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절정은 4월27일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이다. 그다음 날 서울에서 전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내려온 정부군은 농민군과 두 차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나서 전봉준이 제안한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농민군은 전주성을 내주고 해산하게 되는데, 이때 전라관찰사 김학진과 녹두장군 전봉준의 전격적인 합의로 ‘집강소’가 설치된다.
집강소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민관 합동 자치기구이다. 전라감영 관할 대부분의 군, 현, 면, 리에 집강소가 세워졌고, 치안 관리, 탐관오리 징벌 등 실질적인 개혁을 집행하게 된다. 민초들이 직접 행정·경찰·군사력을 행사했으니 그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전라관찰사 김학진은 자신의 집무실인 선화당을 전봉준에게 내주고 자신은 징청각이라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일을 할 정도였다. 7월 초부터 10월 농민군이 삼례에서 2차 봉기를 할 때까지 집강소는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뜻과 정부의 이해관계가 보기 드물게 찰떡궁합을 이뤘던 것이다.
옛 전북도청 자리가 바로 전라감영이 있던 곳이다. 전라감영 복원과 함께 집강소의 역사적인 의미를 묻고 기려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를 가다’라는 주제로 9월28일까지 열리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기획전도 그중 하나다. 내년은 동학농민혁명 120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