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무사 만추
운무사의 자매들에게
/ 법정 스님
봄이 옵니다.
그곳 호거산(虎踞山)자락에도 봄기운이 넘치겠지요.
운문사에 다녀온 지도 몇 해 되었습니다.
운문사를 생각하면
백서른 켤레의 흰 고무신이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 광경이 떠오릅니다.
예전에는 절마다 섬돌 한곁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답니다.
신발을 제자리에 벗어 놓았는지 살펴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자기가 서 있는 발부리를 돌아보라는 법문이지요.
수행자는 항상 자신의 현 존재를 되돌아보면서
거듭거듭 형성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반성이 없으면 일상적인 타성에 젖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그런 직업적인 중이 되고 맙니다.
강원(講院)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출가 수행자의 기초 교육기관입니다.
단순히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만을 배우는 곳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글도 배우지만 행(行)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사실 글은 절이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절에서보다도
밖에서 훨씬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은 도량이 아닌 데서는 제대로 배우고 익히기가 어렵습니다.
삼장과 수행이 똑같이 한 부처님 가르침 아닙니까.
그런데 흔히 강원의 학인이라면
글만을 배우고 익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글이나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행에 있습니다.
요즘처럼 무행(無行)의 무리들이 설치는 세태에서는
더욱 승가의 청정한 행이 귀하게 요구됩니다.
해(解)와 행(行)이 하나를 이룰 때 건전한 인격이 형성됩니다.
행이 없는 해는 공허하기 쉽고,
해가 따르지 않는 행 또한 맹목적인 데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해행일여(解行一如)에 대한 신(信)이 굳게 서야 합니다.
이 기회에 강원의 학인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 쓸모 있는 공부를 하십시오.
강원이 출가 수행자의 기초 교육기관이라면,
수행자로서 평생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일들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하루 종일, 글 몇 줄을 가지고 씨름하는
그런 비교육적인 늪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정해진 교과 과정 외에도 개인적으로 더욱더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학생들을 보십시오.
하루 여덟, 아홉 과목씩 소화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일단 배운 것은
그대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수용되어 생활화되고 인격화되어야 합니다.
한번 배운 것은 남에게 가르쳐 보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오 년 혹은 오륙 년 걸쳐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도
벙어리가 된다면 배우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배운 것을 밑천으로 법문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글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기사유를 거쳐 자기 것으로 재창조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용처(用處)가 있는 공부를 하십시오.
둘째, 개성과 특성이 있는 수행자가 되십시오.
사람은 저마다 남과 다른 재능과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생(多生)에 익힌 업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묵히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선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의 재능과 특성이 한데 모이면
건전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공장의 제품처럼 똑같거나 닮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의 석가모니는 필요 없습니다.
수행자일수록 자기 빛깔을 지녀야 합니다.
꽃들을 보십시오.
다른 이름을 가진 꽃들은 같은 꽃이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 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 출가 수행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여성적인 속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출가 장부의 업을 익혀야 합니다.
여러 자매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십시오.
그것은 결코 여성의 옷이 아닙니다.
당당한 장부의 옷입니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모습이 곧
그 사람의 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그 자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한 장부란 곧 남성을 가리킨 말이 아닙니다.
여성이 어떻게 남성이 될 수 있습니까.
아녀자가 되지 말고 대지의 어머니가 되고 불모(佛母)가 되라는 말입니다.
넷째, 여럿 속에 섞이면서도 은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거듭거듭 구축해나가려면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행자는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고독을 모르면 때가 묻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이 적어야 합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쏟아버릴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많으면 마음이 산란해질 뿐 아니라 속이 비게 됩니다.
다섯째, 수행자는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야 합니다.
그 어디에도 갇혀 살아서는 안 됩니다.
흐르는 물은 영원히 살아 있듯이
수행자도 또한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 핀 꽃은 어제의 그 꽃이 아닙니다.
수행자도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야 합니다.
학인은 영원한 구도자입니다.
무엇보다도 탐구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탐구하는 노력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둘레의 온갖 시류에 물들고 맙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곧 자기 형성의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한번 놓쳐버린 시간은 다시 되찾을 수 없습니다.
졸지 말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십시오.
온 세상이 잠든 시각에도 출가 수행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식구가 230명으로 늘었다는데,
운문사 찬이 더 짜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짜게 먹지들 마십시오. (1983)
-『물소리 바람소리』중에서-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6년 0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