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네 평화(평안)의 히브리 원어는 샬롬이고, 헬라어 원어는 에이레네이다. 성경에서 샬롬이라는 말은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평화라고 하는 말과 동일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샬롬과 에이레네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뜻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모든 일의 안녕 질서
구약의 샬롬
● 기본적인 의미: 완전성(completeness) 혹은 총체성(wholeness) ● 동사형 ‘샬렘’ – ‘완전하게 되다’, ‘완전하게 만들다’, ‘끝마치다’, ‘끝나게 하다’ ● 온전한 삶, 복지, 번영과 형통(시73:3), 건강이나 치유(시38:3, 사57:18-20) ● 개인보다는 공동체적인 번영에 많이 사용된 단어 ● 무엇보다도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 (레26:6, 22:18, 23:25, 대하 14:7, 15:15, 욥25:2, 34:29, 시 29:11, 시85)
신약의 에이레네
● 본래 헬라어 개념대로 사용하는 대신, 신약의 용법에서는 옛날에 사용했던 샬롬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 ● 복지, 번영, 구원은 물론이고 인사, 기원, 축복의 말로 사용 (요20:19. 롬1:7) ● 건강 (막 5:34, 눅 7:50), 안전 (눅 11:21), 질서 (고전14:33), 핍박의 중지(행 9:31) ●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반대말 (행 12:20, 24:3, 마10:34)
샬롬과 에이레네는 윤리적, 내면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영혼이나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온 우주에 다 확장되는 개념이다
(2) 마음의 평안 구약에서 샬롬의 의미와 용법은 광범위하지만, 특별히 정신적이고 내적인 평화를 나타내는 본문은 의외로 드물다는 것은 일반의 예상을 깬다.
● 그러나 정신적 평안에 관한 본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 25:13, 시 116:7) ● 샬롬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마음의 평화’가 등장하는 본문도 있다 (잠14:30, 겔 16:42, 렘 6:16) ● 사 26:3의 “평강”은 마음의 평화에만 의미가 국한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평화라는 의미가 배제되어 있지도 않다
에이레네 ● (롬15:13)에서는 분명히 마음의 평안을 가리킨다 ● 에이레네의 일반적인 문맥은 전 인간의 구원과 질서를 이야기하지만, 여기에 영혼의 질서와 안정도 분명히 포함된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화 (빌 4:7, 요 14:27, 16:33, 골 3:15, 몬 1:7, 20)
(3) 관계의 평화 ● 안녕과 복지 -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삼하 17:3, 렘 29:7, 38:4) ● 민족이나 국가들간의 관계에서의 평화 (삼상 7:14 –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 (왕상 4:24, 왕상 22:44, 왕상 5:26, 삿 4:17, 왕상 5:4, 창 34:21, 슥 6:13) ● 언약과 깊은 관련 - 언약에 의해 샬롬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 특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샬롬 대부분 언약으로 인해 안전, 번영, 전쟁이 없는 상태가 이루어짐 (겔 34:25, 37:26 -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샬롬의 언약을 세우셔서 번성이 이루어짐) (욥 22:21 –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계의 평화 거짓 예언자들이 죄에 빠진 백성들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외치던 것에 맞서서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평강이 없다”고 외친다 (렘6:14, 8:11, 12:12, 30:5, 겔13:10, 16)
● 샬롬은 의의 결과(사 32:17) 샬롬은 미슈파트(공의)와 연결됨 (슥 8:16, 사 59:8)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슥 8:16)
에이레네 ● 그리스 사람들은 적대감이 없는 태도를 에이레네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신약은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샬롬 개념의 전통을 이어 받음 ● 인간과 인간의 화합 (행 7:26)
●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 (엡 2:14-17)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인간, 인간-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모두 폐하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십자가를 통한 화해 → 구원 (롬 5:1) 인간과 인간의 관계 (롬 14:17, 19, 엡 4:3, 약 3:18, 히 12:14 롬 14:19)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 → 온 우주만물을 하나님 자신과 화평케 하심 (골 1:15-20)
(4) 평화를 추구함에 있어 우선 순위가 있다 ● 복지와 번영보다는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고, 마음의 평화보다는 관계의 평화가 중요 ● 억울하게 고난 당할 때에도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평안을 주심 (빌 4:7) - 그러나 이런 마음의 평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예수 그리스도 깊은 마음의 평안을 간직하신 분이었으나, 예루살렘의 죄와 회개치 않음을 보시면서 우심 (눅 19:41) ● 바울 고난 가운데서 평안을 유지한 놀라운 신앙인이었지만,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해서는 고민과 애통을 참지 않음 (롬 9:1-3) ● 예수의 가르침 근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면서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 5:4)”고 하심 - 그 말씀을 듣는 이들의 삶의 현장이 너무나 부패하고 타락하고 불의하기 때문이었음 ● 만일 현실이 그렇게 어두운데도 희희낙락 마음이 편하기만 하다면, 그것이 올바른 신앙일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관계의 평화, 올바른 관계를 맺는 평화, 정의로운 평화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모든 참된 평화는 정의를 바탕으로 한다. 정의는 올바른 관계를 내포한다. ● ‘완전한’ 샬롬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샬롬에는 종말론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 메시야의 강림과 더불어 샬롬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임 (사 11:6-16 말씀: 맹수와 가축, 사람과 짐승이 더불어 살며, 잡혀갔던 유다가 돌아오고, 적대적이던 모든 열방들이 이스라엘을 사모하게 됨) ● 그리스도를 통하여 샬롬의 모든 측면이 성취되었으며, 종말에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벽한 샬롬이 실현됨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윤리의 전문화와 대중화의 첫걸음, 기독교윤리연구소 에이레네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헬라어 (신약 기록 당시에 통용되던 그리스어) 단어이다. 한글 성경에서 ‘평강, 평안, 평화, 화평, 화해, 화목, 화친, 안전’ 등으로 폭넓게 번역된다. 애용되는 구약 히브리어 ‘샬롬’의 병행어이다. 샬롬은 ‘완전성, 총체성, 충만성’ 등을 함의하며, 개인, 공동체, 가족과 민족 등이 손상되지 않고 온전하며 안전한 상태를 뜻한다. 또한 샬롬은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묘사된다.
신약의 에이레네는 한편으로 구약 샬롬의 뜻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긴밀히 연관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일개인적 차원의 인간과 하나님과 화해 (골로새서 1:14; 로마서 5:1) 에 머무르지 않고, 전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우주적 평화는 하나님 안에서의 인간 사회와 민족과 자연의 연대와 화목을 내포한다 (히브리서 12:14; 에베소서 2:11-18; 로마서 8:19-22, 참조. 이사야 11:6-9).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 (에이레네) 자체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다 (누가복음 2:14; 히브리서 7:2).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평화’의 나라이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부름 받았다 (골로새서 3:15;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신약의 ‘에이레네’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기독교윤리의 훌륭한 출발점과 목표점을 찾을 수 있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이면서도, 세계사적으로 커다란 질곡과 모순, 상처와 아픔을 품은 채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반도의 십자가 어깨에 지고 (주현신, 누가복음 4:16-21)
여호와깨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 전하고 마음 상한자 고침을 포로된 자 자유를 옥에 갇힌 자 놓임을 슬픈 형제 위로를 주여 나 여기 있나이다 보내소서 고난의 땅 삼천리 반도의 십자가 어깨에 지고 해방의 그날까지
여호와께서 나를 사도로 삼으사 죽음의 거리에 가슴 벅찬 평화 외치고 반역의 어둠 사르는 순교자의 불길로 억눌린 민중 해방을 찢긴 겨례 통일을 주여 나 여기 있나이다 보내소서 고난의 땅 삼천리 반도의 십자가 어깨에 지고 해방의 그날까지
기독교윤리의 대중화와 전문화의 첫걸음, 기독교윤리 연구소 에이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