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부터 이틀간 일본을 방문한 과정에서 만난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윤 대통령의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해법'을 두고 "높이 평가한다"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아소 전 총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아소 다로 전 총리는 17일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정치 사정이 있을 텐데도 이번 방일을 결정해 줬다. 양국 공동 이익을 위한 결단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다시 한 번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소 전 총리는 윤 대통령 방일 중 일한협력협의회 접견장에서 만나 "윤 대통령이 중요한 결단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소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공식 발언 이후 윤 대통령에게 "그건 그렇고 오므라이스 맛은 어땠냐"고 물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와 함께 한 경양식집 '렌카테이' 오므라이스에 관한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 먹은 것과 비교하면 라이스 맛은 그대로인데 계란 두께가 옛날보다는 얇아진거 같다"고 말했고, 아소 다로 전 총리는 "그 이전 셰프는 돌아가시고 새로운 요리사가 이 식당을 이어가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14선 의원이며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극우파' 정치인이다. 자민당의 주요 파벌 중 하나인 지공회(志公会), 일명 '아소파'의 회장이다. 재무상을 지난 바 있으며 2008년에는 1년간 일본 총리를 지낸 적도 있다. 아소 전 총리는 '아소 탄광'을 운영한 일본 재벌 가문의 후계로 유명하다.
아소 전 총리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는 1872년 규슈에서 탄광사업을 통해 '아소그룹'의 토대를 세웠다. 일본에서는 '탄광의 아버지'로 불린다. 아소 그룹은 현재 아소 다키치 등을 기리는 '아소 150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소광업을 모태로 한 아소그룹은 현재 90개 자회사를 거느린 재벌 회사다.
아소 다키치의 손자이자 아소 전 총리 부친인 아소 다카기치는 아소광업 사장, 아소시멘트 사장, 규슈전력 회장, 중의원 3선의원, 일본석탄협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아소 전 총리는 일본 보수의 본류로 불리는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다. 아소 전 총리의 동생은 현재 (주)아소 회장을 맡고 있다.
아소 가문이 운영한 규슈 후쿠오카 인근의 다가와는 일본 3대 석탄생산지 중 하나인 지호쿠 지역에 있다. 이 탄광에 일제강점기 시절 약 15만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됐다는 보도도 있다. 아소 가문의 탄광에서 채굴된 석탄과 석회석은 제철소(신일철주금)로 보내졌으며, 이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은 군함, 전투기 같은 군수물자 생산에 사용됐다.
<중앙일보>가 2019년 이 곳을 취재해 보도한 "아소 가문의 탄광 징용 잔혹사···위령비 '조선인' 글자도 막았다" 기사에 따르면 1939년 당시 아소그룹의 아소시멘트에는 약 10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있었다고 한다. 석탄 탄광에선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작업하다가 한번씩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석회석 탄광에선 중노동으로 인해 하루에 한두명씩 죽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재일사학자 박광수 씨는 "1940년대 이후 조선인 노동자가 크게 늘어 조선인 기숙사가 별도로 있었는데, 자유가 없는 수감소 같은 생활이었다"고 전했다. 노동 환경은 처참했다고 한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본의 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가 쓴 <조사·조선인 강제노동 탄광편>에 보면 아소탄광 등에서 일한 한국인들의 수난사가 들어 있다. 이 책에서 아소그룹 계열 탄광에서 일한 한국인 노동자들의 환경은 '착취 지옥'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케우치 씨는 2013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일제 동원의 강제성에 대한 일본 사회의 역사 인식을 높이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는 '망언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 이라고 했고, 천황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가능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평화 헌법 개헌과 관련해 "나치식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