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사 부른 기강 해이
동대문에 야구장이 있었던 사십여 년 전, 영·호남이 결승전에서 붙은 고교야구의 야간 경기를 보고 내가 출구로 나올 때였습니다. 만석을 이뤘던 관중은 경사로에서 한꺼번에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렸다면 대참사로 이어질 공포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범죄자들은 밀집을 뚫고 내 손목의 예물 시계를 잡아떼려고 애썼지만 내가 그 손을 세게 내리쳐서 막아냈습니다.
요즘 출퇴근 때 ‘골드라인’이라는 서울지하철 9호선을 타면 2호선의 열 량 편성과 달리 여섯 량이라서 차내의 승객은 이리저리 극심하게 밀립니다. 만약 여섯 량이 길고 긴 한 칸짜리라면, 혹은 여섯 량에 손잡이가 없다면 꼼짝없이 한쪽으로 쓰러지는 대참사가 일어날 풍경입니다.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일어난 이태원의 젊은이들 대 압사 비극은 경찰이 과밀과 무질서가 빚은 물리적 현상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확보하는 예방경찰 임무를 망각한 게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 그날 정부 비판 집회가 인근에서 열렸다는데 수사와 재판에서 경찰은 책임을 축소하려고 온갖 핑계를 댈 것입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압사 위험성을 112에 처음 신고한 것은 29일 오후 6시 34분. 사고 발생 거의 4시간 전으로, “지금 너무 소름 끼쳐요….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지금 아무도 통제 안 해요.…”라며 경찰의 개입을 요구했죠. 인파 분산 대책이 화급했지만 경찰은 예방 대책을 외면함으로써 예견된 사고를 방치했죠. 사후의 119 신고는 빨리 살려달라는 절규였습니다.
용산경찰서 정보관은 핼러윈 인파가 몰려 사고 위험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내부망에 올렸지만, 이를 묵살하다가 참사 이후에 삭제한 정황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수사하자 용산서 정보계장이 자살했다는 겁니다.
용산경찰서장은 전임인 구례경찰서로 착각했나, 시골 영감처럼 느긋하게 설렁탕 잡수시고, 이는 쑤셨나 안 쑤셨나 모르겠지만, 어슬렁어슬렁 고가구 거리를 뒷짐 지고 배회하고, 3층 건물 옥상에서 사고를 지휘(?)했다고 하는데요. 지휘는 핸드폰, 수신호, 무전기 뭐로 했나요? 이게 10대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최고 요지의 경찰서장 상(像)인가 경악했습니다.
핼러윈 축제에 10만 인파가 모인다고 홍보대사처럼 수다를 떨면서 안전을 경고하지 않은 방송들, 특히 “수도권 지역 교통정보를 신속히 제공하여 차량 소통에 도움을 주고…”란 설립 목적을 가진 교통방송 TBS는 김어준에게 온갖 것을 떠벌리게 하면서 이태원의 핼러윈 인파 밀집 교통상황과 위험성을 경고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해 지역 치안 최고 책임자인 용산경찰서장이 사고 발생을 45분이 지나서야 알았고 대통령이 전화해도 되걸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후진국이 되었습니다. 행정안전부 내의 경찰국 신설이 아직도 불만인가요? ‘검찰수사 완전박살’로 검찰의 대형참사 수사권이 없어지자 경찰이 제 식구끼리 수사하는 꼴이라니요.
류미진 총경이 112상황실을 지켜야 하는 건 국군이 전방 관측초소를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임무인데 관행으로 자리를 비웠다는 겁니다. 하기야 경찰청장조차 다음날 참사 상황을 알았다니, 잠든 간부들을 깨우도록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차고 있던 손목 자극 시계를 줬어야 했을까요?
이런 때 좌익들은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성공회와 천주교의 ‘듣보잡’ 들이 해외 정상회담에 참석한 대통령의 비행기야 떨어져라, 경찰, 여러분들에겐 무기고가 있다고 악마적으로 설치다가 내란선동으로 고발되었습니다.
사사건건 트집 잡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 와중에도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를 안은 사진이 ‘빈자 포르노’라고 견강부회하여 비하합니다. 그런 XX포르노가 학술용어라면 학술대회에서나 쓰시죠. 측근도 모른다고 부인하던 민주당 사람은 그럼 지금 ‘재난 포르노’ 찍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개인을 위해, 민주당은 거당적으로 나섰지만, 핼러윈 사고 예방을 위해 야당은 그 흔한 경고 성명 하나 안 냈었죠. 사후에 수사 강제성이 없는 이태원 국정조사나 하자고 합니다. 말 폭탄을 마음껏 던지며 추 모 장관의 표현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거겠죠.
세월호 조사에 수천억 원의 세금을 쓴 문재인 정권은 사회적 참사 예방을 위해 무슨 교훈을 얻었고 무슨 대책을 세웠나요. 위원들의 일자리 창출이었나요. 효과가 의문시된 재난 안전통신망 구축에는 1.5조 원을 들였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 대통령 탓을 할 거면 다른 유관기관의 공직자들은 왜 월급을 받는지, 좀 더 파고 들자면 국회를 완전 장악한 민주당 지도부는 사고 발생을 몇 시에 알았고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 나는 궁금합니다. 그 힘으로 왜 압사 사고 방지법은 안 만들었을까요?
김병민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당 회의에서 발언한 대로 정치권은 정쟁을 하지 말고 무고한 국민의 희생에 대한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야당 일각에서 이태원은 제2의 세월호라고 주장하는데 그때의 해경, 지금의 경찰을 보면 복사판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습니다.
당시 진도 VTS(해상교통 관제시스템)가 교신한 내용을 보면 긴박감이 부족했죠. 현장 출동은커녕 대형 사고가 코앞에서 시시각각 진전될 상황인데도 어슬렁거리던 당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의 모습에서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을 떠올립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국민의 기대와 달리 대통령이 너무나 부드럽게 나가니까 공직자들이 우습게 보고 공무원 기강이 땅에 떨어진 게 아닌가요. 정권교체를 하면 공직자의 자세를 먼저 잡아야 합니다. 특히 입법, 사법, 행정부 도처에 문재인과 민주당 알박기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죠.
그러니까 검찰은 탈원전이건, 대장동이건, 귀순어부 강제북송사건이건, 산자부 블랙리스트건,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 수사 사건이건 범법자들을 하루빨리 사법처리하고 재판도 빨리 진행하도록 김명수 사법부에도 촉구해 국가 기강을 확립하여 일급 피의자들이 되지 않는 소리를 가볍게 하는 입도 닫게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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