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4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는 전쟁이 끝난 직 후 약속이나 한듯 동 서 진영이 이념으로 갈라지며 소련이 회복 및 점령했던 동유럽은 사회주의 노선으로 미국을 필두로 회복하고 점령했던 서유럽은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노선으로 갈라서며 이념의 대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그 즈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을 필두로 서방 진영은 소련을 필두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한 공산 진영에 대항해 서방 군사 조약기구인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를 창설하게 된다.
하지만 한 편으로 전후 애매모호한 지역이 있었으니 바로 이나라가 터키가 되겠다.
터키는 아시아도 아니여, 그렇다고 유럽도 아니여, 근데 소련 옆에 붙어있어 소련과의 군사적 마찰로 허구한날 소련의 무력과시등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하여 터키 역시 NATO 가입을 여러번 원했으나 번번히 무산되고 말았다.
아무튼 유럽의 사정은 그렇게 이념의 분리가 되고 있던 이 시기, 동시에 극동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했던 연합군 세력들이 일본 본토를 전후 분할 통치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 본토의 분할 통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미스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현재 일본의 대기업들은 전범기업이라하여 대기업 규제를 대폭 강화했는데 이 정책이 오히려 일본내 중소 기업을 육성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굉장한 보약이 되었다. 이 정책은 독일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독일의 BENZ, BMW 같은 회사들은 전범기업으로 낙인찍혀 규제 강화 대상이 되자 독일내 중소 기업이 육성되는 향후 독일 경제의 전화위복이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당시 극동아시아 상황 역시 이념의 대치로 인하여 심상치 않게 돌아가게 되니, 일본과 한반도에 강대국의 눈 독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긴박하게 돌아간 한반도에 이념의 대립이 극으로 치닺기 시작 하자 미국은 사회주의 확대를 막기 위해 전범국인 일본 보다 한국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리하여 38도선 이북은 소련군이 진주하고 그 이남은 미군이 진주하여 신탁통치라는 사회 안정화를 꾀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여건이 그러하지 못한지라, 한반도내 신탁통치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게 되자 양국은 한반도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한반도에서 떠나게 되었는데, 소련군은 두만강을 건너가면 그만이었지만 미국은 그러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일본에 진주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는다는 양국의 약속을 믿고 에치슨라인, 즉 극동방어선이 생기게 된다.
여야무야 한반도 역시 잠시잠깐 안정이 되어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한반도에서 김일성을 필두로한 공산 세력이 남침을 개시하게 된다.
이에 똥줄이 타게된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를 내걸고 공산권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전 세계에 타전하게 된다.
그 때, 터키가 미국에게 말한다.
터키 : 형님아.... 내도 한국 참전할게 나토가입 시키도.....
미국 : 좋다, 일단 와라.
그렇게 한국 전쟁이란 기회로 나토 가입을 명분삼아 참전을 요구했던 터키는 신나서 자기네집 터키로 돌아가 한국전 참전을 공식화 한다.
그러나, 터키내 정치권 및 국민들의 시선은 이교도를 위해 왜 참전하느냐 식의 좋지않은 비판을 하게 된다. 국민들의 반감을 한 몸에 받은 터키 정부는 고심 끝에..... 터키 역사 학자들을 부추겨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시전한다.
터키 정부 : 야!!! 옛날 고구려 알지? 우리 그 나라하고 친했어. 고구려 애들이 우리보고 돌궐이라 불렀어.. 디게 친했어.
터키 국민 : 우와 진짜? 그럼 도와야지.....
이렇게 국민들을 손쉽게 등쳐먹나 싶었는데, 국민들중 누군가 말했다.
터키 어느 무명씨 : 아니.... 그 고구려라는 지역 알고보니 지금 북한인데???
터키 정부 : 아 ~ ㅅㅂ !!! 누구냐? 언 놈이여!!
무명씨의 그 말에 터키 정부의 프로파간다는 밑닦는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미국 형님의 나토가입 조건을 되뇌이며 이를 악물고 국민들을 향해 다시 더욱 강도 높은 프로파간다를 시전한다.
그리고 그 프로파간다는 실제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결정적 파급을 미치게 된다.
터키 정부 : 야!!! 이슬람 율법 학자들아 너희들이 나설 차례다.
터키 학자 :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오랜 숙적관계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것 또한 율법을 이행하고 지하드에 준하는 행동이 될 것 입니다.
터키 국민 : 알라신께서 빨갱이들의 목을 원한다구요?
터키 학자 : 굳이 따지자면.......
이슬람 율법 학자의 방송을 들은 국민들은 알라신께서 공산주의자들의 목을 원하신다며 참전의 의사로 정국이 무르익어갔다.
하지만, 또 다시 들어오는 테클이 있었으니....
터키국민 : 그럼 돈은요?
터키정부 : 야!!! 엄청 많이 줄게,가라고 제발!!!
터키국민: 옛썰!! 명령만 내리셈.
1
그리하여 터키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세 번 째로 많은 병력을 한국으로 급파하였고 미 제 24 사단에 배속되어 김장량리 전투(지금의 용인시 김장량동)에서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151 고지를 습격하여 중공군 50병단 예하149사단 447 연대 및 150 사단 448 연대와 40대 1이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3일간 백병전 맞짱을 뜨기에 이르렀다.
그 곳, 김장량리에서 조선 최초의 지하드를 알린 <알라 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터키 병사들은 엄청난 수의 중공군들을 백병전으로 때려 부수고 151 고지를 탈환한다. 이 소식은 종군 기자들과 UPI 통신에 의해 전세계로 타전된다.
터키군 12명 사망, 중공군 1900 명 사망.......
그리고 한국전이 끝난 1953년 터키는 소원대로 서방의 군사 조약기구인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에 가입된다.
(펌글)