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한요나
공기알을 무겁게 만들어놓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토끼장에 풀을 넣어주는 시간입니다 상추가 나을까 배추가 나을까 고민하다가 둘 다 넣어주고 빨리 친구들이 있는 물가로 뛰어갑니다
까만 물잠자리를 따라서 첨벙거리다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뱀 허물을 발견하는 저녁
영물靈物이라고 불리는 동물들은 어떻게 영물이 되었을까요
뱀이 되지 못한 것들이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를 만들고
산누에나방을 따라가 끊어지지 않는 실을 뽑고
그러고 나면 사술사絲術師가 되겠다는 꿈도 꾸고
비단으로 만든 코끼리의 옷
그런 건 꿈에서 만들기 좋습니다
내가 입으면 바닥에 질질 끌릴 긴 옷입니다
산이 소란스러울 정도의 더위, 아찔한 낮에는
물속의 우렁이를 따라
서늘한 대자리에 엎드려 봅니다
고여있기 좋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코끼리 옷을 만드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면 아침인지 밤인지 헷갈립니다
가끔은 깨지 않고도 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옷자락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 산골 동네에 도착합니다 나비가 많았던 곳 자전거 도둑이 없었던 곳 하루는 사루비아 꿀을 빨아 먹고 하루는 아카시아꽃을 모아들고 파란색 분홍색 노란색 공기알이 굴러다니는 교실에도 도착합니다 침대가 없는 방 그리고 새끼 오리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구 최후의 날
모래바람이 불었습니다
작은 동물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신의 컵에서 쏟아져버린
모래알들이 목구멍을 메우면
신이여, 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모두를 구하고 싶어요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두 발로 걷습니다
어떤 이별은 즐겁게 하기도 합니다
춤을 추며 체리콕을 마시고
끝물 복숭아 냄새에
걸음을 멈추기도 합니다
한때는 나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오른다면
사과나무가 좋겠습니다
잡식성 동물이 좋아하는 과일입니다
나는 얼어붙은 강 표면 아래 흐르는 생명을 믿습니다
아무도 그 컵을 깨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작고 어린 동물들도 구할 것입니다
조개껍데기는 집이 아니라
일기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파도가 아름답게 이어지도록
나는 깨진 플라스틱을 주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