乞食 밥을 구걸하며 ··· 도연명 飢來驅我去(기래구아거), 不知竟何之(부지경하지). 行行至斯里(행행지사리), 叩門拙言辭(고문졸언사). 主人解余意(주인해여의), 遺贈豈虛來(유증기허래). 談諧終日夕(담해종일석), 觴至輒傾杯(상지첩경배). 情欣新知歡(정흔신지권), 言詠遂賦詩(언영수부시). 感子漂母惠(감자표모혜), 愧我非韓才(괴아비한재). 銜戢知何謝(함집지하사), 冥報以相貽(명보이상이).
굶주림이 나를 밖으로 내몰지만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구나. 가고 가다 이 마을에 이르러 문은 두드렸으나 말을 더듬는다. 주인은 내가 온 뜻 알아채고 먹을 것을 주니 헛걸음은 아니구나. 이야기하다 보니 저녁때가 되었는데 술잔 권하면 이내 받아 마셨네. 새 친구 사귀어 마음은 기뻐 이야기하고 읊조리다 시를 지었어라. 그대의 漂母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지만 난 韓信 같은 인재가 아니라 부끄러울 뿐. 가슴에 간직한 후의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죽어서도 이 은혜 보답해드리리다.
* 漂母(표모) : 빨래하는 아낙네. 漢나라의 장군 韓信이 젊었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였으나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자 빨래하던 아낙네가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뒤에 한신이 楚王이 되자 千金을 주어 후사하였다 |
이하 동아일보= 2023-02-24 03:00
막다른 골목에서[이준식의 한시 한 수]〈201〉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굶주림이 나를 밖으로 내몰지만,
어디로 가얄지 알 수 없구나.
걷고 또 걸어 도착한 이 마을,
대문 두드리고는 우물쭈물 말을 못한다.
주인이 내 마음 알아채고,
음식을 내왔으니 헛걸음은 아니로다.
종일토록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술이 나와 드디어 잔까지 기울인다.
새로 사람을 사귄 흐뭇한 마음,
말을 나누고 읊조리다 마침내 시까지 짓는다.
그 옛날 은혜 베푼 빨래터 아낙네처럼 그대가 고맙긴 해도,
내 한신(韓信)의 재능이 없으니 부끄럽구려.
어떻게 감사드릴지 마음속에 간직하고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아드리리다.
飢來驅我去, 不知竟何之.
行行至斯里, 叩門拙言辭.
主人解余意, 遺贈豈虛來.
談諧終日夕, 觴至輒傾杯.
情欣新知歡, 言詠遂賦詩.
感子漂母惠, 愧我非韓才.
銜戢知何謝, 冥報以相貽.
―‘양식 구걸(걸식·乞食)’ 도잠(陶潛·365∼427)
흔연히 벼슬을 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도연명.
손수 농사도 짓고 이웃 농부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등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듯했다.
한데 어쩌다 지금은 양식 구걸에까지 나선 것일까.
‘궁핍 속에서 절개만을 굳게 지키며/추위와 주림은 싫도록 겪은
’(‘음주’ 제16수) 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은자의 존엄과 고결함을 허무는 이 빈궁한 처지를
시로 옮기는 심사가 오죽 곤혹스러웠으랴.
상대에게 보은할 길이 없음을 자인해야 했기에 시인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측근 한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한신이 굶주릴 때 빨래터 아낙네가 수일간 식사를 제공했고
후일 한신이 그 은혜를 후하게 보답했다는 이야기다.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겠다’는 다짐은 막다른 지경에 이른
시인의 유일한 해결책이자 자기 위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연명의 충실한 계승자 왕유마저도 이 시에 대해서는
‘세상 물정을 외면한 채 큰 것을 망각하고 작
은 것을 고수한’ 탓이라며 못마땅해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