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4. 경남 의령군.
시골에 갔는데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뜻뜻한 방바닥에 모로 누워 거미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뭔가 눈과 책 사이의 방바닥에서 지나가는 듯한 느낌에 일어나 살펴봐도 없고 또 없고 하길 여러 번. 마지막에 방바닥을 기어 도망가는 녀석을 발견했습니다. 생긴 걸로 봐서 바위틈에서 자주 보았던 돌좀과 비슷해서 '돌좀이 왜 방 안에 들어와 있지?' 하면서 체포한 뒤 이끼 낀 바깥 담벽에 놓아주고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모양이 그동안 봐 왔던 돌좀과는 많이 달라서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걍 '좀'으로 불리는 좀목의 벌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빈대좀'이라 부르더군요.
등쪽은 온통 은빛이라 빛 반사가 심한데 그나마 선명한 사진으로 몇 장 골라 봤습니다. 새우를 거의 빼닮은 돌좀과 달리 걍 길쭉하고 날렵한 곤충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돌좀처럼 뒤쪽으로 기다란 꼬리 세 개가 눈에 확 띄네요. 근데 눈이 어디인겨? 잘 찍어주려고 했더니 그새 돌틈으로 쏙! 잘 가. 나 없을 때 방에 들어오지 마. 어머니께 들키며 바로 납짝쿵 돼버릴 거여.
늘 하던 대로 1차적으로 국어 사전에서 찾아 봤습니다. 국어 사전에서 '좀'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더군요.
https://ko.dict.naver.com/#/entry/koko/9ec30e718d4241699fc864386b2ea97c
- 1. 동물 좀목의 빈대좀, 나무좀, 서양좀, 작은좀, 돌벼룩좀, 수시렁좀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2. 동물 좀과의 곤충. 몸의 길이는 11~13mm이며, 흑갈색인데 비늘로 덮여 있다. 가슴은 크고 머리에 3~4개의 강모가 나 있다. 날개는 퇴화하여 없고 촉각과 꼬리는 각각 한 쌍이 있으며 꼬리 중앙에 긴 강모가 하나 있다. 의류와 종이의 해충이며 우리나라에만 분포한다.
- 3. 동물 수시렁이의 애벌레. 몸의 길이는 1cm 정도이고 둥글며, 광택 있는 붉은 갈색의 털로 덮여 있다. 누에고치나 모직물, 식료품 따위를 파먹는다.
- 4. 동물 나무에 붙어서 나무를 파먹는 나무굼벵이, 가루좀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5. 사물을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해치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예: 국가의 죄인도 되며 동포의 좀과 도적도 되고 인류의 마귀도 되나니….
이 사진의 녀석은 그 중 1번 항목의 '빈대좀'을 일컫습니다. 학명은 Ctenolepisma longicaudata coreana인데 종명에 코레아나가 들어가 있으니 우리나라 녀석이군요.
https://ko.wikipedia.org/wiki/좀
종이, 풀 등 탄수화물과 옷감에 있는 식물성 섬유를 주로 먹고 사는데 사람이 사는 주택가 주변의 어둡고 습하고 따듯한 곳에서 발견된다는데 제가 방에서 발견한 게 딱 들어맞네요. 우리 말에 '좀이 슬다, 좀이 쏠다, 좀먹다, 등이 있는데, 좀이 옛날 옷감을 잘 뜯어먹어서 그런 말이 생겼나 봅니다. 풀 먹여서 고이 접어둔 옷을 꺼냈을 때 구멍이 슝슝 나 있으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보이는 대로 손가락으로 눌러죽이거나 손바닥으로 압사시켜버렸겠죠. (혹시 '좀만 한 새끼, 혹은 존만한 새끼, 좆만한 새끼'라는 말도 원래 여기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뒷머리를 스치고... ㅋㅋㅋ)
집안에 산다는 녀석을 생각해준답시고 바깥에 내놨으니... 그래도 잘 살겠죠? 천한 것은 강하다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