해자이고 하나는 간접적인 피해자일 뿐이다.
하나는 살아 있는 닭을 죽였던 것이고, 하나는 인간이 먹다 버린 쓰레기 봉투를 뒤졌을 뿐이다.
요즘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침체된 경기 탓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 벌어먹기가 예전처럼 허술하지 않다는 점이다.
점점 기계화되어 가고 전문화 되어가고 그러면서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지고 대충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보니 실업자는 점점 늘어나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놓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라는 존재는 태생적으로 기득권층이나 상위계층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점점 비대해지고 비대해진 정부가 다른 정부와 마찰을 일으키고 전쟁을 벌이고, 그러면 그 피해는 온통 힘없는 약자들이 뒤집어 쓰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도둑고양이를 보면서, 내 자신을 생각했다.
쓰레기를 훔쳐 먹는 놈이나, 도시의 한구석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나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사람에 길들여져 야성을 잃어버리고 쓰레기를 훔쳐보며 눈치를 살피는 고양이 신세가, 정부의 그늘 그 정책에 좌지우지 되는 내 생활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차라리 외롭지만, 밤에 민가에 내려와 닭장 안에서 살육을 일삼는 살쾡이가 부러웠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멋대로 살아가는 놈이 부러웠다. 비록 그 놈의 미래는 어둡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자신의 의도대로 지켜간다는 점에서는 놈이 멋있게 보였다.
세계는 거대 정부 미국의 입김에 놀아나서 무엇 하나 우리 생활이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제는 정부가 싫다. 국가라는 틀이 싫다. 자유롭고 싶다.
아나키스트이고 싶다.
살쾡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