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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윤용구, <묵죽도(墨竹圖)> 20세기 초/이회영, <석란도(石蘭圖)> 1920
비단에 먹(絹本水墨), 128.9×40.6cm/종이에 먹(紙本水墨), 140.0×37.4cm
왼쪽 <묵죽도(墨竹圖)>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 1853~1939)는 조선 말기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한 관료이자
서화가이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관직을 수락하지 않고, 서울 근교 장위산(獐位山)에
은거하며 서화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철저한 근황주의자로 경술국치 이후에는 “완민(頑民)
으로 불사이군”이라는 말을 남기며 일제가 주는 작위를 거절했다. 완민은 고대 중국에서 주
(周)에 패하고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상(商)의 귀족을 말한다.
그는 물구나무 선 세상을 은유하는 거꾸로 자라는 도수죽(倒垂竹)을 많이 그렸다. 또한 중국
청대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화가 정섭(鄭燮, 1693~1765)의 제화시를 담은 묵죽을 많이 그
렸다.
春雷一夜打新篁 한 밤중 봄 우레가 어린 대를 흔들어
解籜抽梢萬尺長 껍질 벗고 만 척이나 자랐구나
最愛白方窗紙破 구멍 뚫린 남쪽 창 사이로
亂穿青影照禪床 맑은 그림자 책상에 비칠 때를 가장 사랑한다오
오른쪽 <석란도(石蘭圖)>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1867~1932)은 경술국치 이후 형제들과 재산을 처분
해 서간도로 망명하고, 1912년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
소를 설립하였다. 우당은 군자금을 마련하게 위해 묵란을 그려 팔았는데, 판매를 위해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 화풍으로 그리고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이회영의 묵란은
5점이 전하지만 개인 소장의 이 묵란이 그중 유일하게 이회영의 서명이 있는 작품이다. 그는
1932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15. 지운영, 황철, <산수도>/안중식 등 10인, <서화미술회합작도> 일부, 1917
비단에 색(絹本淡彩), 250.0×84.0cm/비단에 색(絹本淡彩), 163.5×36.8cm
왼쪽 <산수도>
높이가 2.5m에 달하는 이 대형 산수화는 황철이 마지막까지 작업했던 유작인데, 그가 죽은
2년 뒤 서울에서 지운영이 완성한 작품이다.
지운영이 쓴 제발 중 일부이다.
萬事浮雲一葦航 세상만사 뜬 구름 같이 조각배 하나로 떠돌다
天涯涕淚落滄桑 하늘 끝에서 인생의 허무함에 눈물 흘리며
聊將翰墨消餘景 애오라지 문필로서 여생을 보내다가
幸賴芝蘭慰獨傷 다행히 어진 벗 덕분에 마음의 상처를 위로했네
遺畵丹靑敎我畢 자네가 남긴 그림의 채색을 나더러 완성하라기에
永珍山水見君光 영원하고 보배로운 산수화에서 자네 빛을 보네
鬼神鞭勿輪廻入 귀신의 채찍 휘둘러 윤회의 바퀴에 들어가지 말고
顧向西方淨土場 서방정토로 향하여 훨훨 날아가기 바라네
오른쪽 <서화미술회합작도> 일부
1917년 음력 10월 서화미술회의 스승과 제자 출신 서화가 10인이 함께 완성한 합작 10폭
병풍의 일부다. 이 작품은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이 송학을 그린 ‘송령학수(松齡鶴
壽)’다.
17. 안중식 등 10인, <서화미술회합작도> 일부, 1917
각 비단에 색(絹本淡彩), 163.5×36.8cm
오른쪽부터, 안중식, 김응원(金應元, 1855~1921), 노수현(盧壽鉉, 1899~1978), 김은호
(金殷鎬, 1892~1979), 이한복(李漢福, 1897~1944), 최우석(崔禹錫, 1899~1965), 강진
희(姜璡熙, 1851~1919), 강필주(姜弼周, 1852~1932)가 각각 완성하였다.
18. 강필주,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20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각 122.9×30.1cm
강필주(姜弼周, 1852~1932)는 호가 위사(渭士)로 생애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제발의 내용이다.
오른쪽은, 昔時沼上鹿 何事至於期(옛날 연못 위의 사슴, 무슨 일로 그 때에 이르렀을까)이고
왼쪽은 不羞老圃秋容淡 且看寒花晩節香(묵은 밭 걱정이 없으니 가을 모습 담백하고, 또 국
화를 보니 늦은 계절에 향기를 풍기네)이다.
19. 이상범, <유마도(柳馬圖)> 1919/안중식, <팔준도(八駿圖)> 1913
비단에 색(絹本彩色), 156.5×33.7cm/비단에 색(絹本彩色), 144.5×40.5cm
왼쪽 <유마도(柳馬圖)>
버드나무 아래 말 한 마리가 거닐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상범의 작품으로 그의 나이 23세 때
그린 기년작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화면 우측에는 이상범이 중국 당나라 시인 평증(平曾)이 말을 주제로 한 <집백마시상설복
사(縶白馬詩上薛僕射)> 시 구절 중 “북쪽 향한 긴 슬픔 천하가 멀고, 바람에 비스듬히 서 있
으니 해가 돌아오도다(向北長鳴天下遠 臨風斜拱日邊還)”를 직접 적었다.
오른쪽 <팔준도(八駿圖)>
여덟 마리의 뛰어난 말이라는 뜻의 팔준도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탔던 말을 그린
그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제시의 내용이다.
穆滿當年物外程 주나라 목왕은 당년에 세속 밖에서 노닐었으니
電腰風脚一何輕 번개 같은 허리와 바람 이는 발굽은 하나 같이 어찌 그리 경쾌했던지
如今縱有驊騮在 지금은 비록 준마가 있다 하더라도
不得長鞭不肯行 긴 채찍 얻지 못해 잘 가려하지 않으리라
출전 : 唐 나은(羅隱), <八駿圖>
20. 안중식,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1914
비단에 색(絹本彩色), 각 211.0×33.7cm
기명절지도는 진기한 청동기, 꽃병, 화분 등의 기명이나 문방구를 꽃과 과일, 채소 등과 어울
리게 배치하여 복과 장수, 평안함 등을 축구하는 길상화의 일종이다. 개화기 이후, 장승업이
기명절지를 유행시켰고 근대 서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각 화면 상단에는 중국 원대 문장가 이기(李祁)와 고영(顧瑛, 1310~1369)의 시를 옮긴 제
시가 적혀 있다.
吳雲楚樹碧離離 오나라 구름과 초나라 나무가 푸릇푸릇하고
手折瑤花半醉時 손수 꺾은 아름다운 꽃에 반쯤 취해 있을 때
湘珮影搖秋浦月 상수의 구슬 그림자 가을 포구의 달빛에 춤추고
鳳凰翅冷玉參差 봉황은 맑은 옥처럼 날아가네
國色名花生盛唐 모란은 이름난 꽃으로 성당에 생겨나
畵圖留得幾枝芳 그림으로 한 줄기 향기를 남겼네
珠簾不動微風起 주렴은 흔들리지 않는데 미풍이 일어나니
猶帶開元粉膩香 마치 개원 연간의 진한 향기를 지닌 듯하다
21. 오세창 등 14인, <합벽도(合壁圖)> 1920~1933/오일영, <봉래현수도(蓬萊獻壽圖)> 1920년대
종이에 엷은 색(紙本淡彩), 170.8×63.0cm/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각 120.0×30.0cm,
홍익대학교박물관
왼쪽 <합벽도(合壁圖)>
1920년대를 대표하는 서화가 14명이 각각 글과 그림을 나누어 그린 합작도이다. 참여한 작
가는 해강 김규진, 위창 오세창, 성당 김돈희, 죽농 안순환, 석장 안종원, 금강산인 김진우, 관
재 이도영, 벽산 정대기,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이다.
참석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 중 하나였던 노수현이 이제 막 땅에 올라오는 죽순을 그린
점이 이채롭다.
오른쪽 <봉래현수도(蓬萊獻壽圖)>
‘신선을 만나러 가는 동자’이다. 정재 오일영(靜齋 吳一英, 1890~1960)은 조선 말 역관 출
신 서화가 오경석의 손자이자 오세창의 조카이다. 그는 1911년 22살의 나이에 서화미술관
에 입학하여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그림을 배웠다.
22. 안중식,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 1913/안중식, <도원행주도> 1915
비단에 색(絹本彩色), 164.4×70.4cm/비단에 색(絹本彩色), 143.5×50.7cm
왼쪽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
‘복사꽃 동산으로 가는 배’이다. 안중식은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화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도원도를 남긴 화가이다. 이 작품은 날카롭게 각진 산봉우리의 윤곽, 중첩된 산세의 과
장된 표현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색 등에서 안중식 청록산수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
준다.
오른쪽 <도원행주도(桃園行舟圖)>
도화원기의 내용 중 배를 타고 물길을 지나 화사한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 입구에 다다른 어
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제시의 일부이다.
漁舟逐水愛山春 고깃배로 물 따라 가서 산을 사랑하는 봄철에
兩岸桃花夾古津 양쪽 언덕 복사꽃은 오래된 나루터에 꽉 차 있구나
坐看紅樹不知遠 앉아서 붉은 복사꽃을 보노라니 먼 줄을 모르겠고
行盡青溪不見人 맑은 계곡 끝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구나
山口潛行始隈隩 골짜기 어귀로 은밀히 가니 처음에 외졌는데
山開曠望旋平陸 산이 열린 곳을 아득히 바라보니 곧 너른 땅이구나
遙看一處攢雲樹 구름과 나무가 빽빽한 한 곳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近入千家散花竹 가까이 다가가니 일천 가구에 꽃과 나무가 흩어져 피어있다네
樵客初傳漢姓名 나무꾼이 처음에는 한나라의 성명을 전하는데
居人未改秦衣服 그곳 주민들은 아직도 진나라의 의복을 바꾸지 않았다네
출전 : 당 왕유(王維), 「桃園行」
24. 안중식, <촉석루도> 1913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92.0×41.5cm
<촉석루도>는 진(晉)나라 시절인 354년 3월 3일 저장성의 난정에서 사안(謝安)을 비롯한
42인의 문인들이 어울린 난정수계(蘭亭修稧)를 본받아 1913년 봄 날 진주 촉석루에서 열린
시회를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장지연의 ≪위암문고≫에 따르면 시회는 정규석, 박규영,
박재규, 정홍석 등 십여 인과 함께 열렸다고 한다.
25. 김규진, <난죽도> 1922
종이에 먹(紙本水墨), 각 130.3×40.3cm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은 국제적 세련미를 갖춘 난죽도에 일가를 이루었다.
5폭의 제발이다.
長生不老神人府 오래 살고 늙지 않으니 신선의 집이고
畀天同壽對人家 하늘이 같은 수명을 인가에 내려주도다
6폭의 제발이다.
萬里風吹山不動 만리의 바람 불어도 산은 움직이지 않고
百年流積水無量 백년을 계속 흘러도 물은 헤아릴 수 없네
26. 이도영, <석굴수서도(石窟授書圖)> 1922
비단에 색(絹本彩色), 182.2×85.3cm
‘석굴에서 비서를 받는 신라 김유신’이다.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은 안중식 사후 와해되었던 서화협회를 재건하고 1921년 서화
협회전람회를 출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석굴수서도>도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이었던 이도영이 무감사 참고품으
로 출품했던 작품이다.
삼국사기 제41권 열전 김유신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신라 진평왕 28년인 611년
17세가 된 김유신이 중악(中嶽)의 한 석굴에서 난승(難勝)이라는 노인에게서 비서(秘書)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27. 김은호, <미인도> 20세기/최우석, <승복무희도> 1920년대
비단에 색(絹本彩色), 117.0×41.5cm/비단에 색(絹本彩色), 117.0×41.5cm
왼쪽 <미인도>
김은호(金殷鎬, 1892~1979)는 1912년 서화미술회 강습소의 제2기로 입학하여 안중식, 조
석진을 사사했으며 20대에 세 차례에 걸쳐 순종의 어진을 그리고 창덕궁 대조전 벽화를 그
리는 등 젊은 시절부터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화면 구성과 소재, 채색 기법 등에서 당시 일본 미인도의 영향이 있지만 일제강점
기 채색인물화의 큰 흐름이 된 미인도의 특징을 보여준다.
오른쪽 <승복무희도>
정재 최우석(鼎齋 崔禹錫, 1899~1965)은 1915년 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여 안중식,
조석진을 사사했으며 1918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에 <포은공>을 시작으로
<충무공>, <고운선생>, <을지문덕>, <동명> 등이 입상해 역사인물화가로서 자리매김하
였다. 그는 역사인물화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산수화와 인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29. 최우석,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1936, 부분
종이에 먹(紙本水墨), 212.3×309.0cm
1920년대 일본 화풍의 영향을 받았던 최우석은 1930년대 이후 전통적인 수묵담채로 작품경
향을 전환하였다. 1936년 제15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출품하였던 이 작품은 최우석의 변화된
화풍을 잘 보여준다. 스승이었던 안중식의 기명절지도가 분명한 형태와 명암, 섬세하고 감각
적인 색채로 형태가 특징인 반면, 최우석은 오로지 수묵을 이용하여 수채화 같은 가벼운 분
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제발의 내용이다.
오른쪽부터 1폭
醉上淮山喚八公, 白鸞騎到廣寒宮
취하여 회산에 올라가 팔공을 부르고, 흰 난새 타고 광한궁에 이르렀네
출전 : 명나라 장이녕(張以寧)의 유원초계화도(劉元初桂花圖) 시 1, 2구이다.
2폭
蹇驢昨日玄都觀, 認得夭夭竹外枝
다리 저는 나귀가 어제 현도관에 이르러, 어리고 고운 꽃들이 대숲 너머 가지임을 알았네
출전 : 명나라 사승거(謝承擧)의 제도화(題桃花) 시 3, 4구이다.
3폭
日暖風柔逞豔姿, 花神獨立小春時
햇볕 따뜻하고 바람 부드러워 아름다운 자태 드러내니, 꽃의 신이 소춘 시절에 홀로 섰네
출전 : 명나라 사승거(謝承擧)의 제도화(題桃花) 시 1, 2구이다.
4폭
翠帷高捲出傾城, 井髻凝妝別有情
푸른 장막 높이 말고 나가면 성을 기울이는데, 머리 틀어 올리고 단장하는 데에는 따로 정이
있다네
출전 : 원나라 왕운(王惲)의 제전순거목단절지도(題錢舜擧牧丹折枝圖) 시이다.
5폭
疑松亦疑石 소나무 같기도 하고 돌 같기도 한데
森然同挺植 삼연히 함께 곧게 심어졌네
倘有鶴飛來 학이 날아온다면
應錯敎認識 응당 잘못 알아본 것이라
6폭
含露忍低垂 이슬 머금고 고개 숙였다가
從風時偃仰 바람 따라 때로 끄덕이네
翠莝葉正繁 푸른 가지에 잎 무성하니
素蘂香初蕩 흰 꽃술의 향기 비로소 넓게 퍼지네
30. 박승무, <도원도> 20세기 초
비단에 색(絹本彩色), 각 폭 169.8×52.4cm
박승무(朴勝武, 1893~1980)는 1911년 설립된 서화미술원 출신으로, 안중식 문하에서 그림
을 수련하였다. 각 화면 제시 끝에 ‘소하(小霞)’라는 백문방인 1과가 찍혀 있는데, 소하는 박
승무가 1926년까지 사용하던 호이다.
제시의 내용이다.
碧嶂淸溪遠近春 푸른 산 맑은 시내 원근이 봄날인데
柴荊鷄犬接芳隣 사립문 울타리에 닭과 개 이웃하네
花開酒熟身無事 꽃도 피고 술도 익고 내 몸도 무사하니
便是桃園畵衰人 이는 바로 도원을 그리는 쇠로한 사람이네
출전 : 청나라 화가 전두(錢杜, 1763~1844),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 화제
半煙半雨江橋畔 안개 반 비 반 내리는 다리 가에는
映杏映桃山路中 산길 가는 도중에 살구꽃 복사꽃 어리비치네
會得離人無限意 일찍이 시인의 무한한 뜻 얻었는데
千絲萬絮惹春風 허구 많은 버들개지 봄바람을 일으키네
출전 : 당(唐) 정곡(鄭谷, 849~911), <柳>
31. 김은호, <산수도> 1918
비단에 색(絹本彩色), 각 폭 152.0×52.5cm
김은호의 이 작품은 험준한 산봉우리가 중첩된 가운데 좁은 계곡을 통해 산으로 들어가는 은
자의 모습이 그려진 전형적인 관념 산수화이다. 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조석진과 안중식으
로 배운 산수화풍을 잘 보여준다.
제시의 내용이다.
高嶺外聽淸風作 높은 재 밖에서 맑은 바람이 잠깐 일어 마을에 불고
起吹落半天鐘磬 반공에 울려 퍼지는 종과 경쇠소리 듣는다
雨齋衆山碧 비가 개니 뭇 산들이 푸르고
松翠濕衣裳 소나무 푸르르니 의상이 젖네
落日照溪路 지는 해 시냇가 길 비치어
回頭人影長 머리 돌리니 사람 그림자 길구나
32. 김규진, <난죽도> 1927
비단에 먹(絹本水墨), 각 폭 205.0×50.4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김규진의 이 난죽도 병풍은 1927년에 제작하여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사군자에 능했던 그답게 다채로운 묵죽도와 묵란도를 2폭씩 번갈아가며 배치하여
총 10폭의 병풍으로 완성하였다. 서화가 분리되기 직전, 서예 분야에서 마지막으로 출품된
사군자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3. 김규진, <난죽도> 1927, 부분
34. 김규진, <난죽도> 1927, 부분
35. 김규진, <난죽도> 1927, 부분/이상범, <추강소림도(秋江少林圖)> 1918
맨 오른쪽, 비단에 색(絹本彩色), 144.0×39.5cm, 홍익대학교박물관
맨 오른쪽 <추강소림도(秋江少林圖)>
이상범의 초기 산수화풍을 보여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화면에는 중국 북송 문인
소식의 <書李世南所畵秋景> 중 한 수를 제시로 남겼으며, 이상범이 젊은 시절 한 때 사용했
던 ‘산농(汕儂)’이라는 호가 함께 적혀 있다.
野水參差發漲痕 들녘 물 들쑥날쑥 불었던 자취를 드러내고
疏林欹倒出霜根 성근 가지 삐쭉빼쭉 서리에 뿌리를 드러냈네
扁舟一櫂歸何處 조각배 노 저어서 어디로 돌아가나
家在江南黃葉邨 우리 집은 강남의 황엽촌에 있다오
36. 노수현, <신록> 1920년대
비단에 색(絹本彩色), 204.0×312.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심산 노수현(心山 盧壽鉉, 1899~1978)은 1915년 서화미술회 부설 강습소에 입학하여 안중
식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1918년 졸업 이후 안중식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이상범
과 함께 수학했는데, 이때 안중식으로부터 ‘심산’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 작품은 봄기운이 가득 찬 시골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완성한 대작이다. <신록>은 그의
1920년대 대표작으로 전통적 산수화에서 근대적 산수화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근대 서화의
걸작 중 하나이다. 작품 뒷면에 노수현의 모교인 ‘보성학교’의 교인이 찍혀 있어 학교의 의뢰
를 받아 제작했거나 직접 기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멀리 펼쳐진 산과 마을이 어우러진 이상
적인 산수풍경과 함께 커다란 기와집이나 시냇물 옆으로 나 있는 밭 등의 친숙한 풍경이 조
화를 이루고 있다.
첫댓글 분에 넘치게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기도 벅찬데, 화폭을 일일이 사진에 담고, 시를 옮기고 번역하느라 고생많으셨네요. 쌩유.
글게요~ 일 하시믄서 이거 다 정리한것도 대단하시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