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겨울,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023.11.23
59년 전, 너무나도 추웠던 서울의 겨울. 1964년 포장마차 골목에서, 20대 구청직원인 나는
25세 대학원생인 안 씨와 함께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죠. 갑자기 이 남자가 자신이 오늘 저녁을 살 테
니 먹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녁 살 돈이 과연 있을는지… 믿을 수 없어 가장 비싼 것을 시
켜봅니다. 남자는 흔쾌히 비싼 통닭을 시켜주었습니다. 어느덧 이렇게 셋이 함께 밤새 술자
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자의 돈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남
자는 이 돈을 기어코 오늘 밤 다써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세 사람은 밤에서 새벽까지, 서로
무심히 만나고 헤어집니다. 밤새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만, 각자 다름을 확인할 뿐 아무런
사회적 연대감이나 동질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함께 있지만 쓸쓸하고 춥기만 한 겨울의 밤
이었던 것이죠.
혼자 있기 싫다고 하던 30대의 남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모텔에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음날, 30대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고 나머지 둘은 각각 헤어져 자신의 길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크게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이 시대의 청춘을 의미 없게 만들었을까요?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산업화와 근
대화의 물결이 몰아치는 1960년대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동
체 의식이 무너지고 고향을 상실한 그 시절의 젊은이들. 이들은 근대 자본주의의 이념에 선
뜻 동조하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전통에 대한 미련도 갖지 못합니다. 이들이 개인화되면서
겪는 방황은, 회의주의자인 안과 냉소적인 나의 쓸데없는 대화 속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소
외되고 방황하는 이들의 활동무대는 겨울 밤, 여관이나 술집, 밤거리일 뿐이죠.
하지만 진정 그들이 정말 그 죽음에 무심할 수 있었을까요? 서울거리의 소시민인 세 사람
의 대화와 마지막 행적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겨우 20대인 두 사내는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라고 자조하는데요.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생각
으로 가득한 그들의 이면에 들끓는 ‘진지한 삶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돈으로 밤거리에서 떠돌다 돈을 불구경하는 화재 현장에 던져버리
고 여관에서 자살하는 가난한 30대 중반의 서적 외판원, 주인공인 구청 직원이나 부잣집 대
학원생이 느끼는 것은 너무 일찍 나이 먹어버린 한국 시민사회의 쓸쓸한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1965년에 발표되어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여기에서는 김승옥 작가 특유의 개
체와 개체와의 관계, 즉 ‘인간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는 듯한 쓸쓸하고 차가운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1960년대 젊은이들의 소외의식과 방황을 감각적 필체로 담은 <서울, 1964년 겨울>. 비록
무려 5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사회에 만연하는 군중 속의 소외와 허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23년에 던지는 김승옥 작가의 메시지에 한번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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