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집에만 있으면 뭐해
CNN 선정 대한민국에서 가보고 싶은 섬 22개 중에 1위였던 목섬을 찾아가 보자?
추위가 무섭다 하니 옷을 잔뜩 챙겨입고, 장갑도 끼도, 귀마개도 하고, 모자도 쓰고 길을 나섰다.
영흥도, 선재도를 가려면 옛날에는 꼬불꼬불 국도를 따라가야 했는데 지금은 송산까지 고속도로가 생겨서 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목섬에 가지전에 화성 공룡알화석지부터 찾기로 했다. 십 여 년 전 전에 아이들과 함께 갔었던 곳이다. 그때는 시화방조제를 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라 갯벌이 사막처럼 마른 땅으로 허허벌판 위에 작은 돌섬이 있었다.
지금은 갈대가 무성하겠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차에서 내려보니 갈대는 거의 없고 띠 같은 풀들이 무성하다. 이름을 알아보니 산조풀이다. ‘산조풀’이란 풀의 이삭이 곡식 ‘조’의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삭이 사라진 지금의 모양을 딱 띠를 닮았다.
와~, 일단 넓어서 좋다. 저 멀리까지 풀밭이 이어진다. 말을 타고 한바탕 내달렸으면 좋겠다. 여름에 오면 그 푸르름이 더 장관일 것 같다. 그 풀밭을 길게 지나면 드디어 붉고 작은 산 같은 바위가 나타난다.
(공룡알화석지로 가는 길)
(산조풀)
(산조풀. 갯조풀, 갈대)
마치 화산재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이 바위는 퇴적암인데 타포니(Tafoni, 구멍 뚫림) 현상으로 구멍이 나 있다. 첫 번째 바위에 공룡 알이 동그랗게 있다고 사진으로 안내를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눈이 덮여 있어서 말이다.
돌아서니 바위 사이에 붉은 도화지에 동그라미가 있다. 공룡 알이란다. 깨졌던 흔적이 있다. 7천만 년 전 이전의 흔적과의 대화를 나눈다. ‘안타깝구나! 태어나지도 못하고 깨졌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라! ‘우리도 수많은 꿈이 깨지면서 살고 있단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동그라미를 찾는다. 아주 자세히 보아야 동그라미를 만날 수 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젊은이 한 쌍을 만났다. 열심히 사진을 담느라 바쁘다.
뒤돌아보니 아주 작은 섬 같은 산 둘레에 가드네일이 있어서 되돌아가 그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다. 그 끝에 작은 공룡 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또한 태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들이다. 공룡 알들아! 안녕!
(퇴적암, 타포니 현상)
(깨진 공룡 알)
(공룡 알을 찾아 보세요)
(동그라미가 공룡 알)
(공룡 알 화석)
다시 풀밭 사이를 걸어 나오는데, 사모님께서 “왜? 여기는 새가 없지?” 하신다. ‘그러게 새가 없네!’ 하는데 딱 한 마리가 앞에 와서 앉는다. 얼른 핸드폰으로 쭈욱 끌어당겨서 사진에 담았다. 밭종다리이다. 밭종다리는 밭에 사는 종다리이다. 종다리는 다른 말로 노고지리이고 또한 ‘작은 새’라는 뜻이다. 아주 귀한 새를 만났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행운이다.
ㅇ 종(좀, 작다) + 다리(새) = 종다리 = 작은 새
- 종 = 좀 = 조금 = 조그맣다.
- 다리 => 사리 => 사이 => 새
- 다리 => 도리(일본으로 가서 새)
* '다리, 지리, 가리, 꼬리, 구리'는 다 새라는 다른 말이다.
(종다리, 노고지리, 왜가리, 꾀꼬리, 딱따구리)
ㅇ 노고(높이) + 지리(새) = 노고지리 = 높이 나는 새
- 봄에 짝짓기 철에 높이 솟아올라서 정지 상태에서 지저귐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작은 새를 만났으니 잠시 김정호의 작은 새를 불러본다. 이 작은 새가 정말 나를 찾아온 것일까?
(밭종다리)
밭종다리는 사실 '종다리'가 아니다. 종다리를 닮아서 이름을 종다리라고 붙였는데 사실은 할미새과이다. 종다리는 종다리과이다. 그러니 달라도 엄청다르다. 할미새처럼 꼬리를 깝죽거린다.
ㅇ (종다리 = 종달새 = 노고지리)는 같은 새이다.
- 종다리 => 종(작은) + 달(다리, 새) + 새(새) => 종달새로 되었다. 여기서 '다리'가 '새'라는 의미를 잃어버려서 다리(새) 뒤에 다가 다시 '새'를 덧붙였다.
네비를 찍어야 하는데 목섬을 화성으로 놓고 찾으니 찾을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는데 알고 보니 인천이다. 아이고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애를 써서 목섬 앞에 있는 칼국수 집에 도착했다. 전망이 참 좋은 집니다. 박속낙지에 칼국수를 먹고 목섬으로 들어간다.
식당에서 목섬을 바라보는 풍경이 참 멋지다. 물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멋지다. 시원한 가슴 속에 점 하나는 그려주는 그런 기분이다.
(2012년 CNN선정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22개 중 1위)
(식당 안에서 본 풍경)
목섬의 목은 나무 목(木)이 아니고 순 한글로 모가지 할 때 목이다. 섬의 모가지가 육지로 붙어 있다. 이 모가지를 풀등이라고 한다. 풀등은 바다 물살의 변화로 모래, 자갈 등이 산등성처럼 쌓여 있을 곳을 말한다.
그래서 이 풀등은 수시로 변한다. 어느 때는 고운 모래, 어느 때는 거친 모래, 어느 때는 높게, 어느 때는 낮게 모습을 바뀐다. 그래서 찾을 때마다 새롭고 멋지다. 이 목섬에 봄이면 분꽃이 핀다. 그 향기가 참 좋다.
섬을 돌아서면 앞으로 풀등이 길게 늘어서 있다. 꽉 막혔던 앞길이 여기서 확 트인다. 그래서 아름다운 꽃은 아니지만, 꽃길처럼 느껴진다. 이 맛을 맛보라! 무심히 걷지 말고 말이다. 저 멀리 시선을 두고 막힘 없는 세상을 보라! 이게 멋이다.
(풀등 풍경)
(풀등)
이제 영흥도 노가리해변 끝에 있는 적벽해안으로 간다. 영흥도가 곳곳이 개발되었지만, 이곳은 개발이 안 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길이 좁고 꾸불꾸불하고 골목골목을 지나야 한다. 건물은 낡아서 음습하기도 하다.
노가리해변 길의 끝까지 가면 민박집이 있는데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그 옆에 해변으로 흙을 가져다가 공터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차를 세우면 된다. 쓸쓸하고 정이 안 가는 풍경이다.
등산화로 갈아신고 해변을 따라 적벽으로 간다. 사모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자기는 여기 오고 싶은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데 오기 싫어!’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묵묵히 걸어간다.
산모퉁이를 돌아드니 태양이 나타나고 그 밝음 속에서 주황색 적벽이 보석처럼 나타난다. ‘어머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 마치 책 같네!’ 하신다. 화색이 도신다. 참 다행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빛이 주인공이다. 낮게 드리운 태양이 멋지게 적벽을 조명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이곳에는 작은 해식동굴이 두 개가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굴에 들어가 밖으로 사진을 담는 것이 멋지다. 그냥 보는 것보다 사진으로 보는 것이 더 멋지다.
굴로 기어들어 가면 점점 좁아지다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진다. 여기를 통과하면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작은 공간이 있다. 자궁 속이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 같은 적벽)
(해식동굴)
사모님께서 철이 없다고 빨리 나오라신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에서 작은 행복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나왔다. 이 바위는 퇴적암이면서 사암이고, 사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서 변한 변성암이다. 그 변성암 중에도 규암이다. 그래서 돌이 단단하고 예쁘다. 이런 아름다운 색은 철 또는 알루미늄이 산화되어 빚어낸 색이다. 아름답다.
길을 더 걸으면 어민들이 작업하는 공간이 있다. 그 앞은 굴 밭이고 작은 어리굴이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작은 돌로 톡톡 쳐서 몇 개를 따 먹어본다. 달다.
차를 세운 곳으로 질러가는 길이 있는데 민박집에서 담장을 쳐놔서 다시 적벽해변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중년 여인 둘을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나왔다.
(빨리 나오셔!)
(어리굴 밭)
이제 카페로 출발이다. 영흥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간다. 카페는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름도 ‘하이바다’이다. 공동으로 쓰는 주차장이 있고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매장과 그 앞 바닷가에 있는 야외 매장이 있다.
카페는 매장 앞을 통과해야 들어가게 해 놓았다. 여기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화장실을 갔는데 앞에 표지판은 분명 남자인데 안을 들여다보니 소변기가 없다. 그래서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표지판을 보고 하기를 몇 번 했다. 이곳에는 소변기가 없다.
평일이라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먼저 온 사람들이 창가를 차지했다. 야외에는 사람들이 없다. 가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다가 밖으로 나간다.
커피와 소금빵을 주문했다. 커피의 향은 강하지 않고 은은하다. 어찌 얘기하면 밋밋하다. 소금빵은 겉은 바게트처럼 바삭하다. 그런데 너무 짜다. 짜도 너무 짜서 못 먹겠다. 소금빵이 원래 이런가 싶다. 다른 곳에서 먹어 봤을 때는 이렇지는 않았다.
카페 앞에 저 멀리 바다 위로 여객선도 지나가고 화물선도 지나가고 비행기도 지나가고 한다. 그 지나감이 선인가 싶다가도 점인 듯 보이곤 한다. 여름이면 야외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낭만을 주겠지만 오늘은 겨울 바다의 쓸쓸함 만이 묻어난다. 쓸쓸함도 삶의 한 단면이니 느끼며 사는 것도 좋다.
(인천대교. 영종도)
(여객선)
퇴근 시간이 되어서 그러는지 종업원이 카페 매장바닥의 모래를 쓰느냐고 자주 왔다 갔다 한다. 공연히 불편하다. 여행이란 즐거움을 주지만 불편도 또한 여행이다. 어쩌면 불편이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2022년 마지막 전날에 겨울 나들이를 마쳤다. 어둠을 뚫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다. 즐거운 하루였다.
첫댓글 춥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여기저기 다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