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몽롱한 구름을 타고, 장승마냥 서 있는 나를 향하여 무쇠의 형벌을 가하면서, 겹겹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시야 속은 온통 그들로 해서 가득하고, 어떤 날 그들은, 밀물과 썰물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 해만의 특권처럼 음탕한 6월이 숨어 버리고, 뒤미쳐 달려온 7월도 흠뻑 자란 어느 날, 나는 마을 사람들의 박꽃 얼굴빛을 본뜨고 있었다.
우리들의 뒤로는 훌훌히 버리고 뜬 푸른 산이 있었고, 가난한 이들의 집과 황량해진 논밭이 조을고 있었다.
ㅡ 거기 지나쳐 간 갖가지 슬픈 실화가 있었다.
위도와 경도가 선뜻 취해 잠꼬대를 했기, 지구 위의 조그만 귀퉁이에 불은 노도처럼 날뛰고 있었다.
낮이 걸어가는 태양 아래 가을이 익고 있을 무렵, 엎드려 피를 토한 나의 시집이 있었고, 배만 움켜진 채 신음했을 그, 일그러진 퇴색한 초가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시멘트 벗은 부엌이 설워 돌아가는 아줌마, 펌풋대 우뚝우뚝 묵묵한 공허가 있었다고, 젖내 풍기는 고사리 손을 놀려 어영차 밥도 짓고 국수도 썰고, 내 아우랑 여섯 살 짜리 계집애랑 각시 신랑 혼례식장 꾸미던 그 회상의 담장 아래로, 아 탄피가 있었고, 해골이 히쭉 웃고 있었다.
거기 슬프게 억센 아이들의 입다문 눈빛에서 무한히 겹쳐 간 밤의 살생과 야만을 읽을 수 있었다 ㅡ
위도와 겅도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만물은 다시 바위의 굳굳한 위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뒤로 미망인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시가지엔 죄인 같은 고아와 불구자의 행렬이 밀려 가고 있었다.
나의 시야 속은 어느 지점 눈 덮이는 이국 벌판 위에, 새로 생긴 공동묘지가 폭풍우를 삼켜 가면서 누워 있었다.
첫댓글 6.25 사변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시의 소재이다.
통한의 국토 분단과 참담한 전쟁 비극은 이 겨레에 영원히 씻지 못할 '피의 역사'를 찍어 남기고야 말았다.
어찌 우리가 그 비극을 슬퍼하지 않겠으며, 그 통절한 기억을 잊을 수 있는가. 그러기에 민족의 비극을 상징적 수법으로 증언하고 고발하면서, 너무나 몸서리 쳐지기에 지금은 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고, 백 년쯤 지난 후에나 상기하여 잊지 말고 부르자는 것이다.
이시는 제1시집 '피의 역사(1957. 3)'에 싣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의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