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호패(戶牌ㆍ號牌)는
조선시대 16살 이상의 남성들이 차고 다니던 신분증입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호패 재질도 달랐습니다.
2품 이상의 관리는 상아로 만든 아패(牙牌)를,
3품관 이하 관리는 뿔로 만든 각패(角牌)를,
그 이하의 양민은 나무패를 착용했습니다.
재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보도 달랐습니다.
차는 사람의 이름, 출생 연도, 만든 때,
관(官)이 찍은 낙인(烙印)은 공통 요소지만,
상아ㆍ각패에는 나무 호패에 있는 신분과 거주지 정보가 없고
대신 과거 합격 시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호패를 보면
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정보는 관직으로는
종1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까지 오르고
품계로는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를 받은
18세기 고위 관료여서 상아 호패가 있지만,
젊었을 때 차고 다니던 나무 호패도 있지요.
나무 호패에 새겨진 것을 보면
이정보가 계유년(1693)에 태어났고
20살인 임진년(1712)에는
동부학당(東部學堂)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며
한성 5부 가운데
동부의 숭교방 1계 6통 4가에 사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 이정보의 상아 호패(조선 1748년, 길이 10.0cm, 왼쪽)와 나무 호패(1712년, 길이 8.9cm)
그런데 상아 호패를 보면
앞면에 “이정보(李鼎輔) 계유생(癸酉生) 임자 문과(壬子文科)”,
뒷면에 “무진(戊辰)”이라고 적혀 있지요.
이는 이정보가 계유년(1693)에 태어났으며 임자년(1732)에 문과에 급제했고,
무진년(1748)에 2품 이상의 관직에 임명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그려졌을 초상화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해집니다.
이정보가 관복을 입고 종2품 이상의 관원이 착용하는 허리띠인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초상화는 함경감사로 임명된 1748년 이후에 그렸을 것이고
종2품이 되어 영예로운 상아 호패를 발급받은 것을 기려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