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사고-비싼 집값, 더 이상은 못 버텨”… 미국인들 ‘脫USA’
복지-치안 좋은 유럽에 이주 급증
포르투갈內 미국인 10년새 3.5배로
“유럽에서는 흑인이라고 총에 맞을까 걱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난해 포르투갈로 이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탠리, 실비아 존슨 부부가 영국 시사매체 이코노미스트에 한 말이다. 각각 심리학자, 변호사로 고학력자인 이 부부는 미국의 인종 갈등과 차별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이주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0년 백인 경찰의 목 조르기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태가 결정적이었다고 털어놨다.
3일 이코노미스트는 존슨 부부처럼 ‘탈(脫)아메리카’를 택해 유럽으로 건너온 미국인이 급증했다고 진단했다. 정치 경제적 양극화, 인종 갈등, 총기 사건 등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지고 있는 데다 미국보다 경쟁 강도가 낮고 긴 휴가가 보장된 유럽의 근무 환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과 생활비, 우수한 복지 제도 등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고 분석했다.
미국 근로자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최소 35시간이다. 반면 유럽 근로자의 평균은 30시간, 네덜란드는 27시간에 불과하다. 프랑스 등에서는 여름휴가만 한 달을 넘게 쓰는 근로자도 많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대도시의 비싼 집값이나 생활비와 비교하면 어지간한 유럽 대도시의 집값과 생활비 또한 미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네덜란드의 미국계 민간 교류재단 ‘존애덤스연구소’ 측은 “미국인들은 네덜란드의 워라밸에 크게 만족한다”고 분석했다. 웬만한 곳에서는 영어가 통한다는 점도 많은 미국인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요소다.
국가별로는 유럽 내에서도 생활비가 싸고 문화유산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한 포르투갈이 특히 인기다. 2013년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2800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약 3.5배인 9800명으로 늘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2010∼2011년 남유럽 경제위기 등을 겪은 포르투갈은 경기 부양을 위해 월 소득이 1100유로(약 157만 원)만 넘으면 외국인에게도 거주 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외국인 유치에 적극 나섰다. 같은 기간 이웃 스페인에 거주하는 미국인 또한 2만 명에서 3만4000명으로 증가했다. 네덜란드 역시 1만5500명에서 2만4000명으로 늘었다.
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