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핸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1990)
[작품해설]
이 시는 기다림의 절실한 심정을 평범한 일상어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기다리는 순간의 시적 화자의 심리가 절쿄하게 표현되어 있다. 기다림을 노래하는 대부분의 시가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데 비해, 이 시에서는 ‘너’에게로 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나타나 있다. 그런 까닭으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나’의 마음은 괴롭고 지루한 게 아닌, 한없는 기대와 셀렘으로 가득 차 있으며, ‘나’를 절망의 현재로부터 끌어내어 희망의 미래로 달려가게 한다.
여기서 기다림의 대상인 ‘너’란, 화자가 사랑하는 특정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현재에는 없는 어떤 것들로 확대하여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하략)”라는 이시의 창작 후기를 참고해 본다면, ‘너’는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민주주의, 또는 자유나 평화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내용상 크게 1~12행과 13행~22행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앞부분이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너’로 하여 절망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면, 뒷부분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직접 ‘너’를 찾아 나선 ‘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앞부분은 ‘나’의 심리 변화에 따라 다시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4행까지로 기다리는 동안의 기대와 설렘을, 둘째 단락은 5~7행까지로 기다리는 동안의 안타까움을, 셋째 단락은 8~12행까지로 기다림의 절실함을 보여 주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나’는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미리 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ㄲ지도 ‘다 내게로 올’ 만큼 초조하고 설레기만 하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소리는 ‘너’의 소리가 되어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이 ‘쿵쿵거린다’는 시어는 발자국 소리 ‘쿵쿵’이 그대로 가슴에 와 닿아 정말로 가슴이 쿵쿵거리는 듯한 초조감과 설렘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전달해 줌으로써 의미와 소리의 복합적 표현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너’가 아니기에 ‘나’는 계속 실망한다. 여기서 ‘너’가 아님을 확인하고 실망하는 순간을 화자는 ‘에리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하는데, 이것은 기다림에 대한 소망과 그 상실감의 반복을 통해서 화자의 기다림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그리고 하자의 실망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에리다’의 표준말은 ‘아리다’로, ‘상처 부위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는 의미이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너였다가, 너링 것이었다가’ 결국은 ‘너’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의 실망감과, 다시 문이 닫힐 때의 절망과 고통을 ‘아리다’보다 더 큰 아픔을 느끼게 하는 ‘에리다’로 표현한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기대감과 설렘이 이렇게 실망과 고통으로 바뀌게 되자, 화자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너’가 올 때만을 마냥 기달릴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사실 ‘나’는 ‘아주 먼데서 지금도 오고 있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너’를 향해 다가 갔지만, 결코 ‘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으로 화자는 ‘너’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대신, 직접 ‘너’를 찾아 나서는 작극적인 방법을 선택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화자를 더욱 초조하고 절실하게 하는 기다림의 안타까운 순환 행위일 뿐이다. 왜냐하면 ‘나’가 ‘너’에게 가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화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너’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만 ‘너’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가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그저 상상으로만 ‘너’에게 다가갈 뿐이다.
‘너’를 만나는 시간, ‘나’는 ‘미리 가’서 ‘너’를 기다리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놓치지 않고 ‘너’와 관련짓는다. 세상 모든 것은 ‘너’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렇게 의미를 갖는다. 초조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너’를 기다려보지만, ‘너’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그 기대감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어 ‘나’를 에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마침내 ‘너’에게로 간다. 이렇게 ‘나’의 기다림은 애절하고 절실한 것이다.
[작가소개]
황지우(黃芝雨)
1952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및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혁(沿革)」 입선
1980년 『문학과지성』에 시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83년 제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4년 제8회 소월문학상 수상
1999년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시집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1985), 『나는 너다』(1987), 『게 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