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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3장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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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공식 블로그의 한 내용입니다. 요즘 청년들을 지칭하는 단어 중에 'N포 세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N포 세대'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와 이에 덧붙여 대인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5포 세대',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7포 세대', 이를 넘어 셀 수 없는 N 가지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요즘 청년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요즘 핫 하다고 하는 신조어가 헬 조선(Hell 朝鮮) 이라는 말입니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단어 ‘Hell’과 대한민국을 뜻하는 ‘조선(朝鮮)’을 합한 말입니다. 청년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해외 유학, 해외 취업, 그리고 이민 상담에 대거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청년들은, 해외에 가서 외국인, 동양인으로 차별 받는 것이 국내에서 차별받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청년들이 평가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정의와 평등 그리고 기회는 없고, 부패와 차별로 인해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시각이 다 맞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정책이나 환경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좋은 것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인색하고, 나쁜 것만 평가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사회도 다 'Hell(지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점 ‘돈이 곧 권력’이 되어가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극단적인 이념(ideology)투쟁으로 국민을 이분법으로 양분시켜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성범죄, 향락, 자살, 교통사고, 음주 등 헤아릴 수 없는 죄와 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멸시를 당하고, 교회 다닌다고 말하면 혐오를 받고, 목회자들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이 예언한 그대로 현 시대는 말세의 징조가 나타는 시대요, 세상이 곧 지옥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디도’라는 사역자입니다. 디도가 사역하는 곳은 지중해 중간에 위치한 ‘그레데’라는 섬이었습니다. 이 섬은 해상교통의 요지로 그레데 섬 원주민 이외에, 로마인, 그리스인,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거칠었고 사회질서는 잘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기독교인들을 괴상한 신을 섬기는 집단으로 보았습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왜곡되고 변형된 믿음을 가르쳐 주는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레데 섬 교인들은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도무지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 가지 못하였습니다.
현 시대나, 디도가 사역할 시대나, 정도와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죄와 악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지옥과도 시대였습니다. 그레데 섬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사람들도 대다수가 무질서 속에서 퇴폐와 향락과 우상숭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디도는 이러한 사람들 속에서 목회를 해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렵고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가 사역하는 그레데 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디도에게 선배 사역자로서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권면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디도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도’라는 목회자에게, 지옥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도 제대로 평안 가운데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레데 섬의 교회 성도들이 지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균형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저울이 치우치지 아니하고 중심을 잡으려면 양쪽 저울에 놓인 무게추가 같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인이 지녀야 할 두 가지의 무게 추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나는 균형 잡힌 신앙인인가? 나는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이 가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신앙의 무게 중심 추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다 과거가 있습니다. 각자가 살아온 흔적은 다르지만, 구원의 관점에서 과거는 누구나 다 동일합니다. 오늘 말씀 3장 3절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라고 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한 마디로 ‘죄인이며 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려 날 수 없는 쇠사슬에 묶여 끌려 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는 죄와 악을 행하게 하는 사탄에게 종속되어 묶여있는 존재였습니다. 사탄이 주인이고, 우리는 그에게 종노릇 하는 신세였습니다. 3절에서, “우리가 전에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나와 내 모습은 더 이상 과거의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나의 모습과 행동은 내 스스로가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계획 하시고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3장 4절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도 고지식한 이유 뿐 이었습니다. 사랑하셔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은 좋은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순식간에 끝 날 텐데, 해결 방법조차 아주 고지식하고 원초적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참혹한 형벌로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왜 이토록 어렵고 고달픈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생생하게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목격하고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말로만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함께하심으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전능자의 사랑을 마음껏 표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가 사해지고, 사탄으로부터 종노릇 하던 족쇄가 풀려지고,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구원 받았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3장 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긍휼’은 참으로 불쌍 여기고 내버려 두지 않는 마음인데, 3장 4절에서 말하는 ‘자비’와 비슷한 말입니다. ‘자비’ ‘긍휼’ 안에는 사랑이 항상 포함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종 노를 하는 것이 마음 아프셔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 불쌍해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4장 5절에서 구원 받는 다는 것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생’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거듭난다(born again)’라는 의미의 ‘중생’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이곳과 마태복음 19장 28절 두 군데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의 뜻은 ‘새롭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생’은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3절에서 언급한 우리 안에 있는 과거의 모습들, 바로 모든 죄와 악을 본질적으로 씻어내는 변화의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청소하는 작업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중생’의 과정을 거친 후 ‘성령이 새롭게 하신다’고 했는데, 이는 씻어낸 장소에 거룩한 성령이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셨던 것처럼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영광으로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결국 구원받은 사람은 죄와 악에 대하여 ‘중생’된 사람, 곧 씻김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중생’되어 씻겨 진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이 새롭게 하심, 곧 성령이 내주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었지만 씻겨지고 청소되어져서 성령이 함께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6, 7절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 받은 상황을 압축한 단어가 ‘은혜’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에 대해 개입하거나 영향을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받았습니다. 나아가서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상속자’ 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제비뽑기에 이긴 자’라는 뜻으로 자기 소유를 할당 받은 소유자를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 상속자를 ‘기업을 무를 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상속자에 대해서 로마서 4장 13절에,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의인이 된 아브라함은 언약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우리들이 언약의 수혜자인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구원에 대해서 설명 드린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 복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구원 받았음을 믿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구원을 깨닫게 하고 중생으로 씻기고 새롭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자, 자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힘입어 의인이요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이시죠? ‘아멘’이라는 이 대답 하나만은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무게 추의 절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무게가 잘 지탱이 되고 기초가 되어야 다음에 말하게 될 반쪽의 무게 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씻기시고 새롭게 하심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영생의 소망과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신앙의 무게 중심 추는 ‘선한 일을 하는 삶’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으로 인해 의인이 되고 거룩한 성도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구원받은 시점부터가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비로소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직접 주도하셨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나의 삶과 행동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시지만,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나의 책임 하에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성도라면(의인이라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어졌다”고 합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가 선한 일을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셨고, 예수님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위해 자신을 주셨다고 합니다. 말씀으로 보아 우리는 반드시 선한 일을 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 중에 디도서 3장 8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도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는 자들의 삶이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본문이 말하는 ‘선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선하다’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이 말이 91번이 쓰였습니다. 번역된 내용들을 보면, 좋은 씨, 아름다운 열매, 착한 일, 선한 행동...등 대부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형용사로 쓰였습니다. ‘선하다’라는 말은 내 스스로의 본질이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점점 선하게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좋은 결실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리는 행위, 행동을 총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런데 ‘선하다’라는 말이 ‘일’이라는 말과 합성으로 자주 쓰이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취해야 하는 태도, 자세, 행동 들이 기본적으로 ‘선함’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함’이 바탕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찬양 중에,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은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악을 끊어내셨기 때문에 선해질 길이 열렸습니다. 그럼에도 자칭 스스로는 “선하다, 법 없이 살 수 있다, 나는 죄 지은 적이 없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업적을 쌓는다 하여도 예수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그 어떤 일도 결코 선한 일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선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선한 일’을 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앙의 무게는 구원 받은 것으로 끝낸다면 반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한 쪽으로 기울어서균형이 무너집니다. 균형을 맞추려면 내 스스로 의지를 발휘하여 선한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계속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 혼자 선한 일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도와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선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막연한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선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디도서 3장 8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 말씀이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 전에 꼭 선창해야 될 말씀입니다. 말씀 중에 ‘이 여러 것’ 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시를 하자면 이렇게 선포하면 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 이십니다. 구원 받았기에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나는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선언을 굳세게 말하라고 합니다. 굳세게 말한다는 말은 확실하고, 명확하게, 흔들림 없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선포가 전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선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구원을 선포하고 준비가 되었으면 선한 일(행동)을 해야 하는데, 무엇이 선한 일입니까? 우리가 선한일을 한다고 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찾아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강박관념입니다. 주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 안에서 착한 일,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주님이시고, 이루실 분도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오직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앞서 선포한 내용을 삶에서 반복적으로 선포하는 일이 곧 선한 일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나 혼자 있을 때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되십니다”라는 고백을 당당하게 선포하고 증언하는 일이 가장 ‘선한 일(행동)’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이 가장 선한 일이 되는 이유는, 첫째, 내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한다는 믿음의 확신을 갖기 때문이요, 둘째,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영혼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는 가장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기 때문이요, 셋째, 하나님 나라가 영생과 소망의 나라임을 만방에 선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일이 찬양이요 예배입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며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주님이 맡기신 선한 일을 가장 잘 지켜 나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선포하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상이 함께 할 것입니다. 로마서 2: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요한복음 5장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우리 주님은 선한 일, 즉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는 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선한 일에 동참하는 모두에게 주님 편에 서서 하늘의 모든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이 보다 더 큰 상급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선포하십시오. 증거 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선한 일입니다. 선한 일을 이루시고 또 이루셔서 주님께 큰 영광 돌리고, 우리에겐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이 주는 두 가지 무게추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의 무게 추는 구원이요, 또 하나의 무게 추는 선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 구원 받았습니다. 확신합니다. 아멘이시죠? 그렇다면, 하나의 무게 추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무게 추인 선 한일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선한 일을 잘 하고 계십니까? 지금 당장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여기저기서 마음껏 부르는 일이 쉬운 일 같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부끄럽고, 자신 없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당장은 하지 못한다 하여도,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선한 일’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은혜로 구원해 주었음을 네가 진실로 믿는다면, 앞으로 네 일생에 선한 일을 하는데 온 힘을 쏟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데로 선한 일을 하려고 마음에 준비를 하고, 행동을 취해 나간다면, 주님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옥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사랑과 소망가운데 살아갈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이름을 선포하는 ‘선한 일’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이루며 살아가느냐, 못 이루느냐 성패는 주님 안에 거하는가, 아니면 혼자 살아가는가의 문제입니다. 주님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선한 일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루지도 못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선한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각자가, 특별히 이 시대의 청년들이 주님이 맡겨 주신 가장 선한 일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증언하는 일에 힘쓰고 애쓰며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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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은혜로 구원 받은 사실을 기뻐하고 감사하지만 선한 일을 행하라는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을 선포하는 선한 일을 행하는데 힘쓰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선한 일을 행함으로, 주님이 우리 편에 서 계신다는 확신 속에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안에서 평안하시고 승리하세요~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