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동창인 나의 친구 박종화
그의 형은 우체부였다.
당시 우체부는 부지런하고 정직한 인간형의 대표였는데
그런 집안의 아이였던거다.
어느날 종화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학교 뒤뜰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물을 마시다가
가지고 온 돈을 흘렸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사친회비를 내려고 가지고 온거였을 거다.
공부 쉬는 시간에 물 마시러 나온 종화가 이걸 주워서
선생님에게 드렸다.
참 요행이었다.
이게 미담으로 전해져서 신문에도 기사가 났다.
이걸 전해들었는지
당시의 치안국장이 종화를 데려갔다.
이로 인해 시골 초등학생이 서울에 가서 취직을 했던 거다.
횡재가 이만저만인가...
그러다가 4. 19 혁명이 일어나더니
치안국장은 어디로 숨어버리고
종화는 청년이 된 모습으로 낙향했다.
당시 나는 공주에서 사범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름방학에 서로 만났다.
알고보니 종화는 치안국장 사택에서 마당쇠나 했던 모양이었다.
야간학교라도 보내주지 으이구우 참! ...ㅠㅠ
그 뒤에 종화는 무얼 하는지
동창회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을 숨기며 살았을 거다.
미담의 주인공이 이렇게 되어 나는 내내 씁쓸하기만 하다.
오늘도 들에 산에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대는데...
첫댓글 돈 주워서 찾아 주라고
돌려 주는거.당연한거 이지만.그 시절
너무 가난했기에
착복하기가 일쑤 였나 봅니다
시골에서 학교 다닐땐
돈이란거 구경하기도 어려웠다네요.ㅎ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겁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면 어디서나 인정받지요
좋은 동창을 곁에 두셨습니다
편안한 금요일 되십시오
그러게요.
그땐 참 희귀한 일이었는데요.
그런 착한 사람 을 데려다가 마당쇠 만 시킨 사람도 문제 이긴 한데
왕대 숲 쳐다 보고기만한 분도 안타갑긴 하네요 ^^
나빠요 그분
처분만 바란 내 친구도 좀 맹했고요.ㅎ
사람은 누구를 만나
어떤 인연이 되는지도 참 중요한거 같네요
요즘은 카드를 소지하고 다녀서
그런지 천원짜리 한 장 줍기도 힘들어요 ㅎ
맞아요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하지요.
천원을 찾나요?
내 뒤를 따라와요
그러면 신사임당 사진이라도 흘릴테니까요.ㅎ
그 치안국장님
신문에 사진도 나고
좋은일 한다고..친구분은
어디서 맘잡고 잘살고 계시겠지요
그 치안국장은 남을 도와줬다고
신문에 나고
으이궁ᆢ.
당시 치안국장은 이강학이었고 법무장관에서 내무장관으로 자리 이동한 홍진기와 대통령 경호실장 곽영주는 발포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곽영주는 사형집행 되었고 홍진기는 이병철의 도움으로 살아났지요. 홍진기 그가 삼성 이재용의 어머니 홍라희의 아버지이며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의 아버지이지요.
그런데 내 기억이 잘못된것 같네요.
조인구 댁으로 알고있는데요.
당시 신문 가십 중에
꽉 영 죽었다 란 글이 기억나지만.ㅎ
@난석 당시는 시위가 확산되는 혁명와중이라
다급해진 이승만대통령이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자리 이동이 많았습니다.
@삿가스. 맞아요.
내 친구는 조인구 사택에 있다가
낙향했는데
조인구는 20년 숨어 지내다가 시효 만료 되었을때 나타났다는 기사가 있었죠.
ㅎㅎㅎ 좋은 친구와의 연락이 두절 된 점이 많이
아쉽네요
착한 사람은 어디가든 복받으며 잘 살 것입니다.
성실함은 언제인가는 돋보이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야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요.
종화란 그분 착하니까
잘 살고 있겠지요
근데 요즘은 사람 찾을려고 해도
개인정보 때문에 찾을 수 없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일년에 단 한번 만이라도 사람찾는 시간을 국가에서 만들어 줬음 좋겠네요
전엔 스승의 날에 스승 찾기 지원도 했는데요.
그런 착한 사람드문데
어찌 그런일을 시켰을까요
양심 없는 분이시군요.
친구분 잘 살고 계실 것 같아요
사월 봄꽃처럼 아름답게
참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었죠.
그런사람 많아요.
아랫사람을 종으로 아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