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입한지는 1년이 넘었는데 거래글말고는 글 처음 써보네요.
아직 생동차라 뭐 시험복기하고 그럴 실력이 안되어서 시험 얘기는 쓰지 못하겠고..
마음이 불안해서.. 그냥 살아온 이야기 썰이나 풀어볼까 해요. ㅋ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대학원 석사 졸업하고 늦게 군생활 산업기능요원으로 하게 됐어요.
사실 시력이 안좋아서 공익판정 받았는데. 대학원 전공이 개발학이라 몽골 동남아 남미 등지에 공장 설립하는 일을 돕고 싶어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식품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몽골 베트남 태국 친구들 동생들하고 기숙사에서 한방 쓰면서 함께 1년 좀 넘게 지냈네요.ㅋ
나름 외국친구들이랑 하는 공장 생활은 재미있었는데
어느날부터 공장에서 사람들을 차별하는게 조금씩 느껴지더라구요.
외국 애들이 사정이 있어서 연장근로를 하루만 빼려고 해도 '애가 빠졌다느니 하면서' 반 강제로 근로를 시키는건 예사고,
반대로 아파서 하루 빠지기라도 하면, 농땡이를 친다며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아예 잔업을 안시키고 일찍 보내버린다든지..
(얘들은 이걸 더 무서워합니다. 돈벌러 왔는데 잔업을 아예 안시켜버린다는건 집에 가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회사 내에서 갈등이라도 생기면 바로 해고해버린다든지(아시다시피 외노자 해고된 후 일정시간 내 재고용되지 않으면 강제출국...)
어떤 베트남 여동생은 과로로 쓰러져서 링거맞고 30분 뒤에 다시 와서 일시키고..
뭐 이런저런 말못할 일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도 뭐 산업기능요원이니 최저임금 받으면서 그친구들이랑 똑같은 생활 하다보니,
하루 12시간 일하는건 기본이고, 반복작업 때문에 손목 터널증후군 걸리고,
밀가루 포대를 하루에 100개씩 나르는 바람에 허리 다쳐서 한의원서 침맞다 기절도 해보고,
밀가루 반죽기에 손 껴서 손가락 뼈에 금도 가고 뭐 그랬네요(산재 받을줄 몰라서 공상처리 ㅜㅜ).
그런거 보면서, 처음엔 뭔가 불합리하다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해볼 생각을 못했는데
어느날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라고 주면서 도장을 찍으라고 하길래 내용을 봤더니, 내용이 대충
'갑은 을에게 회사 사정에 따라 연장 휴일근로를 명할 수 있으며, 을은 이에 무조건 동의한다' 뭐 이런 내용이 있는겁니다.
그래서 제가 '잔업 하기 싫은건 아닌데 계약서 내용이 이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 했더니 담당자 왈,
"법적으로 원래 잔업 시키려면 할때마다 동의를 받아야 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 이런식으로 포괄적으로 동의를 받는거다. 문제없다."
이러는겁니다. 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병무청 교육 갔다가 설명나온 근로감독관한테 물어봤더랬죠 이게 맞는지.
그러니까 근로감독관이, 계약서 내용이 좀 일방적이긴 한데, 법 위반은 아닌거 같고, 근로계약은 원칙적으로 당사자끼리 정하는거라
자기가 뭐 어떻게 관여할 수가 없으니 니가 알아서 내용을 바꾸든 쇼부를 치라더군요.
그러면서 '너도 군인이니 웬만하면 시키는대로 해라, 그런데 강제근로는 법적으로 금지니까 정 힘들면 찾아와서 얘기를 해라'
이렇게 위로같지 않은 위로의 말을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이 삼십 다되서 잔업은 빠진 적도 없고 농땡이 치려고 공장 온것도 아닌데,
단지 근로계약서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는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냐고 물어본 것에 그따위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이런 젠장 내가 무식해서 당하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같이 사는 외국 친구들도 나처럼 무식하니까 같이 당하고 있구나.
아웃소싱으로 들어온 이모들도 나처럼 무식해서 작업복도 하나밖에 못받고, 회식에도 못끼는구나.
우리가 다 무식해서 이렇게 당하고 있구나 말이죠.
그래서 노무사 공부 시작했어요. 여름엔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할 때가 많아서
저녁 10시에 일 마치고 가서 강의 두개 듣고, 낮에는 블루투스 이어폰 사서 몰래 일하면서 판례음성 듣고, 점심먹고 민법 OX풀고.
그러다보니 알게 됐습니다. 작업하다가 좀 싸웠다고 막 해고하고(징계위 이런거 들어본적도 없음), 밤 열시까지 강제로 일시키고,
아파서 하루 빠졌다고 잔업 빼버리고 이런게 법에 어긋난다는 것을요.
회사에 가서 항의를 했지요. 계약서 문언 바꿔달라. 그리고 애들 아플때는 좀 쉬게 보내야 된다.
미쳤지요. 산업기능요원이라 문제 생기면 근로일수의 1/3만 인정받고 퇴출될 수도 있는데 눈 뒤집혀가지고...
그랬더니 회사에서도 내가 문제 일으키는게 싫었던지, 제 몫의 근로계약서는 바꿔주겠다는 겁니다.
근데 '니가 외국 애들 일하는거까지 간섭할 권한은 없다. 오히려 니가 같이 사니까 걔들 농땡이 못치게 관리해야 한다.' 고 하더군요.
쩝...-_- 결국 전 제 근로계약서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소시민적 성격도 있고, '군생활 하는데 남 일까지 간섭하다가 내 군생활 X될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신 노무사가 되서 나중에라도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학원이 가까운 서울로 공장을 옮겨서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요.
어제는 부족한 실력이나마 가서 정신없이 시험도 치렀구요.
그런데 막상 시험을 치고 나니 허무한 마음 불안한 마음이 드네요.
괜히 그동안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만 떠오르면서 '내가 이 공부를 1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쉬려니 불안한 마음에 쉬어지지도 않고, 다시 마음을 잡아서 공부하자니 손에 잡히지도 않고...
시험 끝나신 분들 마음이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뭐 사시, 변리사, 회계사 이런것보다 노무사 시험 보시는 분들 중에 사연 있는 분들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경험 다시 돌이켜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해요.. 내가 왜 이걸 시작하려고 했는지.
노무사가 되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말이예요.
시험 끝나고 푹 쉬어야 하는 시간에, 저와 같이 불안함에 갈피 못잡고 계신 분들 다시 한번 힘을 내 보아요.
노무사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변호사만큼 사회적으로 인정도 못받고 있어서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처음 시작할때 그런거 바라고 했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시험이 막 끝난 지금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마음속에 되뇌어 봅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
p.s. 참, 시간 되시는 분은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나온 "노동자의 변호사들" 이라는 책 읽어보셔도 마음 잡는데 좋을 것 같아요. 내용도 다 노동법에서 나오는 얘기들이고, 특히 '송곳' 작가가 그린 '변호사들'이라는 만화도 후반부에 실려 있구요.. 저는 지금 그 책 보면서 눈물 쏟는중 -_-...(촌스럽게스리)
첫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힘냅시다!
조각배노무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노무사라는 직업이 매력적인 듯 합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은 직업...
훌륭하다니 당치 않아요 ㅜㅜ 전 공장 다니는 군바리일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아 송곳 조치요~ 추천 춴
저도 추천. ㅋㅋㅋ 송곳 그리게 된 계기가 저 책에 나오는 <변호사들> 그리기 위해서 인터뷰 한 거라네요.
저도 회사 노사협의회 하다가 공부 시작했습니다...개별 근로자로서 모르고 있던 게 너무 많더라구요...게다가 뭘 모르니까 협상력도 약하고...
그쵸. 그래도 노사협의회가 있는 회사라니 좋으네요. 제가 전에 있었던 곳은 노사협의회는 개뿔 -_- 사장님이 산업혁명시대 영국 살다오셨나 맨날 자기가 일자리 주니까 감사하게 생각하라 거의 이분위기..
삭제된 댓글 입니다.
힘내서 꼭 노무사 함께 됩시다!! ^^
촌스럽게스리 눈물흘리시다니...........ㅋㅋㅋㅋㅋ 그래도 완전 멋있어요! 화이팅입니다! ^^
추천해주신 책 한번 읽어봐야겠네요...화이팅입니다~
와.... 혹시 "노벗"이나 "노노모" 아시는지ㅎㅎㅎ.... 나중에 그곳에서 만났으면 좋겠네요 "아 그 때 그 글 쓰신 분이군요!!"이렇게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